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글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은 비트코인처럼 가격이 출렁이는 코인이 아니라 1코인=1달러처럼 가격이 고정되도록 설계된 가상화폐이고 이런 스테이블코인을 매개체로 가상화폐 시장과 전통 금융시장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가상화폐 시장이 결코 코인에 투자하는 그들만의 세상이 아니라는 문제의식을 설명드렸습니다. 또한 스테이블코인도 방식에 따라 나뉘는데, 담보 없이 알고리즘으로 가격을 유지하려 했던 테라(UST) 같은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은 2022년 붕괴 이후 신뢰를 잃고 주류에서 밀려났고, 현재 시장의 중심은 담보형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흐름까지 정리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가상화폐 시장에서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 즉 가상화폐 시장의 ‘기축통화’로서의 기능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스테이블코인이 왜 코인 시장 안에서 달러처럼 쓰이는지 이해하려면, 먼저 한국 가상화폐 시장과 글로벌 가상화폐 시장의 구조적 차이부터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위에 제가 업비트 화면을 캡처한 것을 보시면 한국 거래소에서는 대부분의 코인이 원화로 가격이 표시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비트코인이든 이더리움이든, 한국 투자자들은 기본적으로 원화 기준 가격으로 가상화폐를 사고파는 구조에 익숙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각 나라의 법정화폐로 가상화폐 가격을 표시하는 방식이 글로벌 스탠다드는 아닙니다. 아래에 글로벌 1위 거래소인 바이낸스 화면에 노랗게 표시된 부분을 보면, 비트코인 (BTC) 이 USD 같은 법정화폐로 표시되는 것이 아니라 USDT, 즉 테더 스테이블코인으로 가격이 매겨져 있습니다. 다시 말해 글로벌 시장에서는 달러가 아니라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이 사실상의 기준 통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조가 자리 잡게 된 이유는 사실 시장의 현실적인 제약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은 2018년 이후 가상화폐 거래소 실명제가 도입되면서, 거래소들이 은행 계좌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원화 기반 거래가 가능해졌습니다. 그래서 국내 투자자들은 코인을 원화로 사고파는 구조에 비교적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은 상황이 달랐습니다. 가상화폐 시장에 대한 신뢰가 지금보다 훨씬 낮았던 시기에는, 많은 국가에서 은행들이 거래소에 계좌를 열어주는 것 자체를 꺼렸습니다. 법정화폐 입출금이 막히거나 제한되는 경우가 흔했고, 그 결과 거래소 안에서 거래를 계속하기 위한 법정화폐 달러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스테이블코인은 디지털 세계의 혁신적인 결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처음부터 탄생했다기보다, 오히려 가상화폐 거래를 더 편리하게 만들기 위한 실용적인 해결책으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코인 시장 안에서 안정적으로 머물 수 있는 현금성 자산이 필요했고, 그 역할을 스테이블코인이 사실상 맡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상황은 꽤 역설적입니다. 한국은 비교적 이른 시점부터 거래소 실명제 등 제도화가 진행되면서 원화 기반 거래가 가능했고, 그래서 국내 시장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습니다. 반면 글로벌 시장은 제도화가 더디고 은행 시스템과의 연결도 막혀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피하게 스테이블코인을 법정화폐 대체 수단으로 쓰게 됐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히 가상화폐 트레이딩 편의성을 위한 수단을 넘어 어느새 디지털 결제 시스템 혁신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한국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논쟁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결국 전 세계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의 중요성이 급부상했던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은 상대적으로 그 흐름에서 비켜서 있었고, 그만큼 국내에서 스테이블코인이 비교적 최근에 와서야 각광받는 것 역시 이런 정책적 역설의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정리하면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히 가격이 안 움직이는 코인이 아니라, 글로벌 가상화폐 시장이 돌아가는 메커니즘 자체를 바꾼 존재입니다. 한국에서는 원화 기반 거래가 가능했기 때문에 스테이블코인의 필요성이 덜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제도권 금융과의 연결이 막혀 있었던 만큼 스테이블코인이 사실상의 기축통화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테이블코인은 어느새 코인 시장 내부의 편의 수단을 넘어 금융과 결제의 구조까지 건드리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