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참새의 슬픔

by 인생여행


도심지 한복판에서 세입자가 살던 집이 어느 날 강제로 철거되었습니다.

재개발로 인하여 삶의 터전이 강제로 철거되는 일이 때론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비단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랍니다. 오늘의 불쌍한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렵니다.




햇볕이 쨍쨍한 여름날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으로 렌지후드 교체설치를 하러 떠납니다. 강변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니 여의도의 고층 건물들이 오늘따라 더 높아 보입니다. 예전에 홀로 높이를 뽐내던 63빌딩은 이제 섬 한쪽 귀퉁이에서 평범한 빌딩이 되었습니다. 여의도에서는 고층 건물들이 누가 더 높은지 경쟁하기 바쁩니다. 도시의 땅엔 더 이상의 빈 공간이 없기에 하늘을 향해 갈 수밖에 없습니다. 고층 건물을 보고 경탄하던 때는 끝나고 이제는 건물들에 둘러싸여 숨이 막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강변을 더 내달려 한남대교를 건너 압구정동의 오래된 아파트에 도착합니다. 가스렌지후드와 공구들을 카트에 싣고 아파트에 들어서다가 깜짝 놀랍니다. 요즘의 아파트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휠체어 또는 카트 전용 램프가 없고, 오로지 계단만이 있을 뿐입니다. 카트 진입이 불가합니다. 카트에서 짐을 내려 몇 차례에 걸쳐 나른 후 아파트 안으로 들어서니, 다시 한번 어리둥절해집니다. 엘리베이터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럴 수가···· 두리번거리며 찾아보니 반 층을 더 올라가서 1층과 2층 사이에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짐을 또 들고 올라갑니다. 엘리베이터를 내리면 반 층을 다시 내려와야 합니다. 이렇게 힘 빼는 경우는 일하러 다니면서 처음 겪는 상황입니다. 더군다나 강남 1번지 압구정동인데 말입니다. 아파트가 오래 전인 1970년대에 지어진 탓입니다.


사용하던 렌지후드의 철거부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배기 호스를 빼는 순간, 뿌연 먼지가 날리며 지푸라기들이 우수수 싱크대 위로 떨어집니다. 배기구 안을 자세히 살펴보니, 놀랍게도 새집이 어렴풋하게 보입니다. 배기 호스를 더 끄집어내니 새집의 모습이 뚜렷합니다. 더 놀라운 일은 새의 깃털이 잔뜩 묻어있는 둥지에 참새의 알이 4개나 놓여 있습니다. 참새야! 어쩌자고 하필 여기에 알을 낳았단 말이냐? 하긴 이 도시에 네가 맘 놓고 집 지을 숲이 별로 없기는 하구나.


새 알에 온기가 남아 있습니다. 방금까지 어미 참새가 이 알을 품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주인분과 저는 참새의 보금자리를 짓밟아버린 미안한 마음과 황당한 상황에 어쩔 줄 모르다가 다시 일을 계속합니다.​​ 발코니에 있는 창문을 열어보니 아파트 벽에 돌출된 배기구를 통하여 참새가 들어와 집을 지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새가 들어와 집을 짓지 못하게 배기구에 철망을 씌웠습니다.


강제 철거한 새 둥지를 어찌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습니다. 둥지와 알을 잃은 어미 새가 돌아오면 무척이나 슬퍼할 텐데 큰 걱정입니다. 주인분과 함께 새집을 들고 밖으로 나와 아파트 정원 나무 사이에 잘 놓아두었습니다. 혹시라도 어미 새에게 발견된다면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으나 달리 대안이 없습니다. 본의 아니게 새 생명의 잉태를 준비하던 참새에게 못할 짓을 하였습니다. 집 지을 숲마저 잃어버린 도시 참새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하루였습니다. 미안하다, 참새야.




이런 상황은 주변에 숲을 품은 단독주택에서 이따금 있는 일이나, 도심지 한복판 아파트에서는 흔치 않습니다. 숲이 점점 사라지고 숲을 터전 삼아 살던 생명체들의 삶은 더욱 가혹해지고 있습니다. 압구정동은 아파트가 지어지기 전인 1970년대 초만 해도 과수원과 채소밭 천지인 농촌으로, 숲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당연히 숲의 원주민은 새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새들이 살던 터전에 사람들이 아파트를 지으며 새들에겐 어떠한 보상도 없었습니다. 토지 보상비를 주지 않았습니다. 이주비를 주지 않았음은 물론 이사 갈 땅을 대체해주지도 않았습니다. 개발의 이득은 오로지 인간의 몫이었습니다. 이제 새들은 도시의 빈민이 되어, 사람들이 사는 건물에 불법으로 무허가 집을 짓고 언제 헐릴지 모르는 불안함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압구정동에는 조선시대 한명회가 지었다는 압구정(狎鷗亭)이 없어진 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가로수와 정원을 빼고 나면 온통 시멘트로 포장된 땅에 인간들을 위한 건물과 도로가 있을 뿐입니다. 흙을 밟아볼 기회조차 없는 도심지에는 인간 이외의 동물들을 위한 공간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맨땅을 밟는 것이 희귀한 경험이 되는 도시의 생활,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잊고 살아왔음을 문득 깨닫습니다. 하지만 도시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길 두려워합니다. 자연을 그리워하지만 도시를 떠날 수 없기에 우리는 도시농부, 도시어부라는 말을 만들어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나 또한 도시참새라는 말을 만들며 그들의 피폐해진 삶의 개선에 일조하지 못함을 반성합니다.


미안하다, 참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