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가 되었으나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나는 잘 모르지만, 서양 철학자 임에도 니체는 불교에 심취하였고 어렵다는 그의 영원으로의 회귀는 동양인인 우리에게는 윤회로 간단히 이해된다고 한다.
최근 출간된 이 책의 광고 카피로 신은 죽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 받을 필요는 없다, 표정은 상황과 반대되게 하라, 안 좋은 생각은 단숨에 끊어내라, 복잡할 땐 기꺼이 몸을 써라, 사람은 혼자일 때가 아닌 함께임에도 외로울 때 가장 고독하다, 나는 괴로운 함께가 아닌 충만한 개인이 되고 싶었다. 등등 수많은 명언을 볼 수 있다.
애송이 시절 나는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펼친 적이 있었다. 조금 읽다가 포기. 재미가 없어 읽어 지지가 않았다. 책이 매우 불친절 했다. 조리되지도 않고 소금도 안 쳐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마치 허리띠를 씹는 기분. 안 삼켜진다.
30년도 더 지나 지난주에 다시 도전. 맛은 없지만 몸에는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다시 열은 거다. 역시 재미는 없었고 또 다시 포기. 맛이 없는 건 역시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니체의 말대로 이런 빌어먹을 책과 씨름 하느니 차라리 산책하는 것이 백배는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던 중 페이스북에서 니체의 이름을 단 신간 광고를 보았다.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이번에 빌렸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못 먹고 즉시 반납하러 갔다가 저 책을 대여했다. 명상록일수도 잠언일수도 탈무드일수도 시경일수도 법구경일수도 또는 그런 책들을 모두 합한 정도로 아름다울지 모를 니체의 글들을 나는 곧 읽으리라.
첫 장을 열었다. 아니 그전에 책 표지를 다시 자세히 보았다.
큰 글씨 :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작은 글씨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저게 왜 이 책 표지에 써진 건지 의아해 하며 첫 장을 열었다. 차라투스트라가 나오고 그가 10여년 숲에서 놀다 하산하여 성자를 만나 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른다며 한탄한다.
이 내용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똑같다. 그 뒤 내용도 살펴보니 이 책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2024년 다시 출간한 거였고 내용은 99.99% 같은 거였다. 종이만 새 거로 바뀐 것이다.
물론 달라진 게 하나 있긴 했다. ‘짜라투스트라’가 ‘차라투스트라’로 바뀌었다. 이게 0.01%다.
종이가 새 거면 내용이 읽어질까? 역시 허리띠는 아무리 씹어도 목구멍 안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결국 나는 책 맨 마지막 챕터를 열었고 읽었다. 그리고 책을 덮었고 도서관에 반납했다. 물론 마지막 장 내용은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니체는 이 책 부제로 ‘모든 이를 위한, 그러나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이라 썼다.
나는 모든 이에도 포함되고 그 누구에도 포함된다.
따라서 나는 이제부터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다고 할 생각이다.
https://youtu.be/o-lzzuEVSMY?si=SK30GrIGiNoEhlRt
아니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은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