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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성 완전기억상실증

‘지금 의자에서 기다리면 내가 금방 갈게. 남편 바지그’

by Hi jingyoo

아내에게서 전화가 온다.

질의가 나에게 집중되고 있던 터라 쓰윽 밀어 수신 거부를 하였다.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울린다. 평소 같았으면 내가 콜백 하기를 기다렸을 아내가 바로 전화를 해왔고 불길한 마음으로 밖으로 나가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는다.


“여보세요...... 나 병원인데......”


이렇게 말하고 아내는 울기만 한다. 병원이라는 말과 아내의 울음을 함께 듣고 보니 한 가지 생각만 떠올랐다.

“왜 울어, 어머님 잘못되셨어?”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그녀는 계속 자기 말을 했다.


“나 지금 병원에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내가 여기 왜 왔는지도 모르겠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아.”


“병원? 무슨 병원? 오늘 회사 간 거 아녔어? 무슨 병원에 있는 거야?”


“세브란스 병원인 거 같아. 내가 여기 왜 있는지 기억이 안 나.”


“기억이 안 나? 그게 무슨 소리야? 병원 간판 같은 거 보여? 세브란스 병원이라고 쓰여있어?”


“응, 세브란스 병원은 맞아. 간판 보여. 내가 여기 뭐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기억이 안 나.”


머릿속이 하얘지고 오만가지 생각이 스친다.


‘치매가 이렇게 젊은 사람에게도 오는 건가?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이 사람이 정신을 놓으면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어머님보다 먼저 이 사람이 이렇게 돼?’


빠르게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그녀는 지금 기억이 없다. 세브란스 병원에 있다. 내가 바로 갈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녀의 차는? 지금 상황에 그녀가 운전이라도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까? 현재 가장 중요한 건 그녀의 차다.




“영애 씨, 가방 들고 있어? 가방 안에 차키 있는지 봐봐”


“차키 가방에 있어.”


“그럼 지금 병원 안내센터 보여? 그럼 거기 가서 차 번호 알려주고 차 어디 있는지 알아달라고 해. 차 끌고 가면 안 돼. 내가 대리 불러줄 테니까 대리 운전으로 가. 좀 있다가 전화할 테니까 안내센터에 물어보고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전화를 끊고 회의장에 들어갔는데 1분도 되지 않아 다시 전화가 울린다. 그녀의 전화다.


“나 지금 병원에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내가 여기 왜 왔는지도 모르겠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아.”


다시 전화한 그녀가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그녀의 머리가 백지가 된 것인가? 차를 찾았는지 물어보니 병원 주차장에서 차는 검색되지 않았다고 한다. 안전 요원은 주차구획 안에 제대로 주차되지 않은 차는 검색되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그녀가 차를 가지고 병원에 가지 않았거나 주차를 제대로 하지 않아 검색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일 거다.


병원에 차가 없건 검색이 되지 않는 것이건 이제 방법은 내가 최대한 빨리 병원에 가서 그녀를 데리고 가는 일만 남았다. 그녀에게 안내센터 직원이건 간호사건 아무나 병원 직원을 바꿔달라고 하고 내가 빨리 갈 테니 그녀를 안내센터 근처 의자에 앉히고 어디 가지 못하게 봐달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막바지에 이른 회의를 빨리 끝내고 서둘러 병원에 가야만 했다.


1분도 지나지 않아 그녀는 내게 다시 또 전화를 했고 병원에 있는 것 같으며 뭐 하고 있는 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똑같은 얘기를 반복했다. 같은 통화를 대여섯 번 더 하고 나서야 회의는 끝이 났고 내비게이션을 눌러보니 병원까지 22분 걸린다고 나온다. 그녀의 머리는 지금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제대로 작동도 되지 않는 것 같다.


젊은 남자인 듯한 안내 요원에게 부탁했다. 백지에 내가 부르는 대로 써서 그녀의 손에 들게 하여 계속 기억을 잃고 있는 그녀가 눈만 뜨면 그 글이 보이도록 종이를 들고 앉아 있도록 해달라 부탁했다.


‘지금 의자에서 기다리면 내가 금방 갈게. 남편 바지그’


바람과 달리 그녀는 계속 나에게 전화를 해왔다. 어쨌거나 지금 나는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갈 일만 남았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걸려 온 전화에서 그들은 아내가 오늘 아침 9시 반에 병원에 와서 여러 가지 검사들을 받았고 2시에는 주치의를 만났고 3월 초 다음 검사 예약까지 마쳤다 했고, 그런 여러 가지 검사들을 받았는데 오늘 병원에서 했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과 혹시 뭔가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니 검사를 받아 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얘기와 외래는 끝났으니 응급실로 접수하여 검사를 받는 방법뿐이라는 얘기를, 안전요원이 그녀를 휠체어에 태워 응급실로 옮기겠다는 얘기에 그러라고 하면서 응급실로 이동했다.



-일과성 완전기억상실-



여러 검사 끝에 의사는 일과성 기억상실이라는 얘기를 했다. 치매와 달리 5~6시간 정도 기억이 나지 않고 24시간 내에 호전되며, 극심한 스트레스와 같이 몸이 감당하기 어려운 강도의 압박에 노출되는 경우 발병할 수 있다고 했다.


아내의 경우 오후 3시 앞으로 3~4시간 뒤로 3~4시간 정도를 기억하지 못한다. 당일 자정 12시가 넘어 퇴원할 수 있었는데 그때 일부 회복한 기억을 제외한 나머지 기억은 죽을 때까지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 했다.

아내와 내가 의심하는 원인은 국소빈혈이다. 평소에도 식사를 잘하지 않았고 검사를 위해 전날 저녁부터 금식을 한 그녀는 저녁, 아침, 점심까지 세끼를 굶은 데다 검사를 위해 채혈을 했었는데 그 채혈량이 과하지 않았을까 의심하고 있다.


단기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국소빈혈의 영향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벌어진 해프닝이 아닐까 한다. 보도에서 우리가 자주 접하는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로 인한 해마의 역할 장애가 원인일 듯싶다. 의사는 그게 원인이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내 멋대로 이게 원인이라고 믿고 있다.


다행히 그녀는 아무런 문제 없이 잘 회복하여 지금은 일상에 아무런 지장 없이 생활하고 있다.


이번 일을 겪으며 느낀 점이 있다.


기억이 작동하지 않아 백지가 되어버린 그녀는 계속 나에게만 전화를 했다. 중간에 다른 사람이 그녀에게 전화를 했는데도 그 전화는 금방 끊어버리고 나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왔다.


이번 사건 내내 온전히 나에게만 의지한 그녀를 떠올리며 내가 그녀의 입장에 처했을 때 나도 그녀처럼 그녀에게 전적으로 의지할지 궁금하다.


잘해주지 못한 내가 그녀로부터 과분한 평가와 의지를 받는 것 같아 미안하고 앞으로는 그녀에게 잘해주자고 다짐한다.





“여보세요.”


“응, 어디야? 컨디션은 좀 어때?”


“응, 집이야. 이제 괜찮아졌어. 새벽 5시부터 좋아졌어.”


“왜 그런 거야? 별일 없었잖아.”


“점심에 해장을 잘했어야 했는데 부실하게 먹어서 그랬었나 봐. 아무튼 지금은 아주 좋아.”


“이그 잘 챙겨 먹지. 아침은 먹었어? 밥 먹고 홍삼액 두 봉 꺼내 먹어.”


“오~~ 나 엄청 챙기는데? 이쁜 딸이 좋아 바지그가 좋아?”


“나야 바지그가 제일 좋지!!!!”


어제 오후부터 전날 술 먹은 게 잘못되었는지 오후에 퇴근해 침대에서 끙끙 앓던 나를 걱정하며 해준 그녀와의 통화다.



세브란.jpg


지금도 가끔 그날의 6시간에 대해 물으면 그녀는 아무 기억이 없다고 한다.

이 부분은 의사의 말이 맞았다. 괜히 의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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