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스러워도
저는 정치나 종교, 철학 등에 대한 강한 혐오를 전달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뿐입니다. 그런 것들의 혐오스러움은 인간 개개인이 주제넘게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닐 수 있죠.
모든 국가와 정부, 국제연합과 같은 정치기구들은 혐오스럽고 가증스럽고 역겨운 것들입니다. 종교를 정의하기에 따라 모든 종교들이 그러하죠. 그 기관들이나 조직들이 그러하고 바탕을 이루는 이념들이나 사상, 교리들이 그러하죠. 올바른 사람은 거짓과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진리를 아는 사람들은 정치에 관여하지 않으며 '... 교'라고 하는 종교에 속하지도 않습니다. (창조주에 대한 참 숭배는 종교를 정의하기에 따라 종교가 아닌 것입니다. 인간이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것을 '... 교'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정치와 그와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강한 혐오감을 갖는 것은 올바르고 타당하다 해도 그것은 그에 속한 특정 개인을 정죄하는 것을 의미히지는 않습니다. 특정 개인을 손가락질하면서 비난하거나 모욕하거나 저주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죠.
물론 올바른 사람은 정치를 하지 않죠. 그것은 악하고 혐오스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의식이란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0.1%라도 생각을 바꿀 가능성이 없다고 개개인에 대해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개인에 대해서는 그 혐오스러운 상태에서 전환하게 되기를 바라야죠.
오늘날 사람들에게도 정치나 종교를 혐오하는 개개인들이 있는데 그 자체를 혐오한다기보다 자신도 그에 속해있으면서 반대세력에 대해서나 반대세력의 특정인사에 대해 그런 경우가 많이 있죠. 그래서 개인적인 테러나 조직적인 테러 혹은 국가적인 테러로 표현되죠.
특정 종교에 속해있으면서 타 종교나 종교인들을 혐오하고 저주하고 정죄하면서 사적으로 집행을 하려 하기도 하는 것이죠.
지극히 모순되고 주제넘고 악하고 혐오스러운 것입니다. 개개인에 대해서는 원수도 사랑해야 하는 것이며 복수는 창조주에게 맡겨야 하는 것이죠. 창조주는 그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할 것을 요구하죠. ( 로마 12:19 신명 32:35)
물론 창조주의 명령에 따라 경고나 저주를 전달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도 동기는 개인들에 대한 사랑에서죠. 그 소식을 접하여 돌이키기를 간절히 원하면서요. 그리고 절대수치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죠.
요나인 경우 니네베 (앗시리아의 수도)에 대한 멸망을 선포하라고 명령을 받았으나 이를 피해 도망하려고 했죠. 그러나 결국은 그 명령을 수행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니네베 사람들은 집단적으로 회개하였고 멸망을 피할 수 있었죠. 요나는 개인적으로 이를 불쾌하게 여겼지만
하느님께서 요나에게 물으셨다. “네가 호리병박 때문에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이 옳은 일이냐?”
그가 대답했다. “제가 화가 난 것은, 죽고 싶을 만큼 화가 난 것은 정당한 일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수고하거나 키우지도 않은 호리병박을 아꼈다. 하룻밤 사이에 자랐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호리병박을 말이다. 그렇다면 옳고 그른 것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12만 명이 넘고, 또 많은 동물이 있는 큰 도시 니네베를 내가 아끼는 것도 당연하지 않으냐?”(요나 4:9~11)
이렇게 되었죠.
끝까지 돌이키기를 거부하고 세속정치나 종교에 속하려고 하는 사람들, 그 혐오스러운 상태에서 벗아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멸망을 피할 수 없습니다. 아낌을 받지 못하죠.
그러나 심판자나 집행자는 전적으로 창조주입니다.
혐오해야 할 것은 강하게 혐오해야 하지만 특정 개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임의로 그렇게 하는 것 역시 구역질 나게 하는 대상입니다. 스스로 신의 위치에 있으려는, 그런 권위를 행사하려는 주제넘음과 교만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