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팠던 나의 십 대, 어머님의 흰 우유와 단팥빵
1988년 서울은 그 춥고도 길고 잔혹했던 한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고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86 아시안 게임을 서울에서 치르고 서울의 달동네라 부르던 곳 들은 도시정비계획과 도시 미관 개선과 토지활용의 명분으로 강제 철거가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으며 달동네 주민들은 그 강제 철거에 맞서 힘겨운 투쟁으로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키려 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는 가수 정 00의 "아! 대한민국"이라는 노래가 거의 매일 들려 나오며 마치 내가 생각한 모든 것이 마법처럼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질 것 같이 전국에 울려 퍼졌다.
나는 그 당시 충남 예산의 산골에서 큰 형님의 뜻에 따라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도봉구에 위치한 도봉중학교로 전학을 하게 되었다.
낯선 서울에서 시골 촌뜨기가 생활을 하면서 참 많은 것이 나를 향수병에 걸리게 만들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나는 서울 하계동에 위치한 대진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됐으며 그 "대진고등학교"에서 나의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렇게 저렇게 고등학교생활을 지내던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을 맞이했고 입시에 대한 부담감으로 매일 고민만 머릿속에 가득 찬 상태로 지내고 있었다.
3학년의 시작과 동시 나는 운동을 하던 몇몇 친구들의 권유로 체육과로 진로를 변경하였으며, 그 십여 명의 아이들과 함께 아침과 저녁운동을 하면서 체육대학 진학을 위해 실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도시락을 두 개씩 준비하고 아침운동이 끝나고 도시락을 먹고 저녁 운동이 끝나고는 밥도 못 먹고 밤 10시까지 이어지던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15번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면 나의 유일한 사교육"EBS TV과외"를 하루 한 과목씩 들으면서 서한샘 선생님의 "돼지꼬리 땡야~~~~"소리에 그 힘들고 피곤함에도 잠을 쫓으면서 밤 1시까지 하루 노동에 지쳐 쓰러지셔서 주무시는 아버지와 어머님의 코 고는 소리를 함께 들으면서 시청했다.
그 당시 우리 어머님은 봉제공장에 "시다(특별한 기술 없이 재봉사가 재봉을 해 내 노은 제품에서 쪽가위로 실밥을 정리하는 일을 하던 노동자)"로 근무를 하셨다.
내가 살던 집은 남의 집 한쪽 마당에 위치한 5평 남짓의 단칸방이었다. 하루 노동에 지쳐 주무셔야 할 부모님과 4당 5 락(4시간 자면 합격하고 5 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대학 입시생들의 수면시간)이라는 수험생으로써의 나의 공부시간으로 형광등을 기준으로 단칸방의 반을 철사줄을 띄워 커튼을 치고 형광등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
어머님은 나의 고3생활에 많은 걱정과 미안함을 표현하셨다."고기도 못사먹이고 미안하다"라는 말씀을 버릇 처럼 하셨다.
매일 계속되는 운동과 공부에 체중은 계속 줄어 갔고 얼굴은 누렇게 떠가고 있었다.
아마도 나는 그때 정말 대학에 너무도 간절히 가고 싶었다. 그 이유는 아무것도 없는 맨주먹의 삶이 그나마 대학이라는 졸업장이 나의 인생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과 또 그 당시 KBS에서 방송되던 " 사랑이 꽃피는 나무"라는 드라마에서 최재성, 손창민 등의 배우들이 대학 캠퍼스의 낭만을 그려내고 있었으며 여기에 대한 대학교 생활의 막연한 동경 또한 존재 했던 듯 하다.
그렇게 몇 달간의 고3을 보내고 있을 때 언젠가부터 야간 자율학습을 끝내고 집에 오면 나의 책상 위에 쭈글쭈글한 단팥빵과 서울우유가 하나 놓이기 시작했다. 나는 저녁도 못 먹고 운동과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온터라 너무도 맛있게 그 우유와 빵을 먹었다.
어느 토요일 마침 나도 일찍 집에 왔고 우리 어머님도 일찍 오셔서 문득 생각이난 그 빵과 우유의 정체에 대해 어머님께 물었다.
어머님은 " 공장에서 야간근무를 할 때 간식으로 주는 것인데 나는 생목(역류성 식도염)이 올라 그 빵과 우유를 안 좋아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아~ 우리 어머님은 빵과 우유를 안 좋아하시는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고3을 성공적으로 보내고 그리도 내가 간절하게 원하던 대학에 합격을 했다.
그리고도 시간이 흘러 대학 4년을 너무도 성실하게 보내고 ROTC를 지원하여 대학 졸업과 동시 군장교로 임관하여 나는 전라도 광주의 상무대로 OBC(장교 초급반) 교육을 받으러 떠났다.
첫 휴가 때 월급을 타서 어머님 용돈도 준비하고 기쁜 마음으로 오랜만에 집으로 휴가를 왔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어머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갈증이나 물을 마시려 냉장고 문을 여는 순간 냉장고 안에 먹다가 반쯤 남아있는 1000ML의 서울우유와 그 옆 쌀통 위에 바구니에 빵이 몇 개 있었다.
나는 어머님께 "엄마 누가 왔다 갔어요?"라고 물어봤고 어머님은 "아무도 안 왔다 갔다"
라고 대답을 하셨다. 나는 그러면 이 우유와 빵은 뭐냐고 물어봤다.
어머님은 "응 내가 먹으려 사다 놓은 것이라고 " 말씀을 하셨고 나는 그 순간 4년 전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그 흰 우유와 단팥빵은 우리 어머님도 그렇게 드시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에 냉장고 문을 잡고 한동안 멈춰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공장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하시고 야간 수당을 받으시려 야근을 하시면서 간식으로 나온 빵과 우유를 자신의 손지갑에 꾸깃꾸깃 넣으셔 집에 있던 막내아들을 주시려고 주변 눈치를 보시면서 집으로 가져오신 우리 어머님의 사랑..... 나는 순간 눈물이 핑 돌고 고3시절 철없이 내 입으로 넣었던 그 빵을 냉장고를 부여잡고 토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얼마나 배고프시고 드시고 싶으셨을까?
어머님... 그 빵과 우유를 먹고 제가 이렇게 잘 살고 있는 듯합니다.. 이 글을 빌어 진심으로 어머님께 감사드리고 그 빵과 우유는 저의 인생에서 가장 맛있던 빵이었고 우유였습니다.
어머님 감사합니다.. 용기 없는 막내가 이렇게 글을 빌어 감사인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