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2. 너구리 우동과 어머니

그 배고프던 시절 너구리 우동 하나에 인생을 배웠다.

by 석양지가

나는 라면을 너무도 좋아한다.

예전 시골에서 농번기 일을 할 때면 어머님이 국수 9:라면 1의 비율로 끓여 주시던 국수 라면에서 숨은 그림 찾기처럼 라면의 면발만을 골라 먹던 그 시절.. 참 라면도 귀했던 시절이다.

개인적으로 라면도 국수도 푹 퍼진 것을 좋아했던 나는 새참으로 집에서 밭에까지 내가는 사이 퉁퉁 불어 진 라면 가닥이 그렇게도 맛있었다.

요즘 아이들이 배고픈 시절이 있었다라고 하면 "라면이라도 끓여 먹으면 되잖아요"라고 말한다고 하던데

그 시절에는 소고기 라면도 너무도 귀했던 시절이다.

서울로 올라와 중.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우리 집은 가정 형편이 좋지 못했기에 라면도 그리 흔한 음식이 못되었다.

1988년 아마도 내가 고등학교 1학년 5월쯤 되었던 듯하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왜 그리 반항적이고 부모님을 원망하고 싫어했는지....

왜 내가 이런 집에서 태어났으며 한글도 모르시는 어머니와 술 주정뱅이 아버지를 만나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시절이었던 듯하다. 그러면서 혹시 내가 부잣집 아들인데 일부러 이런 힘든 집에 보내 고생을 시키고 나중에 이 미션을 잘 수행하고 나면 진짜 부모님(아마도 엄청 부자인)이 "짠"하고 나타나셔서 검은색 고급 자동차로 나를 데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었으니.(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온다..)

그날은 토요일이었고 학교에서 반나절만 수업을 하고 일찍 수업을 마치고 하교를 하고 있었다.

나의 주머니 속에 거금 500원이 있었고 마침 동네 슈퍼를 지나갈 무렵 문득 너구리 우동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500원은 그 당시 너무도 큰돈이었다. 버스 회수권이 100원이었으니 500원이면 학교를 두 번 갔다 오고도 100원이 남는 돈이었다.

슈퍼의 문을 열고 들어가 너구리 우동 라면을 집어 들었고 일반라면은 100원이었지만 너구리 우동은 200원으로 곱절이나 비싼 라면이었다.

계산을 하고 집에 돌아온 나는 어머님께 너구리 우동을 드렸고 어머니께서는 공장에 다녀오신 그 힘든 몸으로 방 한편 구석에 있는 작은 부엌에서 곤로(지금의 가스레인지 같은 취사기구)에 양은 냄비를 올리고 너구리 우동을 끓이기 시작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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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쪽문 넘어 부엌에서 끓는 너구리 우동의 냄새가 입맛을 다시게 했고, 나의 뱃속에서는 "꼬르륵" 소리와 함께 이미 너구리 우동의 부드러운 면발이 목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어머님이 양은 쟁반에 냄비를 올려 김치와 함께 너구리 우동을내어 오셨고 나는 어머님 드셔 보라는 소리도 없이 한 젓가락을 후루룩 떠서 입에 넣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한 푹 퍼진 면발의 느낌이 아닌 약간 생라면 같은 느낌의 너구리 우동.... 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고 밥상 옆에 계시던 우리 어머님께 "엄마는 라면도 못 끓여"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내 주머니 속의 거금의 비상금을 털어 샀고 푹 퍼진 부드러운 너구리 우동의 맛을 잔뜩 기대하고 먹었던 나인데... 일반 라면을 끓이듯이 면이 익기도 전에 가지고 오신 어머니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어머님께서는 "아이고 야 내가 잘못했다 다시 끓여다 주마"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상을 들고 허리를 굽혀 숙이고 방 한쪽의 부엌으로 이어지는 쪽문을 열고 나가셨다.

나는 어머님의 그 모습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고 그 쪽문을 기다시피 숙이고 죄인처럼 나가시는 어머님의 모습에 그리고 이런 우리 집의 현실에 너무도 화가 나고, 서럽고, 죄송한 복합적인 감정에 그 길로 집을 뛰쳐나와 집 근처 놀이터 으슥한 곳에 자리 잡은 그네에 앉아 펑펑 울었다.

왜 나는 이런 가난한 집에 태어나야만 했을까? 왜 우리 어머님은 내가 "라면도 못 끓이냐"라고 화를 냈을 때

자식을 따끔하게 "그럼 처먹지 마"라고 혼내시지도 못하는 저런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자식을 대하시는 걸까? 아마도 어머님이 "그럼 네가 끓여 처먹던가"라고 혼내셨다면 그렇게 서럽고 화가 나고 슬프지는 않았을 텐데...

그 어머님이 허리를 굽히시고 쟁반을 다시 내어가시던 그 모습이 눈물이 일렁이는 나의 눈동자 안에서 여울이 지면서 아른거렸다. 토요일 오후의 놀이터 그네에 앉아 있던 나는 벚꽃 날리던 아름다운 5월을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붓고 머리가 아플 정도의 어지러운 5월로 기억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고 40이 넘어 몇 해 전 명절에 나는 어머님께 사과를 드렸다..

"어머니 혹시 그때 너구리 우동 기억하시냐"라고 물었고 어머님께서는 정말 기억을 못 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모른 체 하시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제가 그날 죄송했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괜찬하다"고 말씀하시면서 "허허허" 웃음으로 정리하셨다.

나란 사람은 참 이기적인 듯하다. 1988년 그날 너구리 우동도 이기적인 나의 선호하는 면발을 요구했고

세월이 흘러 어머님께 사과한 것도 어머님 돌아가시고 나면 내 마음속에 너구리 우동을 볼 때마다 어머님의 아픈 기억이 떠올려질까 봐 두려움에 사과를 드린 것이다.

어머님 지금의 사과는 이기적이지 않은 진심의 사과를 올릴게요..

"어머님 당신은 흑백요리사보다 더 맛있는 밥과 식사로 저희 6남매를 키워주신 세상에서 제일가는 요리사셨습니다." "어머님 당신의 헌신적인 자식 사랑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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