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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령네

지난 여름 우리 가족은 제주도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고 이소령에게 연락은

by Hi jingyoo

신혼부부가 살던 집에 이사 온 이소령네는 캠핑을 좋아해 거의 모든 주말에 여행을 갔다. 우리 가족도 한 번 따라간 적이 있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아들 둘 포함한 남자 셋은 모든 캠핑 준비를 마치 군인처럼 일사분란하게 해냈고 막내딸과 엄마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차 마시고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었다. 캠핑을 가기 위해 머슴역할을 자처한 아빠의 고육책이리라. 노숙하기 싫은 아내를 꾀어 캠핑을 하기 위해 모든 노동을 남자들이 하는 것이다.


머슴들에 의해 잠자리 준비가 끝나니 저녁을 먹고 바닷가로 해루질을 나갔다. 그 집 남자는 손재주가 좋아 해루질에 필요한 대개의 장비를 모두 본인 손으로 만들어 쓰고 있었다. 자상한 아빠의 모습. 가족을 위해 한 몸 희생하는 가장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렇게 살던 이소령 가족이 제주도로 이사를 갔다. 몇 달이 지나고 내게 전화 한 이소령은 제주도 여행 오라고, 펜션 사둔 게 있어 몸만 오면 된다고 얼굴 보러 오라고 했다. 가져간 캠핑 트레일러도 어느 바닷가 전망 좋은 자리에 세웠다 했다.


15가구가 사는 우리 동네. 나는 작년에 총무였다. 매달 회비를 관리하고 마을수도 요금을 걷어 마을 이장님에게 보내고 동네 청소를 주관하는 등 동네 잡일을 도맡아 하는 게 총무다.


이소령네는 이사 온 후로 몇 년 동안 회비를 낸 적이 없다. 본인들이 사용하는 수도요금을 낸 적도 없다. 마을 청소에 나온 적도 없다. 음식쓰레기를 그냥 비닐봉지에 담아 버리기 일쑤고 분리수거장에 일반쓰레기를 섞어 버리기도 했다. 마래는 흰 색 리트리버인데 이소령네서 마당 수돗가 옆에 묶어 키웠다. 한 번은 그 집 식구들이 한동안 보이지 않고 개는 굶고 있길래 전화하여 물으니 일주일 일정으로 캠핑을 갔다고 했다. 물론 그 집 개는 내가 발견하기까지 4일을 굶은 터였다. 개집과 나무에 목줄이 엉켜 질식사 직전에 내가 구조한 적도 있고, 탈출한 마래를 그집 여자와 내가(주로 내가) 잡아 맨 적도 많았다.


가족을 끔찍이 아끼지만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동물에 대한 관심은 부족한 듯하다. 총무인 나는 회비와 수도요금을 매달 챙겼다. 매달 그에게 돈 내라고 심플하게 얘기했다. 나중엔 말하기도 그래서 문자로 보냈다. 그러나 내지 않았다. 이사 갈 생각이어서 회비를 내기는 아까웠다고 치자. 자기들이 사용한 수도요금을 내지 않는 건 도대체 뭐란 말인가. 더구나 내가 총무다. 동네에서 말 하고 지내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 나였다. 낼 걸 내지 않아 친한 사람 불편해 지는 것이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인가.


제주도에 땅 사고 개발하여 돈도 좀 벌었다는 그가 나를 초대했다. 토지개발과 설계를 하는 나에게 제주도에서 자리 잡은 그는 언젠가 한 번은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다. 언젠가 내가 그에게 신세 한 번 질수도 있다는 것인데, 그래도 내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옆집 살며 겪은 그의 모습에 적잖이 실망한 내 마음이 움직이지가 않는다. 사업 하는 사람이 없는 인맥도 만들려 애 쓰는 게 정상일 테지만 나는 그러기가 싫다. 언제 한 번 부탁하기 위해 비굴하게 고개 숙이는 게 싫다. 그가 좋아 나와 잘 맞으면 가까이 하고 그게 아니면 굳이 인연을 질질 끌고 엮으려 애 쓰는 게 싫다.


이게 나를 존중하는 방식이다. 원칙을 정하고 그에 맞게 사는 것. 물질의 풍요를 위해 정신을 굴복시키지 않는 것, 나는 여기서 만족한다. 이 만족감은 나를 고취 시키고 단단한 나를 갖는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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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우리 가족은 제주도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고 이소령에게 연락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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