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

라운드 11

by 진화정

연민

(라운드 11)



어느새 깊은 잠이 든 그녀는 또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작고 귀여운 아기가 똥통에 빠졌는데, 그 속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헤엄을 치고 있었다.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한다...... "


그녀는 허공에 두 팔을 저으며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그는 그런 그녀를 서둘러 깨웠고, 시원한 물을 한 잔 마시게 했다. 마치 그녀가 다시 악몽을 꾸는 것이 어제저녁에 그가 그녀에게 불친절했던 탓인가 싶어서 그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사실 그는 일부러 그녀를 그렇게 대한 것이다. 정부는 그녀가 태어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녀의 모든 것을 감시하고 보고 받고 있었고, 그는 그런 정부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아 뇌과학 연구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선천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태어난 돌연변이. 특이한 것은 그녀의 생각이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도 그녀의 삶은 일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비범함과 평범함이 공존하는 그녀의 삶은 어느 순간, 연구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다양한 상황이나 문제가 주어질 때, 그녀는 어떻게 대처하는지, 그럴 때 그녀의 뇌는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그리고 극심한 트라우마에서 생존이 가능한지까지 테스트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오래전부터 철저히 계획되고 조정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었기에, 연구자들 모두는 혹시 모를 사건이나 사고에 대해 대비하는 동시에 설레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에 대한 연구를 통해 세기에 남을 만한 연구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그는 그런 연구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이미 마지막 테스트를 치렀다. 링 위에서의 사건은 그녀가 알게 모르게 겪었던 정신적 압박이나 상처를 넘어 신체에 실질적 위해를 가하여 좌절감, 배신감이나 두려움, 증오심 등과 같은 부정적 감정들을 심어서 그녀가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 그녀가 그것을 극복해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만약 그녀가 이 테스트를 무사히 통과하지 못한다면, 그녀는 죽음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미 많은 다른 피실험자들은 사고를 당해서 불구가 되거나 자살을 해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에게 그녀가 배정된 것이다. 어쩌면 그가 그녀에게 배정되었다고 해도 무방할는지 모른다. 처음엔, 그에게 그녀는 단지 연구대상이었다. 이미 짜인 각본에 따라 세팅된 회사에 그녀가 입사를 했고, 그녀에게 각종 불합리한 업무와 비상식적인 상황들을 겪게 함으로써 다각도에서 그녀를 실험하고 분석해 왔다. 그리고 마지막 테스트를 위해서 그는 그녀에게 가까이 접근했다. 그녀로부터 모든 것을 철저히 단절시키고 고립시키기 위해, 그녀에게 모든 것을 단번에 주었다가 일순간 빼앗아 철저히 등을 돌려야 했다. 그래야 그녀는 단 한 번의 일격으로도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구제불능의 상태가 될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사망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약간의 변수가 생겼다. 그가 연구대상인 그녀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게 된 것이다. 예전엔 늘 그녀에 대한 데이터와 무성한 소문만을 들었다. '양의 탈을 쓴 늑대',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 '괴물', '마녀'...... 그녀는 이상한 소문들로 인해 사회에서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과 그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에게 그녀는 그저 안타까운 존재였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생존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해야 했던 그녀를 손 닿을 거리에서 직접 대면하게 됐을 때, 링 위에서 사람들에게 무참히 밟히고 외면당한 그녀를 멀리서 바라봐야 했을 때, 그리고 이렇게 같은 공간에서 소소한 둘만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을 때. 그는 왠지 그녀를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녀가 마지막 테스트에서 꼭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아니 이 감정이나 생각을 정부에 들키면 안 되었다. 그렇게 되면 그는 더 이상 그녀를 곁에서 지켜줄 수가 없게 된다. 어쩐다? 정부는 그녀가 그의 집에 방문하기 전, 집안 곳곳에 이미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두었다. 그는 오히려 이 점을 역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가 어느 정도 트라우마를 극복할 힘을 가지게 된 것을 확인하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서 일부러 감시카메라 앞에서 그녀에게 불친절한 언행을 했던 것이다. 이로써 그와 그녀 사이에 오해와 불신이 생길 수도 있지만, 지금 우선순위는 그녀의 곁에 그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또 다른 연구자의 손에서 가엾게 놀아나다가 무참히 죽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표면상 그녀와 냉정한 거리를 두었다. 그녀와 더 가까워지고 싶어도 그럴수록 그는 더욱 멀리 돌아섰다. 그것이 그가 그녀를 지키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사실을 그녀는 모른다. 모든 것은 그래서 엇갈리기도 하고, 다시 풀어지기도 한다.





그는 물을 마시고 다시 잠든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이 모든 사실을 그녀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그녀가 세상의 모든 족쇄로부터 해방되어 훨훨 날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그리고 그 여정에 그는 그녀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는 그녀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주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가만히 쓸어내리며 조용히 말해본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어요. 좋은 꿈 꾸어요."


만약 그가 계속 국립뇌과학연구단에 소속되어 있으면, 그는 상부의 지시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객관적인 정보나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윗선의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좌지우지되는 것이 조직의 생리처럼 되어 있다. 상명하복의 원칙이 조직유지의 관건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아직도 너무 많다. 국가의 최상위 법인 헌법에도 예외조항이 있듯이 조직사회에도 분명 예외로 적용 가능하거나 반드시 예외로 처리해야 하는 경우들도 존재할 텐데, 그러기엔 그가 속한 정부는 아직 그렇게 유연하지 못하다. 지금도 군대식으로 모든 것을 자로 잰 듯이 일괄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따라서 이 집단에 소속된 상태로 그녀의 해방을 돕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방도는 없는 것일까.





그는 잠자는 그녀의 얼굴이 조금 평온해진 것을 확인하고 다시 안방으로 건너가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본다. 내일도, 아니 오늘도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9시까지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이니까. 일 하다가, 운전하다가, 미팅하다가 꾸벅꾸벅 졸면 안 되니까. 무엇보다 그러면 더 이상 그녀를 지켜줄 수도 없을 테니까. 그렇게 무언가를 도모하는 것은 꾸준함이 필요하다. 지쳐서 그만두고 싶을 때도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서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그런 꾸준한 성실함, 그것이 바로 그의 능력이었다. 그것이 지금까지 박사과정을 밟고,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국책사업을 진행하는 오늘까지 그의 삶을 지탱해 온 원리 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 모르게 베푸는 무심한 그의 배려가 있었다. 지금 그녀가 이런 사실을 모른 채, 그의 집에서 편안히 잠을 자고 생활할 수 있는 것도 그의 무심한 배려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새벽이 밝아왔다.





그녀는 오늘따라 일찍 눈이 떠졌다. 새벽에 이불을 걷어차지 않고 따뜻한 이불의 촉감을 느끼며 잠에서 깬 그녀는 왠지 기분이 좋았다. 어젯밤 똥통 속을 마구 헤엄치던 꿈의 기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불쑥 튀어나올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아무튼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아직도 자는 듯했다. 아직 7시밖에 되지 않았으니, 그녀는 그를 깨우지 않고 그냥 두기로 한다. 오랜만에 실력발휘를 해볼까 하고, 부엌으로 걸어가 냉장고를 열어본다. 그녀의 눈에 대파와 계란이 들어왔다. 찬장 속에 참치랑 햄도 들어있고 다행히 밥솥에 둘이 먹을 밥도 충분했다.


'계란국이랑 계란말이를 해야겠어.'


그녀는 서둘러 밥그릇에 계란을 여섯 알 풀고 젓가락으로 휘휘 저었다. 거기에 소금 한 꼬집을 넣고 가위로 대파를 송송 잘라 넣었다. 작은 냄비 속에 밥그릇에 든 계란물을 절반 넣고 생수를 조금 섞었다. 그리고 왼쪽 가스레인지 위에 작은 냄비를 올리고 중불로 켜두었다. 오른쪽 가스레인지 위에는 프라이팬을 올리고 중불을 켠 후 콩기름을 살짝 둘렀다. 잠시 후 달아오른 프라이팬에 남은 계란물을 부으니 쏴아하며 익어가기 시작했다. 비록 계란국이랑 계란말이에 당근이 빠지긴 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노랫말을 흥얼거렸다.


"다시 돌아와 줄래? 너에게 꼭 하고 싶은 말, 하지만 들을 수 없는 말. 가슴 깊이 새겨진 너, 다시는 볼 수 없는 너. 그래서 난 슬퍼져. 내 곁에 있어줘. 아무 말하지 않아도 좋아. 날 혼자 두지 말아 줘. 자꾸 눈물이 날 것 같아."


요즘 케이팝을 소재로 한 영화가 큰 인기를 얻고 있는데, 그 영화의 O.S.T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지 여기저기서 그 노래가 나와서 그녀도 후렴 부분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처 가사의 다른 부분이 숙지가 안된 상태라서, 그 후렴 부분만 무한반복을 하고 있었다. 그럼 어떤가. 신나는 기분을 그렇게 온몸으로 발산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끝없는 어둠 속에서 방황한다 하더라도 언제 가는 그 긴 터널도 끝나리라고 그녀는 굳게 믿었다. 설령 그 터널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녀는 노래하고 춤출 수 있다. 그거면 충분하다.




그녀는 프라이팬을 살살 기울여 가면서 계란을 돌돌 말았고, 옆의 작은 냄비도 보글보글 끓어올라서 나무로 된 숟가락으로 설설 저어 주었다. 그제야 가스레인지 불을 모두 끄고 나무 도마 위에 긴 계란말이 덩어리를 올려놓고 작은 칼로 썰기 시작했다. 톱질을 하듯이 쓱쓱 썰어서 접시에 가지런히 담았다. 쟁반에 계란국과 계란말이, 그리고 수저랑 젓가락을 올리니 한가득이었다. 이제 7시 반인데, 그는 아직 잠자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안방문을 똑똑 두드리다가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자, 문을 열고 들어갔다.


"기상, 출근해야죠. 아침밥도 좀 먹구요."


그는 여전히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이불을 활짝 걷어 던지고 그의 한쪽 팔을 끌어당겼다. 그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지금 몇 시..... 라구요?"


"7시 반이요?"


그러자 그가 벌떡 일어나 앉아서 두 눈을 비볐다. 그리고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서 이를 닦고 대충 씻고 나왔다. 거실에서 따뜻하고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그녀가 바닥에 쟁반을 놓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 앉아서 먹어봐요."


"웬일이에요? 직접 만든 거예요?"


"그냥 만들어 봤어요. 일단 좝서봐요."


그는 먼저 노란 계란국을 떠먹었다. 깊은 맛은 아니었지만, 시원하니 먹을만했다. 그리고 통통한 계란말이도 먹어보았는데, 약간 짭짤했지만 괜찮았다.


"멋진데요. 케찹이 없어서 아쉽지만."


"아, 그렇네요. 케찹이 없네. 쉿!"


그녀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는 바쁠 텐데도 입에 밥이랑 계란말이를 한가득 넣고 오물오물 씹고 있었다. 그러다 계란국을 그릇째 들고 후루룩 마셨다.


"이러다 늦을 것 같아서 이만."


그는 정말 맛있다는 뜻으로 그녀에게 엄지손을 세워 보이고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거면 충분했다. 그녀는 다시 기분이 좋아져서 다시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다시 돌아와 줄래? 너에게 꼭 하고 싶은 말, 하지만 들을 수 없는 말. 가슴 깊이 새겨진 너, 다시는 볼 수 없는 너. 그래서 난 슬퍼져. 내 곁에 있어줘. 아무 말하지 않아도 좋아. 날 혼자 두지 말아 줘. 자꾸 눈물이 날 것 같아."


그가 안방에서 급하게 걸어 나오며 그녀에게 말했다.


"아, 그 영화 봤어요?"


"아뇨, 아직. 그거 유명하던데요?"


"그럼, 퇴근하고 같이 영화나 보자구요."


"뭐, 그래요. 잘 다녀와요."


"네에, 이따 봅시다."


현관문이 닫히고 그는 사라졌고 그녀만 혼자 빈 집에 남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공간은 밝고 따뜻한 온기로 가득했고 그녀는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자꾸만 입가에서 노래가 떠나지 않았다.


"내 곁에 있어줘. 아무 말하지 않아도 좋아. 날 혼자 두지 말아 줘. 자꾸 눈물이 날 것 같아."


이 노래에 무슨 마약을 풀었나. 그녀는 중독성 있는 노래라고 생각하며 계속 흥얼거렸다.

이전 10화유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