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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육피 Feb 17. 2023

너의 목소리가 들려

항상 궁금했다. 썸남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짝남은 그래서 관심이 있는 걸까? 도통 다른 사람의 생각은 알 수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이성은 더욱.


2021년 12월에 시작한 SBS 드라마 <그해 우리는>은 전교 1등 ‘국연수’와 꼴등 ‘최웅’이 수험을 관찰 다큐멘터리에 출연, 이를 계기로 서로 사랑하게 되는 내용이다. 5년의 연애 끝에 그들은 헤어졌고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지 10년이 지난 시점. 그들이 출연한 다큐멘터리가 역주행하며 둘은 10년 만에 카메라 앞에 선다. 이 작품의 묘미를 살려주는 것은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말하는 두 주인공의 인터뷰다. 순간순간 본인의 감정을 말이나 행동으로 적나라하게 꺼내 보인다. 


“어쨌든 10년 후에 이 답답한 애랑 다시 볼 일은 없을 거예요.”


 “웃기고 있네, 걔가 그래요? 또 자기 멋대로 기억하고 있네”


그들의 이야기는 보고 듣기만 해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팔딱거리는 활어 같은 두 캐릭터는 ‘여름 청춘 멜로물’에 제격이었다. 인터뷰 형식을 빌려 인물의 순간 심리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독백이나 해설 등, 다른 장치를 통해 전달하는 것보다 발칙하고 적나라하게 말이다. 쨍쨍 내리쬐는 태양 같이 솔직한 그들의 인터뷰는 <그해 우리는>이 대표 여름 재질 드라마로 기억되게 했다.


인물의 인터뷰와 내레이션은 시청자의 멱살 잡고 끌듯 인물의 말에 집중하게 했다. 과거 국연수와 여행했던 순간을 떠올리던 최웅은 “한없이 멀게 느껴지다 한없이 가까이 다가와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어버리는데, 어떻게 잊을 수가 있어요”라는 독백을 하곤 바로 뒤 인터뷰에서 “기억에 남는 여행은 딱히 없어요”라고 말한다. 멀지 않은 곳에서 국연수가 자신의 말을 듣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너무 익숙한 반어법이 내 마음을 들쑤셔 놓았다. 화면 안에서 펼쳐진 그들의 연애는 내 일기를 꺼내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처럼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국연수가 돌아온 게 실감이 나네, 지겹다 정말”     
               

“내가 버릴 수 있는 게 너밖에 없어” 


국연수와 최웅은 마음과는 다른 단어들로 상대의 살점을 도려내는 난도질을 끝낸 후에야 ‘아차’하는 순간을 마주한다. 마음과 다르게 튀어나오는 날카로운 말로 싸우고, 미안함에 피하고 도망가 버리던 그들의 모습은 과거의 나와 닮아 보였다.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진심을 이미 알게 된 터라, 내 안타까움도 배가되었다. 연애란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닌데, 더 많이 좋아하는 것을 티 내고 싶지 않았다. 관계의 저울질에서 약자가 되는 것 같았다. 


다시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항상 궁금했다. ‘썸남은 대체 무슨 생각이지?’, ‘예전 남자친구는 날 사랑하긴 한 걸까?’ 이전엔 내 마음이 아니라 상대를 살폈다면 점차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연애만 하게 되었다. 1순위를 ‘나’로 둘 수 있을 만큼의 애정만 줄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보다 카메라 앞에서 더 솔직했던 국연수와 최웅이 결국 감춰두었던 각자의 아픈 마음을 솔직히 드러내었고 감추는 것 없이, 있는 그대로 서로를 사랑하게 되며 드라마는 끝났다. 


그해 여름, 트위터에는 ‘여름이었다’ 짤이 돌았다. 문장 하나로 모든 것이 여리고, 풋풋해졌다. 진심에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가, 금방이라도 데일만큼 뜨거워지기도 하는. 그런 연애를 시작하고 싶다. 인터뷰 속 두 사람처럼 대담하고, 솔직하게.


글 : 김지혜

이미지 드라마 <그해 우리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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