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법
법은 구속하는 것이라는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만든 법은 불완전하기 짝이 없죠. 그런데 '자유의 법'이 완전한 법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야고보 1:25) 자유를 주는 완전한 법 혹은 자유에 속한 완전한 법이라고 번역되기도 합니다.
법이란 '창조주가 만물을 운영하기 위한 조건 혹은 마련'이라고 정의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창조주는 모든 것을 지혜로 만들었다고 하므로 법에도 그분의 무한한 지식과 지혜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시 104:24, 로마 11:33)
뭐든 창조주와 피조물은 큰 격차가 있습니다. 그 격차를 가장 크게 느끼는 분은 예수일 것입니다. 예수가 가장 위대한 피조물이기 때문이죠. 하느님만 홀로 선하다 그분만 홀로 지혜롭다는 표현은 어떤 면에서 조금도 과장된 표현이 아닙니다. (로마 16:27) 자연스럽게 그러한 찬양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분만이 참지혜의 근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면에서 지혜도 지식도 없는 인간이 법을 만들고 그것으로 세상을 통제하려 하는 결과가 세상을 이 모양으로 만들었죠. 멸망을 피할 수 없게 만든 것입니다.
그리하여 무정부주의라는 개념도 나오는 것입니다. 무정부주의란(anarchism) 어원적으로 지배자, 통치자(archon)가 없는 것을 의미하지 법이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만든 법으로 인간을 통제하려는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노예상태가 되었습니다. 법은 근본적으로 폭력과 노예제도가 그 근간입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언제든 행사할 수 있는 무력(무기, 군대, 경찰)이 바탕이 되어 있습니다. 폭력을 행사하라는 명령에 기꺼이 복종하는 지시이행자(군인, 경찰)들이 항시 대기 중인 것이죠.
사람들은 법에 따른 국가의 정책이나 제도에 따라 열심히 일하여 세금을 잘 내면 세상에서 제공하는 여러 가지 오락거리들을 즐기고 적당한 의료혜택을 받으며 그럭저럭 쾌적하게 살다가 노환으로 죽는 것이 그나마 최선의 삶인 것입니다. 상업제도, 금융제도, 국가주의 등의 노예인 것이죠.
그나마 정부가 없으면 혼란에 처하게 될 텐데 그처럼 혼란스러운 것보다 그렇게나마 노예상태로 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법으로 행사하는 권력을 인정해 주는 것이죠. 그리고 조금이라도 그런 면으로 더 잘해줄 것처럼 보이는 통치자나 정파를 선택하기 위해 소위 투표라는 것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폭력이나 노예제도의 존재 자체가 혼란과 혼동입니다. 혼동이란 '악이 실현된 상태'라고도 정의되죠.
진정한 자유는 그러한 혼란을 두려워하여 굴복하지 않음으로써 얻어질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야고보서 1장 25절입니다.
자유에 속한 완전한 법을 자세히 살피고 그 안에 머무는 사람은 듣고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하는 일로 행복해질 것입니다.
사람은 이 세속의 법에 따라 노예로 사는 사람과 자유의 법에 대한 지식이 있고 그에 따라 사는 행복한 사람의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