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왜와 반민특위
일본은 왜 사죄하지 않는가.
일본은 왜 역사를 왜곡하는가.
일본은 왜 타국을 지배하려 하는가.
루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에서
“일본인들은 인간은 각자가 알맞은 위치를 갖고 이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의미는 각 인간이나 국가는 각자의 알맞은 위치가 있고 그 위치에서 충실히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일본인은 천황의 신민으로 모든 인간보다 우월하여 제1의 위치에 있고, 한국을 비롯한 기타 국가는 일본의 아래에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각자 알맞은 위치가 있음에도 이를 따르지 않고 더 높은 위치를 노리는 등 이를 어기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아베를 비롯한 일본 극우가 가해자임에도 한국, 중국 등 식민과 전쟁 피해자에게 사죄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각자 알맞은 위치인 일본의 높은 위치 그리고 다른 국가들의 낮은 위치에 따라 한국 등은 감히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할 수 없고 물론 일본도 그들에게 사죄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제일의 위치에 있다고 믿는 그들이 미국에 그토록 굴종적인 이유는 이해하기 어렵다. 아베는 트럼프에게 언제라도 무릎을 꿇을 기세였는데, 그 이유는 각자의 알맞은 위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핵공격을 당한 후 무조건 항복을 하면서 그들은 그들의 알맞은 위치를 깨닫게 됐고 당연히 그에 맞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미국이 제1의 자리 그 다음이 그들의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이들은 즉시 무릎을 꿇는 것이다.
전쟁에서 일본은 졌다. 그러나 일본은 생각한다. 한국이나 중국에 패배한 것이 아니라 미국에게만 졌다. 미국이 강하다는 걸 알았으니 그들에게는 굴복한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에게 진 것이 아니므로 그들은 일본이 미국에게 하듯 엎드려 빌어야 하는 것이다.
어느 연구에서, 불평등한 상황에서 성인 대부분은 불평등에 저항하는데 반해 어린이들은 특히 나이가 어려질수록 그에 대한 저항이 약해진다고 한다. 이는 불평등에 대한 저항은 기성세대가 제대로 교육을 시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고난 위치가 식민지 백성이면 그에 알맞게 식민지 백성으로 살다 죽어야만 한다. 저항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후손에게 이렇게 가르치면 그들은 식민 노예로 고통받다 죽기 십상이다.
그들은 자손들에게 강자지존, 적자생존, 약육강식을 가르친다. 약한 건 운명이고 강자의 핍박은 당연히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저항할 일이 아닌 것이다.
이들은 왜 타고난 각자의 알맞은 위치에서만 살라고 가르치는 걸까?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고 그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강자의 입장에서 약자를 굴복시키기 위한 논리일 뿐이다.
선의지를 갖고 불의와 폭력 앞에서도 꺾이지 않고 꿋꿋하게 저항하는 자유민으로 왜란과 식민에 의병으로 독립군으로 이는 한국인만의 유전자가 아니다.
민중이 주인이 되고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인류 보편적 민주주의의 가치.
내 존재가 귀하면 남도 귀한 것이고 내가 소중하면 남도 그럴 것이라는 당연한 생각의 결핍.
천황은 완전무결하다는 그릇된 명제를 세우고 그것이 옳다고 끼워 맞추려다보니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천황은 전범도 아니고 난징학살도 없고 일본군 성노예도 없고 강제 징용도 없다며 식민은 근대화였다는 거짓과 왜곡으로 천황을 살려내고 그에 따라 신민인 일본인들의 우월함을 만들어 내는데 혈안인 그들, 일본 극우는 이제 청소되어야만 한다.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더 나아가 지구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반드시 사라져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그들과 손잡고 아직도 이 땅에 남아있는 토착왜구들도 반드시 토벌돼야만 한다.
실패 당한 반민특위의 재 판결은 얼마 남지 않았다.
己所不欲勿施於人
내가 해봐서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 했다.
그렇다고 내가 해봐서 좋은 것을
남에게 베풀라는 뜻이 아니다.
종교를 알고 술이나 담배가 좋다하여
이를 남에게 강권하는 것이 그런 것이고,
각자의 알맞은 위치가 있고 이를 지키는 것이 좋다 믿어
남에게 강권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공자님 말씀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