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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건 Apr 03. 2024

나는 찾고 있었다

소유냐 존재냐, 찾음이냐 발견이냐

  세상을 본다. 두 눈을 크게 뜨고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그건 불가능한 상상이야. 망상이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고, 이상적일 수 없다. 차라리 내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 그거 하나라도 온전히 챙기려고 노력하는 게 현실적일 수 있다. 그렇게만 해도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수십의 이점을 누린다. 그러니 반대로 제대로 했는데 수십의 이점이 따라오지 않는다면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여기고 돌아보는 것이 어떤가. 아, 제대로가 뭔지 생각해보고 정의해보지 않았다면 이 모든 건 어불성설.     


본다. 이치를 찾으려 했다. 세상에는 보편이, 경향성이, 확률이 있다. 나는 그것들을 찾아다녔고, 많이도 찾아냈다. 찾아낸 진실들을 내 입맛에 맞게 꿰어 전시했다. “공적인 자리에서의 말하기 방법”, “자기소개서 작성 요령”, “사랑을 고백하는 법” 등등. 전시해놓은 작품들을 볼 때 괜시리 뿌듯하고 또 벅차올랐다. 그것들은 내 마음속에 있었고 절대로 볼 수 없는 종류의 것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들이 어느 미술 작품보다도 소중했고, 연서만큼이나 절절했다. 이치를 꿰어놓은 작품을 보고, 보고, 보고. 삭아 없어지도록 보니 그것은 이미 내 마음 안에 있었다. 이미 마음 안에 있었을 터인데도 더 깊이 갔다. 보이지도 않을 만큼. 천진한 곳으로.     


시간이 흘러 전시품과 전리품은 쌓였고, 또 사라졌다. 엄숙한 식사가 이어졌다. 나는 점점 가득 찼고 규칙이 세워졌다. 옳고 그름, 호불호, 가치관이 생겼다. 철학이 생겼고 좋아하는 철학자가 생겼고, 살고자 하는 삶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20살의 불안한 청춘은 없어지고 뜀박질하는 반 오십의 청년이 되었다.    

  

봄이 왔고, 여느 때와 같은 미묘한 감정을 겪고, 들뜬 사람들을 본다. 벚꽃은 피었고 노란색을 흡수하지 않는 꽃, 초록빛을 반사하는 이파리를 본다. 

아아, 나는 찾고 있었다. 나는 찾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보고 있지 않았다. 그 너머를 투시하기 위해 부릅뜨고 있었던 사팔뜨기가 나다. 눈 뜨고도 보지 못했다. 그저 찾고 있었을 뿐.  

  

세상 헛살기 무서워 제대로 사는 법 찾았고, 사랑과 관계와 일에 실패하고 거절당하기 두려워 정답을 찾아 헤맸다. 멍청하기가 무서워 똑똑해 보이는 법에 몰두했고, 행복이 무서워 걱정거리를 찾을 때도 있었다.

요즘 나는 시를 봤고, 한 줌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거울 속 살찐 나를 발견했고 생각보다 잘 사는 나를 발견했다. 봉사에서 보람을 발견했고 날씨를 타고 다니는 수줍음을 보았다. 


발견을 찾음인가, 찾음을 발견함인가. 이젠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0에서 1이 되었으니 기뻐해도 꼴불견은 아니겠다고, 진실로 기뻐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안에서 프롬의 제목이 다르게 읽히기 시작했다. 프롬은 나를 보고 어떤 말을 해줄까.     


소유냐 존재냐,

찾음이냐 발견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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