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을 내다보니 비가 그치고 햇볕이 쏟아진다.
오월 마지막 연휴 동안 줄곧 내린 비로 집에서만 보내야 했다. 이렇게 오월을 보낼 수는 없다. 급히 갈 곳을 물색하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김포의 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을 점찍었다.
일산대교를 건너 한강변으로 들어서니 공원이 나타난다. 제일 먼저 한강을 향해 우뚝 솟은 전망대가 반겨준다. 3층 전망대에 오르니 철조망으로 막힌 강 너머로 일산의 아파트 전경이 끝없이 펼쳐져 보인다. 남쪽의 행주산부터 북쪽의 심학산까지 이어지는 드넓은 대평원에 이토록 많은 아파트가 심어져 있었다니!
강의 제방을 따라 걸어본다. 철조망 너머 사람의 진입이 차단된 고수부지는 연삼일 내린 비로 샤워를 막 끝내니, 어린아이 속살 같은 연한 초록이 더욱 눈부시게 빛난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더불어 온통 초록 물감의 향연이다. 군부대의 철책선을 따라 이어진 자전거 도로엔 자전거 마니아들이 내달리고, 길옆에 조성된 화단에는 야생화들이 걷는 이들을 향해 방긋방긋 웃으며 이쁜 짓을 한다.
이번에는 둑 아래 습지에 조성된 조류생태공원으로 향한다. 며칠 내린 비에 흠뻑 젖어 있던 풀숲은 태양열로 데워져 진한 초록의 냄새를 물씬 뿜어낸다. 킁킁거리며 초록의 냄새를 폐부 깊이 들이마시니 오래간만에 내가 살아있음을 실감한다. 도시의 퀴퀴한 시멘트 냄새 대신 자연의 신선한 공기를 실컷 마실 수 있는 지금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시간이다.
늪에 우거진 갈대 무리 아래 수로에서 이름 모를 물고기가 첨벙거리며 소리를 낸다. 늪의 한가운데 외로이 서 있는 나뭇가지에 앉은 뻐꾸기는 '뻑꾹, 뻐뻑꾹'하며 짝을 부르고 있다. 보이지 않는 건너편 풀숲에서는 '꿩꿩'거리는 수꿩의 외침이 간헐적으로 들려오고, 멀리서는 까치들의 합창이 메아리친다. 아! 평화스럽다는 말을 지금 아니면 언제 할 수 있을까 싶다. 가까운 수로에서 풀밭으로 나온 오리들의 뒤뚱거리는 산책 모습은 이곳이 새들의 보금자리임을 일깨운다.
공원을 한 바퀴 돌아 나오니 허기가 느껴진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하동농원‘으로 향한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에 들렀으니 4년 전에 마지막으로 갔었나 보다. 혹여 문을 닫지는 않았나 걱정하며 당도하니 다행히도 마당에 차들이 가득하다. 푸근한 인상의 주인아주머니를 다시 만나니 반갑다.
오곡밥을 연잎에 말아 찐 연잎밥이 이 식당의 주 메뉴이다. 불판에 굽는 오리고기와 농원에서 직접 재배한 채소를 곁들인, 연잎 향기가 배어있는 밥의 기억이 우리를 다시 이곳으로 오게 하였다. 마당 한켠에 마련된 테이블에서의 점심은 옛 고향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풍성한 벚나무 가지들은 손님을 위해 마당에 넓은 그늘을 드리웠다. 제법 통통해진 열매를 거느린 살구나무가 곁에서 거드는 가운데, 머리 위엔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힌‘¹⁾ 청포도가 여름을 기다리고 있다. 자연과 함께 하는 식사만큼 즐겁고 맛있는 것이 있으랴. 단조로운 생활의 연속에서 잃어버린 자연의 삶을 다시 찾은 날이다.
열심히 일하고 여유롭게 놀다 온 오월의 마지막 휴일이 끝났다. 집에 돌아오니 피곤이 엄습한다. 방으로 직행하여 침대에 엎어졌다. 순식간에 의식을 잃은 후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스마트폰 진동 소리에 의식이 돌아온 듯 눈이 천천히 떠진다. 카카오톡에 빨간색 알림 표시가 보인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이 나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를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失了愛情痛苦
(사랑을 얻는 것도 고통이더니, 사랑을 잃는 것도 고통이어라)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은 순결한 오월은 가고 있다.
고향문화원에서 글쓰기를 지도해 주시는 이향희 선생님이 피천득의 수필 ‘오월’을 톡에 남기셨다.
글을 다 읽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든다. 그래, 이 순간 오월은 그 끝자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죽어 가던 물질이 생명의 영혼을 받들어 세상을 향해 한발 나아가는 오월, 갓 깨어나 세상을 향해 나가는 영혼은 세상사에 물들지 않은 깨끗하고 소중한 보물이다. 그러나 순수한 물질은 세상의 풍파를 견딜 수 없기에 단단한 껍질로 무장하고 세상과 타협해 갈 것이다. 이제 순수한 그 청년의 모습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기에 오월과의 이별은 애틋할 수밖에 없다. 오월과의 이별 앞에 가슴 아파하는 선생님의 감성이 전해진다.
나의 오월은 언제였을까? 언제인지도 모른 채 나는 나의 오월과 작별하였었다. 나의 오월은 피천득의 서사처럼 순수하고 놓아주기 싫도록 애틋하였을까? 돌아오지 않을 내 인생의 오월을 대신하여 해마다 찾아오는 자연의 오월을 바라보며 나도 피천득 선생님처럼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오월이 산모퉁이를 돌아 막 자취를 감추려 하고 있다. 붙잡고 싶지만 보내주리라. 이별이 부지불식간에 다가오듯이 오월은 꿈꾸듯 다시 찾아와 짙어질 마음의 상처들을 어루만져 줄 것이라 믿는다.
________________________
1) 이육사, '청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