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에 평화를
지금 팔레스타인 전쟁을 보면서 전쟁의 원인은 무엇이고 왜 그렇게 서로를 대적하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최근 팔레스타인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인들의 입장과 괴리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좀 더 읽어봐야 확실히 알겠지만, 이 새벽,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고 기록해두려고 한다.
사실 팔레스타인 전쟁은 종교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보다는 정치적, 민족적, 경제적인 이유라고 이야기한다. 그것도 맞는 이유이지만, 어쨌든 이스라엘의 정치를 주도하는 일부 세력이 성경을 근거로 이용하여 많은 사람들을 기만하고 전쟁을 부추겨온 것 같다. 유대인의 선민의식, 이집트를 탈출해 가나안땅을 정복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세워 마치 성경이 그들의 토지증서인 듯 내밀며 강압과 폭력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그들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으므로 그의 성품을 따라 예수님 안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평화롭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다른 민족과 비교해서 우월함을 과시한다거나 지배하고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함으로 스스로를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고 세상의 억압과 고통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함을 누리길 바라시는 것이다. 나아가 공의와 사랑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 내기를 바라신다.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말씀을 믿음으로써 오래 참고 인내하면서 이 험한 세상을 온전히 살아내기를 바라셨던 하나님의 참사랑은 예수님의 생애, 십자가 사역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독뱀에 물렸을 때 놋뱀을 높이 들도록 했고, 그 놋뱀을 바라본 자들이 치유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놋뱀이 가리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바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예표했던 것이었고, 우리는 그런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유대민족의 탈애굽과 40년간의 광야생활, 그리고 가나안땅의 정복이라는 길고 험난한 여정을 통해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설명해주시고 계신다. 그리고 예수님의 성품과 그분의 삶,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의 죄를 구속하셨고 참자유를 주셨다.
유대의 역사는 바로 그런 맥락 속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이지, 단지 한 민족의 고군분투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다. 모든 열방의 본보기로서 선택한 그 민족이 지금 다른 민족을 학대하고 학살하는 모습은 정말 충격적이다. 무엇보다 성경말씀을 정치적, 민족적, 경제적으로 왜곡하고 이용하는 것은 너무 안타깝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이 문제를 가볍게 생각하거나 모른 체해서는 안된다. 팔레스타인에 부디 곧 평화가 깃들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