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구멍
어릴 적, 나의 가슴속 깊은 곳엔 블랙홀처럼
모든 것들을 빨아들이는 구멍이 있었다.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
허기지고 공허한 까만 구멍이 있었다.
도대체 이것은 무엇인지,
왜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건지,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
알 수 없이 몹시 괴롭고 허탈한 그런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너의 그런 기분을 알 것 같다고.
자기는 우울하지 않으면,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것만 같았다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나에게 말했다.
너의 그런 심정을 글로 풀어보라고.
너는 왜 글을 써야만 하는지 적어보라고.
내가 스무 살 즈음엔 싸이월드라는 게 있었다.
네이버의 블로그나 페이스북의 스토리처럼,
자신의 일상이나 생각을 공유하고 연결하는 사이버 공간.
나는 그동안의 고민과 생각들을
그곳에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증발해 버렸다.
그 서비스를 제공하던 업체가 문을 닫아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이십 년도 훌쩍 지난 오늘,
아기를 등원시키고 신랑과 함께 천변의 벚꽃을 보았다.
영산강과 늘어진 들판 사이로 봄바람이 지났다.
한켠에 있는 푸드트럭에서 커피와 아이스티,
소시지, 초코바, 그리고 연양갱 하나씩 샀다.
우선 차의 뒷트렁크를 열고,
그 뒤편에 있는 기다란 돌 위에 신랑과 나란히 앉았다.
블루투스를 켜고 멜론에서 음악을 검색한 후,
이어폰 하나를 신랑에게 내밀었다.
한쪽 귀에서 다비치의 '괜찮아, 사랑이야'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고요한 물처럼, 바람처럼, 구름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봄햇살이 우리에게 따스하게 쏟아져 내렸고,
나는 눈 뜨기가 사납다는 핑계로 두 눈을 슬며시 감았다.
노래의 가사와 연주가 좀 더 선명하게 들렸다.
다시 차를 타고 이제 피어나기 시작한 벚꽃이
하얗게 늘어선 도로를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저 멀리 보이는
강과 들과 하늘을 두 눈에 담아본다.
신랑과 나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도착한 장소의 매점에서 라면과 김치를 샀다.
따뜻하다고는 해도 조금은 쌀쌀한 이런 날,
밖에서 먹는 라면은 꽤 맛있다.
나는 라면을 먹다가 무심코 주위를 둘러봤다.
바로 이곳의 이층에서 무료 전시가 있다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신랑과 나는 라면을 치우고 이층으로 걸어 올라가서,
민들레를 매개로 한 인간과 자연의 어우러짐,
생성되고 변화하는 생명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그 축제의 장을 마음껏 감상했다.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대는 다양한 색깔들이
민들레 홀씨 모양의 폭죽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런 멋진 전시가 무료라니, 감사할 뿐이었다.
아기와 함께 왔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아기의 하원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운전하는 신랑 옆에 앉아서 주절댔다.
피노키오부터 이카루스 이야기를 돌고 돌아
결국 나의 그 사악한 구멍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냥 그런 구멍의 존재에 대해서 꺼낸 것뿐이었는데,
신랑은 집요하게 그 구멍이 무엇인지 질문해 댔다.
그래서 난 좀 당황했고,
그만 질문해 줬으면 좋겠다며 톡 쏘아대고 말았다.
사실 싸이월드 이후로 한참 지난 일이지만,
지금에 와서라도 다시 생각해봐야만 할 문제였다.
그런 나의 깊숙이 자리 잡은 아프고 시린 부분을
신랑이 자꾸 여기냐고 꾸욱 눌러대는 것만 같았다.
말다툼에 냉랭해진 공기를 안고 현관에 들어섰다.
이를 어쩐다.....
잠시 겉옷을 벗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아기의 하원시간이 다 되어 집문을 나섰다.
집 앞 공원에도 사실 하얀 벚꽃이 피어있었다.
단지 나는 임신, 출산, 그리고 양육으로
지치고 건조해진 신랑과
오랜만에 좋은 분위기를 만끽하려고
차를 타고 길에 나선 것이었는데.
그러곤 다시 나의 구멍을 떠올렸다.
지극히 개인적인,
그러나 너무도 인간적인,
그래서 일반적인.
어쩌다 보니 니체를 떠올리면서,
그와는 결론이 확실히 다른 나를 발견한다.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안겨오는 아기와 함께
노란 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아기는 좀 더 공원에서 놀고 싶은지
내 품을 벗어나 요리조리 피해 다녔지만,
찬바람이 불어와서 안된다며 냉큼 안아 들었다.
바둥대는 아기를 진정시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벗기고 씻기고 저녁을 먹고 잠깐 놀고 재우고.
찬장에 핸드폰을 괴어놓고 유튜브를 보면서
쌓인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리고 어쩌다 다시 그 구멍에 대해 생각했다.
아니, 나는 그래야만 했다.
그리고 설거지를 마칠 때 즈음,
신랑에게 그 구멍에 대해 차분히 설명해 줄 수 있었다.
실은, 그것은 나의 오랜 고민이었다고.
그 구멍은 나의 목마름이었고 공허함이었다고.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
왜 우리는 고통을 겪으며,
그 고통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행복한 삶은 어떤 것인지,
신은 정말 존재하는지,
이런 고민과 갈망을 어떤 식으로 풀어내야 하는지.....
단순히 요약해서 전달한 나의 말을
신랑은 단번에 이해하고 알았다고만 했다.
조금 놀랐지만, 시원했다.
그럼 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