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7. 느티나무 그늘이 아름다웠던 시절

느티나무 그늘이 아름답게 펼쳐지던 우리 마음의 고향 귀곡국민학교

by 석양지가


Episode 7. 느티나무 그늘이 아름다웠던 귀곡국민학교

충남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에 위치한 귀곡국민학교

나지막한 향나무 담장에 숭숭 뚫려 있던 개구멍과 단층 건물로 지어진 작고 초라한 작은 초등학교

“歸谷’이라는 한자풀이대로 골짜기로 돌아온다는 뜻의 아늑하고 작은 골짜기에 자리 잡은 우리들의 지상낙원이었던 귀곡국민학교.

전 학년이 한 개 반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전교생이 200명쯤이나 됐었을까?

1학년부터 3학년 교실은 시멘트 건물이며 4학년부터 6학년은 그보다 조금 높은 목조식 건물로 만들어져 있어고 교사 앞에는 작은 운동장과 그 운동장 주변으로는 나지막한 향나무 울타리가 이어지고 교문 앞에는 너무도 커다랗게 느껴지던 느티나무가 그 옆으로는 정글짐이 있었고 그 옆으로는 우리가 매달리기에 너무 높게 느껴지던 철봉과 그리고 갑순이네 송방(지금의 작은 구멍가게)으로 이어지던 반짝반짝 길이 나있던 작은 후문, 그 옆으로 우리들의 목말랐던 갈증을 채워주던 수돗가, 그리고 우뚝솟은 플라타너스 나무와 미끄럼틀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옆쪽에는 작은 잔디밭에 하얀색 집 모양의 백엽상(온도계와 건습구 온도계)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그 잔디밭 주변으로는 각종 광물 표본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잔디밭 끝자락으로 혼자 가기에는 무서웠던 푸세식 화장실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음악시간마다 풍금을 가지러 갔던 두 칸으로 구성되어 있던 교무실이 있었고 그 교무실 복도를 나와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던 나무복도에 6학년과 5학년 4학년 교실이 자리 잡고 있었다.

4학년 교실 앞에는 가을이면 노란 은행잎을 한가득 운동장에 수노아 주던 은행나무가 우뚝 서 있었다. 1968년 개교하고 1993년 학생수 감소로 폐교가 되어 더 이상은 그 모습을 찾아볼 길이 없는 것이 너무도 안타깝다

그 귀곡국민학교에 코 흘리게 우리는 유치원을 건너뛰고 한글도 모르는 상태에서 가슴에 손수건을 매달고 입학을 했다. ㄱ,ㄴ,ㄷ, 을 네모난 노트에 적으면서 한글을 깨쳐 나갔고 학업이 늦은 아이들은 여지없이 나머지 공부를 했다.

그 흔한 학원도 과외도 없는 학습 청정지대에서 학교는 우리에게 공부보다는 놀이의 장이었던 듯하다.

아이들과 함께 공기놀이도 오징어찡이라는 놀이도 비석 치기도 고무줄놀이도 너무도 재미있는 하루하루였다.

우리 동네에서 귀곡초등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동구밖을 나가 귀곡리 쪽으로 길게 뻗어 있던 둑길을 30분 정도 걸어가야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름이면 길앞잡이가 이리저리 뛰는 것을 잡으려 함께 뛰었고 길옆 흐르는 냇가에서 물수제비 놀이도 하다가 길 옆 미란이네 당근밭에서 당근도 몰래 뽑아먹고 온갖 장난과 놀이를 하며 학교를 갔던 듯하다.

귀청이 떨어져 나가듯 울던 매미가 지칠 때쯤이면 우리는 손에 탐구생활 책을 쥐어들고 여름방학을 맞이했으며 여름방학 숙제 중 가장 하기 싫었던 것이 하얀 편지 봉투에 잔디씨를 한가득 훑어 가야 했던 것과 일기장 기록이었던 것 같다.

여름방학을 허송세월로 보내고 개학을 맞이했고 개학과 동시 가을 운동회준비를 해야 했다. 가을운동회는 청군과 백군으로 나눠서 진행을 했고 운동회 준비 중 가장 싫었던 것이 포크댄스였던 듯하다. 여학생과 남학생이 짝이 되어 손을 잡고 포크음악에 맞춰 율동을 해야 하는 것이 왜 그리 싫었던지… 서로 손을 잡기 싫어 작은 나무막대를 이용해서 서로를 피했던 그 쑥스러움의 순수함이 지금은 그립다.

운동회 당일 아침 비가 안 오기를 손꼽아 기도하며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의 마음으로 귀곡 국민학교로 가는 그 둑길에 올라서면 저만치 학교의 운동장을 수 노았던 만국기가 펄럭거렸고 운동회 단골음악(아마도 콰이강의 다리 행진곡이었던 듯)이 울려 퍼지면 나의 마음은 벌써 백 미터 출발선에 서있는 떨림이었다.

운동회 당일 우리가 그리 기다리는 것은 그 커다란 느티나무 그늘아래 온갖 군것질 거리와 장난감을 가지고 나와 팔던 그 장사꾼을 기다렸던 마음이 제일로 컸던 듯하다. 화려한 그림의 딱지, 화약총, 큰 플라스틱 칼과 방패세트, 그리고 우리 입안을 달콤하게 채워주던 아폴로, 엿, 사탕 등등 일 년에 딱 세 번(봄소풍, 가을소풍, 가을 운동회) 정도의 호사를 누리는 날이었다.

청군 백군이 나눠서 점심시간 이후 펼쳐지던 오재미 주머니로 던져 터트리던 박 터트리기 게임은 거의 목숨을 걸고 던졌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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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운동회의 하이라이트는 청군 백군의 이어달리기가 가장 핫한 종목이었다.

역전을 하는 장면이 펼쳐지면 운동장이 떠나가라 우리들의 함성이 커져갔었다.

소고(작은북모양)를 사서 소고 춤을 추고, 파란색과 하얀색의 양면으로 되어 있던 머리띠를 사야 청군과 백군의 표시가 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우리들의 운동회는 막을 내리고 추석 연휴로 이어지는 가을의 단기방학을 맞이했던 듯하다.

가을바람이 서청구레의 들녘을 훑고 지나가면 학교는 이제 슬슬 겨울맞이를 하기 위해 솔방울을 주워오는 숙제를 내줬다.

그때당시 교실의 난방은 조개탄이라고 불리던 까만색의 조개모양의 석탄을 배급받아 겨울을 보내야만 했고 그것 만으로 양이 부족했으므로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두 1인당 요소비료 포대 한 포대씩의 솔방울을 주워 가야 했다. 교실의 한가운데 설치된 난로는 우리들의 너무도 추었던 등굣길에 얼어붙은 몸을 녹여주기 위해 매캐한 연기를 뿜으면서 겨울아침 우리들을 맞이해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가난했던 그 시절의 초등학교 풍경이다. 아마도 지금 그렇게 하라고 하면 학부모들이 엄청난 민원을 제기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우리 모두는 숙제를 하기 위해 모두가 다 함께 공동작업처럼 산에 올라가 솔방울을 주워 비료포대를 채웠고 다음날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자기보다 더 큰 포대를 들고, 메고 학교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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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6년간의 초등학교 생활을 보내고 나면 모두가 각자의 길을 향해 진학도 하고 진학이 불가능했던 친구들은 직업 전선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우리들이 보냈던 그 귀곡초등학교.. 느티나무의 그늘아래 공깃돌 놀이 그리고 그 느티나무아래 놓여 있던 시멘트 의자 위에 그려졌던 장기판이며, 동서남북 게임 등을 하며 무더운 여름을 보냈던 곳. 가을이 오면 노랗게 쏟아져 내린 은행나무 잎을 밟으면서 운동장 조회를 나가던 그 시절 그 친구들..

개구멍으로 넘나들던 그 장난꾸러기 필구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십 원짜리 또는 오십 원짜리 동전을 들고 하얀 설탕 가루가 묻혀진 엿을 사 먹으러 넘나들던 그 후문밖의 갑순이네 송방은 어찌 되었는지? 귀곡 국민학교 나지막한 담장을 끼고돌아나가던 그 도랑의 개울물은 지금도 맑은 물로 흘러가고 있는지?

그 귀곡 국민학교 숙직실에서 생활하시던 소사 아저씨는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실지?

너무 오래 전의 기억들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생각나는 요즘이다.

귀곡국민학교 앞에 놓여 있던 불원리로 향하던 그 시멘트 다리는 지금은 더 튼튼한 다리로 변해 있을지?

이번 겨울방학에는 꼭 귀곡리를 한번 가봐야겠다 그리고 곱돌계에서 귀곡리로 이어지던 그 둑길을 한번 걸어 봐야겠다. 그 시절 친구들과 함께 걷던 그 길을 한번 걸어봐야겠다. 미란이네 당근밭에서 담배한대를 피우면서 그 시절 미란이네 밭에서 몰래 뽑아 먹은 당근에 대한 사과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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