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도
불안의 뿌리는 허무에 있다고 하죠. 인간은 누구나 한계상황에 처해 있다고 하고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았다고 하죠. 죄의 대가는 죽음이라고 하죠.
그것 알고 있고 그 지식이 맞다고 해도 허무에서, 한계상황에서, 저주에서,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나요? 그렇지 않죠. 식자우환이 될 뿐이죠.
소위 동시성원리나 끌어당김의 법칙 등이 있죠. 몰입하여 명상을 하면 양자장이나 우주의 기운이 도와서 돈을 버는 것 같은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죠. 지극정성으로 하는 100일 기도나 불공을 드리는 것도 비슷한 이유죠.
복권에 당첨되거나 선거에 이기거나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거나 직장에서 승진하게 된 것이 그렇게 한 결과일까요? 그건 모르죠.
그냥 속임수일 수 있습니다. 돈벌이의 수단에 불과한 것일 수 있죠.
인간의 지식이나 신비주의적 시도가 그처럼 무가치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간이 알 수는 없죠. 그것이 어떤 지식이냐에 달린 것입니다.
요한 17장 3절입니다.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은 오직 한 분의 참하느님이신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가는 것입니다.
오직 그러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