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부터 어깨까지, 그들이 만족할 때까지, 천천히

by 이동건

어지러진 책상 위, 오렌지색 조명을 관객 삼아 오랜만에 시가 아닌 글을 씁니다.


어쩐 일인지 오밤중에 눈이 떠졌습니다. 마신 위스키가 무색하게 취기가 모두 달아나 혼자가 되었습니다. 카프카의 “세상은 곧 사라지기 때문에 아름답다.” 라는 말에 꽂혀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고, 검정치마의 노래가 생각나 노래를 틀어놓았고, 혼잣말을 풀어놓다 어지러운 책상에 앉았습니다.


시가 아닌 글을 쓰는 이유는 시가 써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써야 할 것만 같은 시간에 무엇도 써내리지 못하며 고통받기가 싫어서 쓰는. 두려움과 예단을 여기에 두고 갑니다.


무언가를 위해 마련된 무대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신도 운명도 믿지 않는 미련한 제게도 그런 감각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는데, 그게 오늘의 새벽인 것 같습니다. 생각 없이 뱉던 혼잣말들이 벽을 타고 돌아와 내게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은 인정하기 싫어 미루어놓았던 몇몇의 감정을 마주해야만 하는 시간인가 봅니다. 안쓰럽기도, 싫기도 합니다. 책하고 탓하기도 해봤고, 무시도 했고 회유도 했습니다만, 지금 나의 답은 쓰다듬기,입니다. 더는 미루지 않고 그들의 머리부터 어깨까지, 그들이 만족할 때까지, 천천히. 그것이 무대가 마련된 이유인 것 같습니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나 봅니다. 어쩌면 잊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알려주어서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바뀌는지도 모른 채로 바뀌었던 변화들이 뒤늦게 나를 붙잡습니다. 나아가야 했기 때문에, 뛰어야 했기 때문에 달아두었던 허물이 경주가 끝난 말에게 찾아왔습니다. 썩는지 모르는 채로 방치된 먹다 만 배달음식을 심한 악취를 맡고 나서야 발견했습니다. 어질러진 책상이 있습니다. 저번에 미루고 미루다 산을 쌓고 나서야 치워보았는데 5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미루고 있습니다. 책상 오른쪽 위 선반에는 이미 시들어 축 처진 식물이 있습니다. 식물의 뒤에는 파란색 표지의 <에덴의 메아리>, 저번 학기 문학회에서 발표했던 소책자가 있습니다. 이 책의 시작은 자신 있게 써냈던 나의 글로 시작합니다. 학번이 가장 높은 나의 글로 시작합니다.


나비는 어떻게 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그러게요. 어떻게 그런 와중에 달리고 또 달려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요. 당연함에 의문을 품으면 때론 소중한 것을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시를 끄적인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으면서도 빗겨가기가 어렵습니다. 26년을 우회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자다 깨서 글을 썼고,

휑해진 모니터 위의 벽지로 감정을 정리했고,

우려하기 위해 글을 마무리합니다.

해피뉴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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