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지식
묵상의 필요
마이너스 지식
틀린 지식 즉 거짓되이 지식이라고 일컫는 것보다는 없는 지식 즉 무지가 더 좋습니다. 그리고 지식 중 가장 중요한 영적 지식은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지식이란 그것을 표현한 글귀를 외우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본질을 이해하고 있는 것을 의미하죠. 묵상은 그러한 목적으로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야고보서 2장 8절입니다. 여러분이 성경 말씀대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최고의 법을 지킨다면 아주 잘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한다는 말에 내포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죠. 그런데 그것을 최고의 법이라고 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법이라고 하면 흔히 인간이 만든, 법전에 기록된 '몇 조 몇 항'이라고 말해지는 그러한 것을 연상할 것입니다. 지역마다 다르고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들이죠. 절대적 가치가 없는 것들인데 그래도 사람들은 그것을 외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법조인이 되는 것을 영광 즉 추구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죠. 또 최고의 법이라고 하면 헌법을 연상할지 모르지만 인간의 법이란 노예제도를 운영하기 위한 주요 수단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시편 94편 20절의 "법의 이름으로 괴롭힐 궁리를 하는 부패한 권좌"라는 표현에서 알려주는 바와 같죠. 인간의 권력은 부패한 것이고 인간들을 괴롭혀서 유지되는 것인데 법이 그 수단이라는 것이죠.
야고보 2장 19절입니다.
당신은 한 분의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습니까? 아주 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악귀들도 그것을 믿고 떱니다.
대부분의 인간들에게는 최고통치자이며 입법자관이며 재판관인 유일한 창조주가 존재한다는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사야 33:22., 야고보 4:12)) 대신 무신론이나 유물론, 진화론 혹은 삼위일체신이나 자연신과 같은 마이너스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으로 살고 있죠. 신접무당 같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귀신들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그러한 자들을 영원한 멸망에 처하게 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두려운 일이죠.
귀신들은 심지어 하느님의 아들에 대해서도 두려워했습니다. 귀신들은 당연히 이점을 알고 즉 믿고 있죠. 그리고 그들에게 확정적으로 내려져 있는 멸망으로 인해 떨고 있는 것이죠. (누가 8:28)
인간은 이점에 있어서도 마이너스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3,4절입니다.
여러분의 금과 은은 녹슬었으며, 그 녹은 여러분에게 불리한 증거가 되어 여러분의 살을 먹어 버릴 것입니다. 여러분이 쌓아 둔 것은 마지막 날에 불처럼 될 것입니다. 보십시오! 여러분의 밭에서 수확하는 일을 한 일꾼들에게 여러분이 주지 않은 품삯이 계속 부르짖습니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벌 혹은 부유한 사람들의 가지고 있는 재산들은 창조주로부터의 심판에서 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그들은 녹슬 정도로 필요 이상으로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그 부의 원천적인 제공자인 수고한 동료인간들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것을 주지 않음으로 인한 것이기도 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이 부르주아들을 처단해야 할 인민의 적으로 보는 주된 이유가 되기도 하죠.
성서는 영감 받은 창조주의 말씀입니다.
디모데 후서 3장 16,17절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것으로, 가르치고 책망하고 바로잡고 의로 징계하는 데 유익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사람이 온전히 유능하게 되고 모든 선한 일을 할 준비를 완전히 갖추게 해 줍니다.
인간에게 있어 영적 지식이란 창조주의 말씀을 통해 얻어질 수 있습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함으로써 지식이라는 것이 생기는 것이죠. 마이너스 지식이 결과는 멸망일 뿐입니다.(디모데 전서 6:20)
우선 정신을 비워 모든 선입관이나 편견,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일단 정신을 정결하게 하면 진리가 들어서기가 더 쉬워집니다. 묵상은 그런 목적으로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