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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다.

by 법칙전달자

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다.

학창시절에 교수들에게서 들은 몇몇 말들이 생각납니다. 교육사회학 시간에 왜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 그 맥락은 생각이 안 나는 데 인간은 정신적으로뿐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도 다른 동물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논리학개론 시간에는 연역법과 귀납법을 배우면서 교수가 “사람은 죽는다.”는 명제는 논리적으로는 거짓이라고 하였습니다. 철학 시간에는 인간의 죽음은 대자연의 대오류라고 하면서 심리학과 연계하였습니다.

뇌과학적으로도 인간의 두뇌의 역량에 비추어 100살도 안 되는 현 수명은 부조리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관련된 모든 학문 즉 과학에서는 인간의 죽음 자체는 우주에서 가장 큰 불합리라고 합니다. 일부 철학이나 진화론 같은 거짓 사상에서나 죽음을 자연의 순리인 것처럼 주장을 하는 것이죠.

한국어에서 ‘사람’이라는 말의 어원이 ‘살다’인 것은 흥미롭습니다. 그렇습니다. 살아야 사람인 것이죠. 물론 산다는 것은 진정한 삶 즉 영원한 삶을 의미합니다. 누군가의 다음과 같은 말이 생각납니다. “자신이라는 존재 즉 의식을 지닌 존재로서의 자신이 그 시작 이전에 영원히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은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시점 이후로 이 우주에서 영원히 소멸된다는 것은 정말 인정하기 두렵다.”


인간의 의식에 내재된 영원성과 실재 인생의 찰나성이 너무 모순되기 때문에 일부 종교에서는 인간의 영혼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윤회되는 것이다, 혹은 이 윤회의 굴레에서 벋어나 영원할 수 있다는 교리가 있는 것이죠. 그러나 이점은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것으로 입증된 것입니다. 이점과 관련된 성서의 원칙은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다는 것입니다. (전도서 3:14)


죽을 사람은 어떤 면에서 사람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그런 사람들을 죽기 위해서 태어난 이성 없는 짐승이라고 한 바와 같습니다. 인간은 원래 멸성이 아닙니다. 그런데 절대다수의 인간들이 스스로 멸성화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사상이나 언행이나 인격 그리고 생활방식으로 그점을 나타내죠. 우주에서 가장 으뜸으로 적용되는 법칙이 자유법칙 즉 자유의지의 철칙입니다. 우주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생명입니다. 그에 대한 올바른 인식 없이 진화에 의해 즉 맹목적으로 우연히 주어졌다고 생각하고 사는 인간들과 그 세상의 모습이 어떻겠습니까? 인간의 역사와 지금의 세상의 모습을 보면 명백히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선택에 따른 영원한 소멸이 그들의 운명인 것이죠.


그러나 개개인에게 희망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메시지가 전달되어 좋은 소식을 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성서의 소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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