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는 어디를 가나 우뚝우뚝 솟은 고층 아파트단지들이 즐비한 도시를 벗어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큰 폭으로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며 누구는 기뻐하고 또 누구는 절망하였다. 결국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파장을 미치며 우리 사회에 많은 문제점들을 던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아파트 시세에 민감한 주민들은 동네에 아파트 시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에는 쌍심지를 켜고 나선다. 때로는 학교, 행복주택 등이 들어서는 것마저 반대하는 님비현상이 허다하게 일어난다.
아파트는 점점 진화하고 생활방식도 복잡 다양하게 변해가고 있다. 그런 만큼 아파트 생활 속에는 많은 잡음들이 끊이지 않는다. 주차갈등, 층간소음, 차량통행, 관리비문제 등 많은 문제들로 갈등을 겪는 이야기들은 수시로 뉴스가 되어 전파를 탄다.
주민들 간의 갈등뿐만 아니라 외부인과의 갈등도 많다. 주민들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여러 가지 서비스를 외부로부터 받는다. 택배, 경비, 설비, 이사, 청소 등의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은 아파트 주민들 입장에서 볼 때 고마운 도우미일까? 아니면 불편한 침입자일까? 이성적으로는 전자일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감정적으로는 후자로 보는 것 같다. 나만이 가지는 왜곡된 시각일까? 그렇다면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구태여 찾아보련다.
얼마 전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에 레인지후드 설치에 나섰다. 방문할 세대의 라인 출입구 앞에 주차를 하고 내리니 어디선가 경비원이 황급히 나타난다. 여기 주차를 하면 안 된다고 손사래를 친다. 다급하게 또 한 명의 경비원이 가세한다.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르겠다. 지상 주차장에 그어진 주차라인에 맞추어 주차했고, 옆에도 주차한 차량이 있는데? 왜 그러냐고 물으니, 지상 주차장의 주차는 입주민만이 가능하고 외부차량은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해야 한단다. 잠시 어안이 벙벙해진다.
많은 곳을 다녀보았지만 이런 아파트는 처음이다. 차에서 내릴 후드박스와 공구함들이 있어 양해를 구하니, 경비원은 짐만 내려놓고 지하에 주차를 하고 올라오라고 재차 말한다. 자신들도 주민들 때문에 힘들다며 사정을 한다. 주민들이 경비원들을 얼마나 압박했으면, 둘이나 나와서 이렇게 하는 것일까?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들어본 '주민갑질'의 현장인가?
참으로 야속하고 어이가 없다. 주민은 상전이고 아파트에 서비스를 제공하러 오는 손님 격인 외부인은 하인으로 대하는 격이다.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에게 잠깐의 서비스를 제공하러 오는 손님을 이 아파트 주민들은 이렇게 대하는가? 나만을 생각하는 이 아파트 주민들의 발상은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이 아파트 주민들의 그릇되고 비상식적인 생각의 틀은 금세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었다. 짐을 실은 카트는 아파트 출입구의 계단을 오를 수 없으니 장애인용 휠체어 이동통로를 이용한다. 휠체어 이동통로로 올라가는 곳은 휠체어 또는 카트가 주차장에서 올라설 수 있도록 경계석의 높이를 낮게 설치한다. 그런데 그 바로 낮은 경계석 입구를 어른 혼자서는 옮기기 어려운 큰 화분이 가로막고 있다.
'화분님! 여기서 이러시면 정말 안됩니다.'
휠체어통로로 올라가는 낮은 경계석 부근을 가로막고 있는 대형 화분
이 아파트에는 장애인을 위한 배려는 진정 없는 것인가? 장애인 말고도 많은 택배인들이 이 통로를 이용할 텐데~~ 옆 라인의 입구를 보니 휠체어 이동통로 앞에 역시나 큰 화분이 똑같이 놓여 있다. 완전 쇼크였다. 이런 구상을 한 사람과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곳 주민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이상한 나라의 아파트에 들어온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반대인 경우도 물론 있다.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다. 아파트 입구에서 인터폰으로 경비원과 통화를 한다. 방문하는 세대를 확인하는 일상적인 절차이다. 이때가 이 아파트 주민들의 품위가 파악되는 순간이다. 스피커 너머로 들리는 경비원의 목소리가 정말 친절하다. 심지어 방문 호수를 말하니, 들어가서 20m가량 직진 후 오른쪽에 있는 주차장으로 들어가라고 안내까지 해준다.
경비원의 이 말 한마디가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품위를 대변한다. 그래서 경비원은 아파트의 얼굴이다. 주민들이 외부인에게 친절하면 경비원도 외부인을 따스하게 맞아준다. 그러나 아파트 주민이 외부인을 하대하면 경비원도 그대로 따라 하기 마련이다. 아파트를 많이 다니다 보니 얻어진 경험이다.
주민들의 품위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품위 있는 주민들이 사는 아파트의 가격이 오르는 것이 마땅하다.
나 또한 아파트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우리 아파트의 품위 유지에 문제는 없는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