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가 뽀얗게 쌓인 책상 구석, 태블릿을 들어 서랍 가장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었다. 5년 동안 내 몸의 일부처럼, 혹은 족쇄처럼 붙어 있던 기기가 사라지자 책상 위에는 낯선 빈자리가 생겼다. 그 여백이 처음에는 상실감으로 다가왔지만, 이내 묘한 가벼움으로 바뀌었다.
'작가 지망생'이라는 무겁고 화려한 겉옷을 벗어 던진 첫 주말, 나는 오랜만에 가벼운 차림으로 서점을 향했다.
예전의 서점은 내게 고문 기술소나 다름없었다. 베스트셀러 코너에 화려하게 진열된 만화책들을 볼 때면, 축하하는 마음보다 날카로운 질투가 먼저 솟구쳤다. '나보다 잘 그린 것도 아닌데 왜 이 작가는 데뷔했을까' 하는 옹졸한 마음이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창조자의 옷을 벗고 다시 평범한 독자의 시선으로 책장을 넘기자,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작가가 한 칸의 연출을 위해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을지, 저 선 하나에 얼마나 많은 망설임이 담겨 있을지가 비로소 피부로 느껴졌다.
이것은 일종의 '회귀'다. 내가 왜 만화를 좋아했었는지, 그 근원적인 순수함을 되찾는 과정이다. 작가가 되지 못했다고 해서 만화를 사랑할 자격을 박탈당하는 것은 아니다. 축구 선수가 되지 못했다고 해서 축구 경기를 보며 열광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나는 이제 작가가 아닌 '세상에서 가장 수준 높은 독자'로서 이 세계에 머물기로 했다. 직접 그려본 자만이 알 수 있는 펜 선의 떨림과 여백의 의미를 감각하는 즐거움. 그것은 창작의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는 달콤한 안식이었다.
우리는 늘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하지만 '되지 못한 상태'가 결코 '아무것도 아닌 상태'는 아니다. 꿈을 이루지 못한 자의 마음속에는, 그 꿈을 향해 달려갔던 뜨거운 열정의 재가 남아 있다. 그 재는 바람에 날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다음 단계를 일구는 비옥한 토양이 된다. 나는 작가가 되지 못했지만, 대신 세상을 더 깊게 관찰하고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얻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편의점에 들러 평소 좋아하던 캔맥주 하나를 샀다. 냉장고에 넣어둔 잔을 꺼내 차가운 맥주를 가득 따른다. 맥주 한 모금에 묻어나는 알싸한 탄산의 맛이, 내가 선택한 이 '아름다운 퇴장'을 축복해 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