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성원리와 불확정성 원리

by 법칙전달자

상대성원리와 불확정성 원리

법칙이나 원리는 단지 인간이 발견하는 것뿐입니다. 그것들은 창조주가 만물을 운영하기 위한 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물은 법칙으로 운영되는 것이죠. 법칙은 설명될 수 없고 원리는 그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성질이나 관계를 포함하여 물리법칙이나 원리는 인간이 그것을 애초에 발견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죠. 그런 것들의 성격은 유일, 영원, 보편, 절대적이라는 것입니다. 물이 물로서 갖는 성질을 인간이 없애거나 바꿀 수 없는 것이죠.

인간이 창조주에 대해서 스스로의 사유를 통해 정화하게 알아낼 수 없는데 인간들은 신학적으로 철학적으로 너무 단순하고 오류적인 생각으로 세상을 사상적으로 거짓과 어둠의 지배를 받게 했습니다.

한편 과학계는 인간을 어두움에서 밝음으로 점점 빛을 비추어왔죠. 인간은 사상적으로는 과거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종교의 강요로 진리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거짓으로 드러나 더욱 혼란스러워졌죠. 진리가 없는 어둠을 당연한 것으로 마치 그것을 진리로 여기고 어둠 가운데서의 행로에 익숙해져 있죠. 보지 못하니 서로 자기가 옳다고 서로 싸우는 것이죠. 분열과 대립 가운데 어느 한쪽에 속하고 다른 쪽과 싸우는 상황을 당연하게 여기죠. 그 가운데서 삶의 희로애락을 누리죠.

상대성원리가 밝혀 준 것은 물질적인 것 혹은 물리적인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불확정성원리도 고정적이지 않은 물질의 성질에 대해서 밝힌 것이죠. 둘 다 일상에서 감각으로 지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인간은 그 감각에 의존하여 지구가 평평하다든지 태양이 지구를 돈다는 생각을 하였고 그것이 마치 진리인 것처럼 생각해왔죠. 그것은 물론 창조주의 언명에 의한 것은 아닙니다. 그 점에 대한 창조주의 선언은 둥근 땅이 허공에 떠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무시하고 인간의 감각에 의존하여 신학적으로 허황되게 물질계에 대해 권위적 결론을 내려왔죠.


그러나 창조주의 선언은 인간이 알 수 없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규정한 것은 무지와 주제넘음의 소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래에 와서야 알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죠. 고정적인 것이라면 알 수 있는 것이죠. 인간이 알 수 있는 단순한 것으로는 이와 같이 복잡한 시스템이 운영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물질이 무한히 나누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모순에 봉착하였고 물질의 본질적인 모양은 작은 구형일 것이라고 공상적이거나 단순하게 생각하였죠. 원래 인간의 감각은 한계가 있습니다. 너무 가까워도 멀어도 어두워도 밝아도 작아도 커도 볼 수 없고 표현만 볼 수 있죠.


과학적 진리는 보는 것을 통해 확정됩니다. 육안이나 망원경 혹은 현미경으로 보아서 확인이 되어야죠. 진화는 관측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아직 ‘론’인 것입니다. 전적으로 추측성 해석만으로 이루어져 있죠. 그런데 보는 것은 한계가 있으므로 인간이 물질이나 우주의 본질에 관해 구체적으로 알아내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양자역학에서 발견된 법칙들이 신이 없다는 결정적인 근거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함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 자체도 원천적으로 창조의 근원으로부터 온 것인데 말이죠.

결과적으로 볼 때 인간이 애초에 합당한 추리를 했다면 상대성이나 불확정성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 동안 인간의 단세포적이고 근시안적 안목에서 나온 단견의 집합체들이 근대까지 배워왔던 여러 설들이죠. 창조주의 언명은 인간이 만물의 근원과 종국을 알 수 없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어떤 학자들의 주장처럼 입자의 본질이 끈이라고 해도 그것을 확인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확인된다 해도 다시 그 끈의 본질을 묻게 되는 것입니다. 다중 우주는 관측할 수 없다고 하는데 관측하여 밝혀졌다 해도 인간의 의식은 또 다시 그것이 전부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겠죠.


시간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그러합니다. 138억년 전 빅뱅 이전에는 어떤 상태였나 궁금해합니다. 10조년, 100조년 후의 우주의 모습에 대해 궁금해 하죠. 현재에도 다양한 추측성 가설들이 있죠. 그러나 미시나 거시세계의 궁극의 본질에 대해선 인간이 결코 알 수 없는데 이는 창조주에 의해 선언된 인간의 한계입니다. (전도서3:11)


한편으로 인간의 보편이성에 의해서 법칙으로 확립이 되면 실제로 법칙이 발견된 것으로 확신할 수 있는데 이는 창조의 안정성으로 인함이죠.


사상계에서 뿐 아니라 과학계에서도 법칙으로 확립되지 않은 많은 주장들, 근시안적이고 단세포적인 가설적 주장들이 있어왔고 그것을 많은 사람들은 진리라고 생각해왔습니다. 특히 종교에서 그렇다고 했을 때는 더욱 그래왔죠.


상대성원리나 양자역학은 물론이고 만유인력조차 처음에는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끈으로 연결된 것도 아닌데 지구와 태양 그리고 달이 서로 끌어당기고 있다니”하고 말이죠.

인간은 앞으로도 새로운 법칙이나 원리, 성질이나 관계를 계속 발견해나갈 것입니다. 인간이 원래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설계된 기능에 의해서죠. 그러나 궁극의 본질은 영원히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의 뇌의 존재 목적은 앎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와 일치하게 뭔가를 정확하게 알아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죠. 행복의 소여들이 지천으로 널려져 있기도 합니다.

알아내는 것은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지 알 수 없죠. 그런데 행복해지는 것은 언제라도 가능합니다. 단 그것이 법칙이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창조의 법칙을 알고 그에 순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창조의식이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죠. 뭔가 알아가는 것은 그렇게 된 다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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