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모님에게 주식 이야기를 꺼내면 늘 비슷한 반응이 돌아옵니다. 주식하다가 패가망신한다, 괜히 위험한 데 손대지 말고 적금에 월급 꾸준히 부으라는 말입니다. 60대이신 부모님 세대에게 주식은 여전히 조심해야 할 대상이고, 자산을 불리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성실한 저축입니다.
이런 인식 차이와 관련해서 미국의 금융경제학자 Ulrike Malmendier와 Stefan Nagel은 “Depression Babies: Do Macroeconomic Experiences Affect Risk Taking?”이라는 논문에서 흥미로운 분석을 제시합니다. 이들은 개인이 살아오면서 경험한 거시경제 환경, 특히 주식시장의 성과가 이후의 투자 성향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주식 수익률이 낮았던 시기를 반복해서 경험한 사람일수록 금융 위험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강하고, 주식시장에 참여할 가능성도 낮으며, 미래 주식 수익률에 대해서도 더 비관적인 시각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이 논문의 관점을 한국에 그대로 대입해 보면, 최근 주식시장의 활황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현재 60대인 부모님 세대는 1997, 1998년 IMF 외환위기를 한창 경제활동을 하던 시기에 직접 겪은 세대입니다. 월급을 받아 저축과 투자를 고민해야 하던 30, 40대에 대기업들이 파산하고 주식시장은 무너졌고 그렇기 때문에 ‘주식을 하면 패가맹신한다’ 라는 집단적 기억이 각인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런 경제적 고통을 겪은 사람들에게 가장 합리적인 자산 형성 전략은 위험자산을 피하고 은행 예금과 적금 부동산 같은 비교적 안정적인 수단을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지금 주식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는 현재의 30, 40대는 전혀 다른 거시경제 환경에서 자산 형성을 시작한 세대입니다. 이들은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시기에 초등학생이거나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부모 세대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자랐을 수는 있지만, 직접적으로 위기의 한복판에서 투자 결정을 내려야 했던 경험은 없습니다.
그 대신 이 세대가 본격적으로 경제활동을 시작한 2010년대 이후의 세계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글로벌 경제는 장기간 저금리 국면에 들어섰고, 성실하게 저축을 해도 자산이 눈에 띄게 늘지 않는 환경이 고착화됐습니다. 은행에 돈을 맡겨두는 것만으로는 집은 커녕 자산 형성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이 세대에게 주식 투자는 ‘위험한 선택’이라기보다 오히려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선택, 다시 말해 생존 전략에 가까워졌습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 위기를 거치며 주식시장이 크게 흔들릴 때마다 정책당국이 대규모로 돈을 풀어 시장을 떠받치는 장면을 반복해서 보게 됩니다. 이른바 ‘페드 풋(Fed put)’이 현실에서 작동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세대인 셈입니다. 주식이 폭락하면 결국 중앙은행과 정부가 나서서 시장을 살린다는 경험이 누적되면서 이 세대에게 주식시장은 예전처럼 무너지면 패가망신하는 무서운 곳이 아니라, 조정을 거치더라도 다시 회복되는 구조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경험은 자연스럽게 위험에 대한 감각을 바꿉니다. 주식 투자는 여전히 변동성이 크지만, 시스템 전체가 붕괴할 가능성은 생각보다 낮다는 믿음이 형성된 것입니다.
이처럼 금융시장에 대해 극명하게 다른 경험을 가진 두 세대가 지금 시장에서 퇴장과 입장을 동시에 하고 있습니다. 현재 60, 70대에 접어든 우리 부모님 세대는 과거에 축적해 온 자산을 하나씩 정리하며 노후 생활을 준비하는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반면 30, 40대는 이제 막 노동소득을 본격적으로 벌기 시작하며 그 소득을 어떻게 투자하고 어떤 자산으로 배분할지 결정해야 하는 시기에 놓여 있습니다. ‘주식은 패가망신’이라는 인식을 가진 세대가 점차 시장에서 물러나고, ‘주식은 자산 형성을 위한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인식하는 세대가 점점 더 큰 소득과 자산을 갖게 된다면, 주식시장이 활력을 띠는 흐름은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운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흔히 한국 주식시장이 저평가돼 있는 이유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이야기합니다. 재벌 지배구조 리스크, 북한을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 같은 요인들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최근의 주식시장을 보고 있자면, 그동안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만들었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어쩌면 제도나 구조가 아니라, IMF 외환위기를 직접 겪은 세대가 시장의 주된 투자자였다는 점, 다시 말해 ‘IMF 세대 리스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제 그 IMF 세대가 점차 시장의 중심에서 물러나고, 전혀 다른 거시경제 환경에서 자산 형성을 시작한 세대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한국 주식시장의 재평가는 제도 개혁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기억과 경험이 바뀌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