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은 무너지지 않는다

Screenshot 2026-01-05 at 7.35.50 AM.png 출처: FRED

학교에서 가르치는 강의 중 하나는 1학년 학생들이 거시경제학을 처음 접하는 경제학원론이다. 교수로서 지난 2년간 이 과목을 가르쳐 왔고, 대학원 시절에도 같은 과목을 여러 차례 수업했지만, 지금도 볼 때마다 가장 놀라운 그래프가 있다. 바로 위의 그래프다.


이 그래프는 미국의 통화량, 그중에서도 가장 현금성이 뛰어난 M1을 나타낸 것이다. 1950년대 이후 오랫동안 거의 바닥에 붙어 있던 통화량이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단숨에 폭증한다. 코로나 이전 약 4조 달러 수준이던 M1은 불과 몇 달 만에 16조 달러로 뛰었고, 이후 한때 20조 달러를 넘어섰다. 숫자만 봐도 통화 환경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환경 변화 속에서, 자산의 가치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금융 자산은 미래에 발생할 현금 흐름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 값을 그 본원 가치로 본다. 여기서 핵심은 시간이다. 오늘의 천 원과 1년 뒤의 천 원은 과연 같은 가치를 가질까? 오늘의 천 원은 지금 당장 천 원짜리 물건을 살 수 있다. 반면 그 천 원을 은행에 넣고 연 2%의 이자를 받는다면, 1년 뒤에는 1,020원이 된다. 즉, 시간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의 천 원은 1년 뒤의 1,020원과 같은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미래의 돈을 현재 기준으로 환산하는 개념이 바로 현재가치다. 금융 자산의 가치는 결국 언제, 얼마의 현금이 들어오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이런 금융자산의 본원 가치 위에 추가적인 가치가 더해져, 자산이 본원 가치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거래된다면 우리는 그 차이를 ‘버블’이라고 부른다. 즉, 버블이란 미래 현금 흐름으로 설명되지 않는 가격 상승분이다.


우리는 코로나 시기에 이 버블을 집단적으로 경험했다. 주식 가격이 급등했을 뿐 아니라, 자산으로 인식될 수 있는 거의 모든 재화의 가격이 함께 올랐다. 하다못해 보통은 구매하는 순간 가치가 떨어져야 할 고급 시계나 중고 슈퍼카조차 신품 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거래되었다. 이들 자산을 보유함으로써 발생하는 현금 흐름이 결국 매각 시점에 들어오는 돈이 전부라고 가정하면, 당시 가격에는 본원 가치보다 버블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컸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금 흐름이 전혀 없으면서도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자산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비트코인이다. 시계는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는 분명한 쓰임이 있고, 중고차는 이동을 편리하게 해준다는 효용이 있다. 최소한 이들 자산은 사용 가치라는 형태의 효용을 제공한다.


반면 비트코인은 그렇지 않다. 비트코인의 본래 목적은 화폐였지만, 가격 변동성이 극심하고 일상적인 결제 인프라도 거의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교환 수단으로서의 기능은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비트코인은 배당도 없고, 이자도 없으며, 사용 가치나 현금 흐름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이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지금 자산 가격을 설명할 때 전통적인 본원 가치의 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Screenshot 2026-01-05 at 8.05.31 AM.png 출처: Investing.com


그런 의미에서 처음에 살펴봤던 미국의 통화량 그래프를, 위의 비트코인 가격 그래프와 함께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두 그래프는 방향성 측면에서 일정한 공통점을 보인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통화량이 급격히 늘어나자 비트코인 가격도 큰 폭으로 상승했고, 이후 긴축 국면에 들어서며 통화량 증가 속도가 둔화되자 비트코인 가격 역시 조정을 받았다. 이후 2024년 들어 통화량이 다시 증가하자, 비트코인 가격도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이 통화량이 비트코인 가격을 기계적으로 결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현금 흐름도 없고 사용 가치도 없는 자산의 가격이, 이처럼 거시적 유동성 환경의 변화와 함께 움직여 왔다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트코인의 가격은 그 자체의 내재 가치보다는, 시장에 공급된 유동성의 크기에 더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수영장의 물을 빼면 수심이 얕은 곳부터 금세 바닥이 드러난다. 반면 수심이 깊은 곳은 물이 빠지는 속도가 느리고, 한동안 물이 남아 있다. 통화량이 줄어들기 시작한 이후의 자산 시장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코로나 시기 과도한 유동성의 수혜를 받았던 고급 시계나 중고 슈퍼카 같은 자산들은 통화 환경이 바뀌자 비교적 빠르게 가격 조정을 겪었다.


반면 비트코인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았다. 현금 흐름이나 사용 가치가 없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유동성이 머무는 깊이는 달랐다. 코로나 이후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통화 레짐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통화량의 절대 수준이 과거로 쉽게 되돌아가기 어려운 환경에서, 비트코인에 고여 있는 물이 단기간에 빠질 것이라고 보기는 쉽지 않다. 문제는 가격의 단기 등락이 아니라, 이 깊은 수심을 근본적으로 바꿀 만큼의 통화 환경 변화가 과연 가능하냐는 점이다.


전 세계 정부가 쌓아온 과도한 부채와, 시간이 갈수록 확대되는 선심성 정책을 감안하면 코로나 이후의 통화 환경이 이전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통화량을 줄여 과거의 질서로 회귀하기에는, 감내해야 할 비용이 이미 너무 커졌다. 나는 비트코인이 특별한 자산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이 새로운 통화 환경 속에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하나의 그릇을 선택했고 그 자리에 비트코인이 놓였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트코인은 무너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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