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으려면
반응하지 않으려면
흔들리지 않으려면
자극을 주었는데 반응이 없으면 비정상적이죠. 외부의 자극에 따라 혹은 경험하는 것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험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원칙에 대해 말하고자 함입니다.
사람들은 듣고 보는 것에 영향을 받아 생각과 마음의 변화가 생기죠.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 설, ' '... 론, ' '... 견', '... 관', '... 주의', '... 심' 등등
듣고 보고 하는 것, 사람들이 고안해 낸 '설'이나 '론'들 그리고 사견이나 편견이나 고정관념, 나름의 인생관이나 가치관, 세계관 혹은 사심, 욕심, 탐심 같은 것들을 표현한 것들은 모두 거짓입니다. 종교 교직자들의 강의 같은 것들도 다 그렇습니다. 볼 것도 들을 것도 없죠. 무슨 유익한 것을 얻을까 하는 호기심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결국 헛되고 해롭습니다.
그러한 것들에 귀를 기울이고 정신을 쏟는 것은 사욕을 이룰 수 있는 어떤 단서가 있나 하는 불건전한 마음상태에서 일 수 있습니다.
인간이 보고 들어야 하는 것은 확립된 진리나 원칙의 본질적인 이해나 실용적 적용에 관한 것이어야 합니다. 듣거나 보고 나서 그러한 구체적인 유익이 있어야죠. 자신의 활동의 결과가 자신과 남을 유익하게 하는 창조적인 것은 앞에서 언급한 그런 거짓들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작곡가가 작곡을 하였다면 그것은 음악 이론이 아니라 음악적 지식에 의한 것이고 가수가 노래를 부른다면 그것은 성악론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악원리, 발성원리나 그 기능을 사용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죠.
학교나 학원에서 배우는 것들은 대부분 실용적입니다. 배우고 나서 운전을 하게 된다든지 컴퓨터를 다룰 수 있게 된다든지 집을 짓거나 글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누구의 무슨 정견 같은 것을 듣고 피켓을 들고 정치적인 구호를 외치면서 시위에 참가합니까? 국가주의 이념을 듣고서 살인하러 전쟁터에 갑니까? 모두 건설적이거나 창조적인 행동이 아니죠.
정신에 이해된 확립된 올바른 원칙이 없는 사람들은 듣거나 보는 거짓에 반응하여 휘둘리게 마련입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이죠.
그러나 원칙으로 대응하는 사람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지하고 약한 사람들에게 지식을 제공하고 격려를 하여 강화하는 그런 대응을 하는 것이죠. 능동적으로 개척을 하고 창조를 하는 것이고 그것이 인간의 본연의 모습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야고보서 1장 5~8절입니다.
만일 여러분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관대하게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느님께 계속 청하십시오. 그러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계속 청하고 결코 의심하지 마십시오.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사실, 그런 사람은 여호와께 어떤 것도 받으리라고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우유부단한 사람이며, 자기의 모든 길에서 불안정합니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불안정하고 비생산적인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다면 당연히 칭조주로부터 오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야고보서 4:8절입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죄인들이여, 손을 깨끗이 하십시오. 우유부단한 사람들이여, 마음을 정결하게 하십시오.
사심으로 마음이 정결치 못한 사람들은 그 욕심을 이룰 수 이룰 것이라고 기대되는 각종 그릇된 말들에 귀를 기울이며 갈팡질팡합니다.
그런 것에 따라 반응하면서 삶을 낭비하지 않고 유익하고 아름다운 것을 끊임없이 산출하는 인간 본연의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이와 같이 유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