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는 44세 입니다.

80년생, 이민 22년, 아들셋, 싱글맘, 멀티잡러

by blandina

11월 22일



44살이 되어 처음으로 내 인생과 나라는 존재에 대해 글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 내려가야 할지 머릿속은 여전히 혼란스럽지만,

오늘 아침 커피를 내려 마시며 마음을 다잡았다.


"오늘부터는 꼭 내 머릿속을 정리해보자."


그렇게 다짐하고 노트북을 열었다.


백수가 된 지 4일째다.


백수가 되기 전까지 나는 케이크를 만드는 일을 했다.

미국에 와서 처음 시작한 일은 바리스타였고,


이후 직원들을 트레이닝하는 매니저 역할을 맡았다.

그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베이커리와 연결되어 1년 정도 제빵을 했고,

그 후로는 케이크를 만들며 투잡을 뛰었다.


매일 새벽 5시에 출근해 케이크를 만들고 매장을 총괄했다.

오후에는 다시 출근해 매장 관리를 하고, 밤 10시가 되어서야 퇴근했다.

사장만 빼고 매장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봤다고 말할 수 있다.


직원 관리, 바리스타 트레이닝, 고객 서비스와 컴플레인 응대,

본사 담당자와의 소통, 물품 주문, 재고 파악,

다른 매장의 케이크 관리, 매장 시설 관리, 그리고 사장님 뒤치다꺼리까지...

글로 다 담기 어려울 만큼 많은 일을 했다.


직원들이 "차라리 매장에서 텐트 치고 살라"고 농담할 정도였다.


그렇게 4년 동안 한 매장에서 다양한 일을 하며 나름의 의미를 찾고 시간을 보냈지만,

결국 뒷통수를 맞고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그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고 생각했다.

힘들었던 일조차 행복으로 다가왔던 시절이었다.


사실 처음엔 미국에서 2년만 머물 계획이었다.

투자이민으로 받은 임시 영주권이 2년짜리였기에 더 오래 머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떠날 시점이 다가오자, 사장님은 가게를 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나에게 취업 영주권 스폰서를 제안했다.


당시 나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혼 소송 중이었기에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4년 동안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힘든 일도 많았지만, 그 시간을 돌아보면 좋은 기억이 더 많았다고 믿고 싶다.


나는 내 인생을 나름대로 잘 살았다고 자부했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고 느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소통하는 것이 내 강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2년간의 이민 생활 속에서 순간순간 내가 너무 순진하다는 걸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잊고 살다가, 문득 떠오르는 진실이 있다.


"이민 생활에 찌든 사람들 중에는 진심이 없는 이들이 많다."


겉으론 웃으면서도 뒤에서는 험담하고,

어떤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 한 사람은 도마 위에서 난도질을 당한다.

그런 현실을 알면서도 나는 사람을 너무 쉽게 믿었다.

그로 인해 상처도 참 많이 받았다.


이민 생활은 상처가 아물 무렵 또 다른 상처를 받는, 끝없는 반복이었다.

하지만 마치 어항 속 금붕어처럼, 한 바퀴를 돌고 나면

다시 잊고 살아가는 게 우리네 삶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나보다 훨씬 어린 25살의 소울메이트와 제빵 사수님을 만났다.

아직 내 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그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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