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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Jan 23. 2024

탄소 14와 영계

탄소 14와 영계


무신론적, 유물론적 경향이 압도하는 현 세상에서 영이나 영계에 대한 정확하거나 공식적인 지식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죠. 그러나 영적인 인격체와 영계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은 큽니다. 


신접무당처럼 상대적으로 극소수의 사람은 그들과 밀접히 관계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존재에 대해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고 둘(무신적인 것들과 신접자들)은 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조화롭게 공존하여 양극에서 사람들을 거짓으로 확실하게 다져놓고 있죠. 


영적인 인격체에 대해서는 유물론적 선입관을 가지고서는 결코 인간이 자력으로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불가지법칙이 적용되는 것이죠. 


영계라는 곳이 있고 그곳에 영적인격체가 존재한다면 그들이 인간에게 접근하여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에만 그것을 통해 알 수 있죠. 대표적이고 압도적인 증거로 확립된 것이 성서입니다. 


성서에 영적 인격체들에 대한 수많은 기록들이 있죠. 그중 하나는 다음과 같습니다. 

베드로 후서 2장 10~12절입니다. 

그들은 대담하고 자기 고집대로 하며 영광스러운 이들을 두려움 없이 모욕합니다. 그러나 천사들은 더 큰 힘과 능력이 있으면서도 여호와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그들을 모욕하며 고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잡혀 죽기 위해 태어나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이성 없는 동물과 같아서, 자기들이 모르는 것들을 모욕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파괴적인 행로로 인해 멸망을 당할 것이며


천사들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관련된 사항을 자연스럽게 언급하죠. 


인간들이 집중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인간을 비롯하여 만물이 언제 어떻게 생겼는가 하는 것이죠. 진화론과 창조론 역시 양극의 거짓말을 통해 인간들을 속여왔죠. 


만물은 약 6,000년 전 24시간의 6일 동안 만들어졌다는 것은 성서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 창조의 하루에 길이는 적어도 수천 년인데 성서에는 7일째의 안식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하고 논리적으로 창조의 하루의 길이는 같아야죠. 그리고 6 단위의 기간 동안의 창조는 지구에 국한된 것으로 그 이전의 시초나 땅이 공허하고 혼돈한 상태에 있었던 기간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창 1:1,2) 창조의 10가지의 순서는 논리와 확립된 과학적 지식과도 정확히 일치합니다. 


아무튼 그에 의하면 생물들은 수만 년전에 지구상에 있게 되었습니다.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것과는 너무 큰 차이이죠. 


그런데 과학자들이 생물의 시작 시점이나 존속기간을 억 단위의 수로 나타내죠. 우선 방사선 동위원소 같은 것으로 암석 연대 같은 것을 측정하여 그 지층에서 나온 화석을 그 연대에 맞춘 방법으로 화석에 대한 연대측정을 하죠. 


그런데 생물체의 연대측정은 탄소 14로 하죠. 그것도 잘 확립된 신뢰성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암석인 경우와 같이 측정할 때마다 큰 차이가 나니까요. 그래도 과학자들이 다소간 신뢰를 둔다고 하니 그 입장에서 조사를 한다 해도 실제로 모든 화석이 2만 년 이내로 측정된다고 하는 것이죠. 공룡인 경우 6,500만 년 전에 멸종되었으므로 길어야 5만 년 정도까지만 측정할 수 있는 탄소측정으로는 연대가 나오지 않아야 하는데 모든 화석들이 만년안팎으로 측정된다고 하죠. 수억년되었다고 하는 석탄들도 그러하죠. 


식물의 연대측정에는 나이테 측정법이라고 하는 것도 있습니다. 더 신빙성 있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죠. 나이테 측정법으로 알게 된 나무의 연령을 탄소 측정법으로 하면 비슷하게 나을까요? 턱없이 다르게 나오기 때문에 보정하는 방법을 억지로 짜낸다고 하죠. 


교과서나 매체에 버젓이 극히 자연스럽게 천문학적인 수치로 생물의 연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것이죠. 대중을 속이는 유명한 방법이죠. 터무니없는 것을 속이는 방법요. 


탄소연대 측정이 직면한 문제 몇 가지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고 이는 다른 다른 측정방법에 대해서도 비슷합니다. 


(1) 방사성 탄소의 반감기는 과학자들이 원하는 것처럼 확실히 밝혀진 것이 아니다.

(2) 우주선은 강도가 항상 일정한 것이 아니다. 지난 10,000년 동안에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강했을 수도, 혹은 약했을 수도 있다.

(3) 태양 폭발은 방사성 탄소 농도를 변화시킨다. 과거에 그 폭발이 얼마나 있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4) 지구의 자장은 짧은 기간에도 변덕스럽게 변하며, 수천 년 동안에는 대단히 심히 변하기 때문에 남북극이 역전되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이유를 모른다.

(5) 방사성 탄소 학자들은, “빙하 시대”에 바닷물의 양과 온도에 변화가 일어나 공기 중의 방사성 탄소의 양에 영향이 미쳤으리라고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얼마나 컸는지는 모르고 있다.

(6) 그들은 43세기 전에 세계적인 대홍수가 있었다는 과학적 및 성서적 증거를 무시하며, 그러한 대격변이 그 시대의 표본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7) 대기 중과 바닷속에 들어 있는 방사성 탄소가 서로 혼합되는 현상은 온도와 기후의 변화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얼마나 심하게 영향을 받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8) 방사성 탄소가 바다 표면과 밑이 서로 혼합되는 것도 영향이 있는데, 그것이 대단히 불완전하게 이해되어 있을 뿐이다.

(9) 방사성 탄소 시계를 보완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나무의 나이테 계산은, 과거에 기후가 크게 달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확실성이 없다.

(10) 오래된 나무의 방사성 탄소 함량은 수액과 수지가 나무의 중심부로 확산되어 변화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11) 매몰되었던 표본들은 땅속의 물이 스며들어 또는 오염이 되어 방사성 탄소를 더 얻을 수도 있고 상실할 수도 있다.

(12) 어떤 사건의 연대를 측정하기 위하여 선정한 표본이 그 사건과 시대가 일치하는가는 확실치 않다. 그것은 그 장소의 고고학적 증거로 보아 어느 정도 짐작할 뿐이다.


이상은 절대로 방사성 탄소 연대법에 수반된 함정들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성서를 팽개쳐버리기 전에 잠깐 멈추어 생각을 달리해볼 만한 정도는 충분히 됩니다. 이들 중 어떤 난점들은 가까운 과거의 연대에는 커다란 영향을 주지 않겠지만 시간이 오랠수록 그것이 주는 영향도 더 커집니다. 그러므로 2,500년 내지 3,500년 전까지는 그 측정 방법이 상당히 잘 맞아가지만, 과거로 더욱 거슬러 올라갈수록 결과는 더욱 의심스러워집니다. 방사성 탄소 시계가 대홍수 전에도 오늘날과 동일하게 진행되었으리라고는 믿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격변이 발생한 후 천년 이내에 완전히 안정되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증거들을 평가할 때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의 대단히 중요한 결과를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즉, 인간 존재와 관련된 모든 표본 중에서 절대다수는, 아마 90‘퍼센트’ 이상은 연대가 6,000년 이내의 것으로 밝혀졌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이 백만 년 전부터 존재하였다는 진화론자들의 주장이 옳다면, 탄소 14 연대의 범위 내인 10,000년 내지 20,000년 전의 고대 유물을 훨씬 더 많이 발견되었어야 할 것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표본들이 과거 6,000년 내의 것으로 밝혀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과학자들의 측정이 신뢰성 있는 목격 증인들과 같이 권위 있게 알려 줄 것으로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정황 증거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말한다면, 방사성 탄소 시계가 제시한 증거를 보면 인간 기원에 대한 창조 기록을 지지하는 증거가 압도적이며, 진화 가설에는 반대됩니다.


인간들에게 영계에 대한 진실을 차단하려고 억지로 고안된 것들은 조그만 살펴보아도 그것이 얼마나 부실한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현세 정치나 경제에 대해 집중적인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사실 악한 영들이 주도하는 대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조만간 3차 대전과 같이 인간이 일으킨 재앙에 의해 자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존재들에 의해 멸망됩니다. 


그리고 천년 간의 통치는 이미 영적인 존재가 된 예수와 인간들 중에서 선택된 그 동료통치자들에 의해서죠.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이미 통치자로서의 능력과 자격이 입증되어 있습니다. 성서의 주제와 그것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된 메시지는 천국복음  즉 하늘왕국의 좋은 소식입니다. 기독교나 세상에서 그 점을 감추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세상이 멸망당해야 할 만큼 악하다는 것은 너무나 확연하지 않습니까? 여러 면에서 너무나 혼란스럽게 분열되어 있다는 것도 그렇지 않습니까? 결코 진리나 사랑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지요. 이 엄연한 사실을 고의로 무시하고 진리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제거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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