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영혼(soul)' 역시 매우 다양하게 사용되어 문맥을 통해 그 의미를 파악해야 하죠. 가장 일반적인 의미는 그 사람 전체를 의미합니다. 신체를 포함해서요 사람이 영혼인 것이죠. 동물도 영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신체적인 면만을 지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속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고 넓은 의미의 의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의식을 영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의식 역시 무의식을 포함한 전체 혹은 총체적인 의식을 의미할 수 있고 무의식과 대비하여 사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무의식을 들여다보는 것도 의식이죠. 사람은 대개 무의식의 지배하에 있지만 의식이 그 무의식을 살피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이죠.
영(sprit)은 더 많은 의미로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영혼과 동의어나 유의어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고 완전히 다른 개념으로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영과 혼 그리고 육으로 되어 있다고도 하죠.(데전5:23) 생명체 자체를 영혼이라고 하면 그것을 유지시켜 주는 에너지, 생명력을 영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설계도에 따라 물질을 배치하고 거기에 영을 불어넣으면 산영혼이 되는 것이죠. 부품을 조립하여 선풍기를 만든 다음 전류를 흐르게 하면 선풍기가 회전하는 것처럼 일종의 전류가 영인 것이죠. 사람에게서 영 즉 생명력이 나가면 시체가 되는 것이죠.
창세기 2장 7절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느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콧구멍에 생명의 호흡(어원적으로 영)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산 영혼이 되었다.
영혼은 인간 자신이기 때문에 인간 몸에서 분리되어 이탈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에서 플라톤의 이원론을 도입해 영혼불멸 교리를 만들어서 그런 잘못된 개념이 생긴 것이죠. 성서에는 영혼불멸 개념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인간 영혼이 멸성임은 여러 곳에서 명시하고 있죠. (에스겔 18:4,20) 사람이 죽으면 사람이 영혼이기 때문에 영혼이 죽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45절입니다. 사실, “첫 사람 아담은 산 영혼이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었습니다.
현재 인간의 영혼은 멸성입니다. 그러나 원래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인간 영혼이 스스로 그렇게 선택을 하였기 때문이죠. 지금도 인간은 죽음의 사상(철학)을 가지고 있고 또 그렇게 행동합니다. 사사로이 영혼을 죽이는 것을 가장 심각한 죄로 여기죠. 어떤 개인적인 원한이 있어 그렇게 하여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은 생면부지의 영혼을 살육하는 일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고 그렇게 하는 것은 전혀 범죄가 되지 않는 극도로 해괴한 모순된 일을 인간 영혼에 대해 벌이고 있고 거의 인류전체가 직간접적으로 그 일을 지원하고 있고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상과 행동 자체가 멸성적인 것이죠.
위 구절에서 생명이란 당연히 영생을 의미합니다. 마지막 아담인 예수는 영생하게 하는 영이죠.
그러나 그러한 사상을 지니고 그와 일치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극히 일부이지만 절대적으로는 천만에 가깝죠.
그 사상과 일치하게 하는 행동가운데 하나는 예수가 명령한 연례행사인 주의 만찬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올해는 3월 24일입니다. 누가 22:11, 고전 11:24)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기독교에서 그런 사상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행동이 없죠. 공식적 살인은 축복하고 지원하면서요.
반면에 성서에 전혀 언급이 없는 부활절이나 성턴절은 대대적으로 기념하죠. 그러니 그들이 멸망의 일 순위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얼마나 경이롭고 고귀한 것입니까? 심지어 진화론에서도 영혼의 존속이 생존목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 가능합니까? 그 사상은 죽고 죽이는 사상일 뿐입니다. 실제로 죽고 죽이는 일은 매일 10만 단위로 발생합니다.
죽음이 영원히 없어지는 것은 생명을 주는 영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고전 15: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