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5년
세부패밀리라는 유튜브 방송을 보았다.
영상을 제작하는 분은 한국인으로 필리핀 세부에 살면서 생활이 어려운 현지인 가족을 직접 돕기도 하고 후원자의 물품이나 지원금을 그들에게 연결하기도 하는 듯했다.
영상에서는 쓰레기장에서 일하는 필리핀 일가족이 보이고 거기엔 한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 여학생은 밝은 얼굴로 부모님을 도와 쓰레기를 큰 마대에 담아 묶는 작업 중이었다.
아마 1년 뒤에 고등학교 진학을 하는 듯했고 제작자는 학생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도 했는데 그 말에 부모님을 도와야 한다며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일에 대해 물으니 온 가족이 2주일 동안 일을 했으며 일을 마치면 우리 돈으로는 25,000원 정도 받는다 했다. 적은 액수였다.
저만한 돈을 위해 학교도 가지 못하고 온 가족이 매달린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그러나 저들에게는 다른 방도가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소녀에게 제작자가 선물을 건넸다. 스마트폰이었다. 순간 의젓하던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트렸다.
손이 더러워 얼굴을 만지지도 못하고 웃옷을 잡아 눈물을 훔치며 계속 울었다.
아이는 아이였다. 어려운 형편에 철이 너무 일찍 들어 부모님을 도와 쓰레기장에 나와 있었지만 아이는 아이였다.
어린 속으로도 달리 어찌해 볼 방도가 없음을 깨닫고는 공부도 또래와 놀기도 포기하고 부모와 가족을 위해 묵묵히 험한 일을 하면서 내색도 없이 꾹꾹 참고 있었나 보다.
고장 난 휴대폰을 위해 일을 하던 것이었는지 수리비 앞에 휴대폰은 포기하고 지냈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른처럼 행동하던 그녀는 순간 소녀로 돌아올 수 있었다.
80년대 십대들의 쪽지를 만들어 방황하는 십대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시던 김형모 발행인은 한 인터뷰에서 절대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며 방황하던 한 청소년이 망설이고 망설이다 맨 끝에서야 어렵게 입을 뗀 말을 들려주었다.
“30만 원만 주실 주 있으세요?”
무슨 사정인지 묻지 않고 그 돈을 주었더니 그 친구는 가출 생활을 접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집에 돈이 필요했었는지 갚을 돈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친구에게 30만 원은 그 친구 인생만큼 컸던가보다.
스마트폰 한 대와 30만 원이 모두에게 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딱 죽지 않을 수 있는 동기일 수도 있겠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저만큼의 관심과 위로도 필요 없이 다만 물어뜯지만 않아줘도 쓰러지지 않고 살아갈 수는 있었을 텐데......
https://youtube.com/shorts/sr-DcxohZ5w?si=E7DUliOW9ml6E7Tz
어릴 때 키워준 주인을 만난 당나귀가 서럽게 우는 영상에서도 통곡할 그리움을 가슴에 담고 그저 묵묵히 견디며 살아왔을 걸 생각하면 짐승도 사람이랑 별반 다른 게 없는 것 같다.
아니 우리는 말이라도 하니 우리가 좀 나은 걸까?
실수에 비해 너무 큰 비난 속에서 생을 달리 한 배우 김새론과,
방황하던 내게 큰 위로를 주셨던 2008년 돌아가신 십대들의 쪽지 김형모 발행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