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글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어떤 종류의 가상화폐인지, 그리고 왜 가상화폐 시장에서 핵심적인 존재가 되었는지를 보았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이 비트코인처럼 가격이 크게 변동하는 자산이 아니라 1코인=1달러처럼 가격 안정을 목표로 설계된 가상화폐이며 이 스테이블코인을 매개로 가상화폐 시장과 전통 금융시장이 이미 연결돼 있다는 점을 설명했습니다. 또 스테이블코인이 가상화폐 시장 안에서 사실상 기축통화 역할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하 알아보며, 한국처럼 원화 기반 거래가 가능한 시장과 달리 글로벌 시장에서는 왜 USDT 같은 스테이블코인이 표준 결제 단위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정리했습니다.
이번글에서는 법정화폐 담보형 스테이블코인이 어떻게 비트코인 같은 다른 가상화폐와 달리 1달러의 가치를 유지하는지, 즉 스테이블코인의 달러 페깅 메커니즘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보려 합니다.
경제학에는 내로우 뱅크(narrow bank) 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내로우 뱅크는 고객의 예금을 대출이나 다른 위험자산에 투자해 예대마진을 남기는 일반 은행과 달리, 예금을 최대한 안전한 자산에만 묶어 두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하여 돈을 빌리고 빌려주며 이익을 얻는 은행이라기 보단 예금의 화폐성을 중시하며 고객이 요구할 때 언제든 돌려줄 준비를 해두는 은행에 가깝습니다. 예금은 거의 그대로 보관하고, 운용하더라도 현금이나 단기 국채처럼 가격 변동이 작고 즉시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에만 넣습니다.
현재 스테이블코인의 구조는 이런 내로우 뱅크와 매우 유사합니다. 위의 파이차트는 2025년 6월을 기준으로 대표적인 달러 스테이블코인인 테더 (USDT)의 발행사가 보유하고 있는 준비자산의 구성을 보여줍니다. 전체의 약 65%가 미국 국채로 구성돼 있고, 여기에 연준의 역레포(RRP)와 머니마켓펀드(MMF)처럼 사실상 현금과 다름없는 자산이 더해집니다. 이 자산들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포트폴리오가 아니라, 언제든 1달러를 요구받으면 바로 1달러를 내줄 수 있도록 설계된 구조입니다.
위의 파이차트들을 보면 지난 몇 년 동안 테더의 준비자산 구성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 몇년 간 준비자산이 점점 더 안전한 자산 위주로 자산을 재분배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끼실 겁니다. 초기에는 기업어음(CP)이나 양도성예금증서(CD)처럼 사기업이 발행한 단기 채권의 비중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수익성과 유동성을 동시에 고려한 선택이었지만, 그만큼 신용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비판도 뒤따랐습니다.
이후 테더의 준비자산이 과연 충분히 안전한지, 정말로 1코인=1달러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1년 중국 부동산 기업 헝다그룹이 파산 위기에 몰렸을 당시입니다. 당시 시장에서는 테더가 헝다그룹을 포함한 중국 기업들의 기업어음을 대량 보유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스테이블코인 전체의 신뢰가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테더는 준비자산 구성을 빠르게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기업어음과 같은 사기업 채권의 비중을 줄이고, 미국 단기 국채와 현금성 자산의 비중을 지속적으로 늘려 왔습니다. 현재의 자산 구성은 수익을 조금 더 포기하더라도, 언제든 1달러 상환 요구에 대응할 수 있도록 안전성과 유동성을 최우선에 둔 구조에 훨씬 가까워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테더를 비롯한 법정화폐 담보형 스테이블코인의 구조는 점점 내로우 뱅크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수익을 극대화하기보다는, 언제든 1코인을 1달러로 돌려줄 수 있다는 신뢰를 지키는 데 자산 배분 결정의 초점이 맞춰진 것입니다.이 달러 페깅 메커니즘이야말로 가상화폐 시장과 전통 금융시장이 더 이상 분리된 세계가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구조로 연결되게 만든 핵심 통로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메커니즘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며, 이 메커니즘을 통해서 왜 가상화폐 시장의 변동이 전통 금융시장으로 전이될 수밖에 없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