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3. 어제는 까치설날, 오늘은 우리

까치까치설날은 어제고 오늘은 우리 우리 설날...

by 석양지가



요즘은 집 앞에 한 발짝만 나가도 아니 배달 앱으로 주문만 하면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아주 친절하게 집 문 앞까지 가져다준다. 너무도 내가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다. 우리 어릴 그 시절 겨울이 깊어 가고 새해가 다가올 무렵이 되면 우리 어머님은 명절을 보내기 위해 10일마다 열리는 예산 읍내 장을 보러 가셨다. 그때만 해도 집집마다 현금이 없어 집안에 있던 찹쌀이니 밭 언저리에 땅속 깊이 고이고이 묻어 놨던 무, 배추, 까만 콩등을 짙은 밤색의 플라스틱 대야에 한가득 담아 머리 밑이 빠지시는 줄도 모르고 코를 베어나갈 듯 불어 대는 찬 겨울바람을 뚫고 곱돌계에서 도보로 삼십 분을 걸어가야 나오는 불원리 신작로로 나가 하루에 열대 남짓 다니는 파란색 줄무늬의 시골 완행 버스에 올라 예산장으로 나가셔서 그것을 하루 종일 팔고 꼬깃꼬깃한 천 원 차리와 겨울 찬바람에 차갑게 식은 백 원짜리 오백 원짜리 동전으로 바꾸시고 내 주먹보다 작은 사과 한 무더기와 달콤함과 바삭거림의 오꼬시(쌀튀밥을 엿으로 뭉친 네모난 과자류) 과자 한봉다리, 그리고 설탕이며 식용유등으로 바꿔 오셨다.

장에 가신 어머니를 기다리는 하루는 너무나도 길었고 겨울 한낮 우리는 경사막의 꼬리네 집 언덕에서 아침나절 비료포대에 짚을 가득 채운 눈썰매도 타다가 겨울 햇살이 한가득 올라오는 낮이 오면 질척해지는 그곳을 피해 한자쯤의 나무막대기 와 아카시아 나무 끝을 서로 대칭이 되게 깎아 만든 새끼자를 들고 자치기를 하며 이십 자, 또는 삼십 자를 외쳐 대며 병연이네 마당에서 달령이 형네 논둑길을 오가며 땅바닥을 기어 다니며 열심히 상대방이 부른 수치가 틀리기를 기도하며 자치기 놀이에 열심히였다. 물론 자치기 놀이도 새끼자의 끝부분이 어미자로 때려 끝이 뭉툭해질 무렵이면 시들해지고 우리의 뱃속에서는 점심을 먹어야 한다는 배꼽시계가 꼬르륵 소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내 바로 위의 형과 함께 어머니가 해놓으시고 가신 찬밥을 꺼내와 검은색의 움푹 팬인 프라이팬에 쉰 깍두기와 어머니가 아끼고 아끼시는 참기름을 서너 방울 넣고 찬밥과 함께 안방 화롯불위에 올려놓고 열심히 비벼 나갔다. 프라이팬에서는 “칙칙칙” 소리와 함께 입안의 군침을 자극시키는 참기름 냄새와 쉰 깍두기의 냄새가 피어올랐고 그럴수록 뱃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더욱 커져 만갔다.

그 화롯불은 그 당시 지금의 가스레인지, 아니 인덕션보다 훨씬 더 사용도가 훌륭했다. 이른 아침 사랑방의 여물 끓이는 솥단지의 김이 피어오르고 소여물을 삶아 내고 남은 장작의 잔해인 불씨를 아주 작고 다 찌그러진 부삽으로 조심스레 담아내 허름한 방석 위에 올려 안방에서 난방용으로 또는 이렇게 우리 점심을 볶아내던 조리용으로 또는 겨울 추위에 딱딱하게 굳은 가래떡을 구워내던 간식용 화력으로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쉰 깍두기 볶음밥이 다되어 형과 함께 다른 반찬 없이 숟가락을 들고 정신없이 먹고 나면 바닥에 눌어붙은 밥을 숟가락을 뒤집어 너무도 박박 긁어 설거지가 필요 없을 정도로 먹어 치웠다. 그때쯤 되면 시장에 가신 어머님의 존재를 잊을 만도 하지만 우리 머릿속에는 오늘 어머님이 그 대야에 무엇을 한가득 담아 오 실 까에 대한 궁금함과 기대감에 다시 불원리 신작로를 가로지르는 버스로 눈이 갔으며 어둑어둑 해지는 둑길을 걸어 형과 함께 어머니 마중을 나가곤 했다. 불원리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 하염없이 우리는 어머니를 기다렸고 유리문으로 가게 안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던 불원리 상회의 가게 안에는 우리의 입맛을 다시게 하는 과자와 생필품들이 놓여 있었고 삼립 호빵을 담아 놓은 호빵찜기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우리의 시선은 연동 쪽 하늘 위로 어둠을 가르는 자동차의 불빛이 간간이 비춰 올 때마다 버스의 불빛이다, 아니 다를 반복하며 어머님이 타고 오실 버스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파란색 줄무늬가 선명한 완행 버스가 다가오고 그 안에서 내릴 준비를 하시는 어머님을 보고 그 몇 시간의 기다림의 추위도 한순간에 날아가고 “치이익” 소리와 함께 멋쟁이 빵모자를 눌러쓴 버스 안내양의 문 여는 소리에 우리는 버스에 올라갈 기세로 문 앞에서 어머님을 맞이했다. 하루 종일 추위와 기다림에 지쳐 있었을 어머니 보다 어머님의 그 대야 안에 내용물에 우리의 시선은 고정이 되었으며, 궁금함을 안고 어머님과 함께 다시 불원리에서 이어지는 겨울밤 둑길을 따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고 대청마루에 내려놓은 어머님의 대야 안에는 우리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과와 오꼬시, 그리고 명절에 사용하실 식용품으로 한가득 채워 오셨다. 이제는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명절 준비를 하실 어머님의 명절 음식생각에 우리는 행복해했고 객지에 나간 우리 큰 형과 누나들이 언제쯤 올까에 설레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어머님은 사랑방 솥단지에 장작불을 피우시며 식혜물을 끓이 시작하셨다. 드디어 일 년 중 가장 달콤함을 우리에게 선사해 주는 “엿”을 고으시는 것이다. 사랑방 아궁이에서는 한겨울의 추위도 물리칠듯한 기세로 소나무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소죽을 끓여 내던 사랑방 큰 가마솥에서는 뜨거운 김이 활화산처럼 피어오르고 있었고 오늘만큼은 소죽이 아닌 우리를 위한 엿을 고는 용도로 사용되는 그 가마솥이 그리도 듬직하고 예뻐 보일 수 가없었다. 그 부뚜막 위에서 우리 어머님은 긴 나무주걱으로 계속 내용물이 눌어붙지 않도록 계속 휘저으시고 계셨다. 우리는 아침부터 나무땔감을 보관하는 헛간에서 깨끗한 나무 한가닥을 가지고 나와서 절구대 옆 벽에 보관해놓은 왜낫 한 자루를 꺼내 들고 아주 정성껏 깎기 시작했다. 이 나무의 용도는 나무젓가락 만하게 만들어서 엿이 다 되었을 때 그 끝에 엿을 돌리고 돌려서 뭉친 다음 사탕처럼 만들어서 빨아먹기 위함이었다. 아침부터 끓이기 시작한 엿은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갈 무렵에 완성이 되고 그 가마솥 안에서는 엿이 까만색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어머님은 그 엿을 두 가지 용도로 만드셨다. 하나는 물엿(조청)으로 만들어 가래떡을 찍어 먹거나 과즐(찹쌀가루로 만들어서 발효시킨 다음 기름에 튀기어 내어 튀밥을 엿에 붙여서 만드는 한과)을 만드는 용도로 사용하고 또 하나는 볶은 콩이나 견과류와 섞어 식힌 다음 굳혀서 콩가루를 듬뿍 묻혀서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용도로 만드셨다. 엿으로는 무엇을 만들어도 맛있었으며, 겨우내 너무도 소중하게 아껴 먹는 간식이었다.

이 엿이 다 고아지고 엿으로 이것저것을 만들어 부엌을 지나 안마당 끝으로 가다 오른쪽으로 자리 잡고 있는 광에 명절 음식이 하나둘 완성되어 갈 때면 객지에 나가 일을 하던 우리 큰형, 큰 누나, 둘째 누나가 돌아오는 시간이 돼 간다는 뜻이었다. 또다시 나의 눈은 불원리로 이어지는 둑길로 향해 있었으며, 혹시라도 그 길의 끝에서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혹시 누나? 혹시 형? 인가하고 바라보기를 반복했다.

그 당시 큰 곱돌계와 작은 곱돌계의 청소년들은 대부분이 학업을 다 하지 못하고 객지로 일찌감치 나가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나중에 뒤에서도 이야기하겠지만 대부분의 우리 누이들은 충남방적이라는 방적회사에 다니며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야간 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하는 형태의 노동으로 그 젊고도 아름다운 십 대 나이를 그 충남방적의 기계음속에 그 십 대의 어깨 위에 짊어진 무거운 생계의 책임에 울음소리를 묻었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고귀하고 소중한 희생인가? 이 땅에서 가진 것 없는 시골 농사꾼의 아들로 딸로 태어났다는 죄로 그 아름다운 시절을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기름때를 묻혀가면서 또 방적 회사의 쉼 없이 돌아가는 기계음과 먼지 구덩이 속에서 그 아름 다웠어 야 할 그 시절을 보상받지 못한 채 지금 60대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우리 누님들. 다른 사람들은 무식하고 무엇을 모른다고 바보 같다고 창피해할지라도 우리 가족만큼은 가장 소중하고 가장 아름다운 형제들임을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다.

그렇게 소중하고 반가운 누나들이 형이 그 둑길에 나타났다. 양손에 선물 보따리와 함께. 나는 겨울 털신을 신고 겨울바람을 양쪽 귓가로 날리면서 우리 형과 누나들을 맞이하러 동구밖을 향해 달려 나갔다. 형과 누나들은 그 당시 시골에서 볼 수 없는 세련된 옷차림에 양손 가득 선물 보따리와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소주를 사들고 고향집을 방문했다.

그런데 우리 큰형 옆에는 처음 보는 아줌마가 한분 계셨다. 큰 담근 술병을 안고 종이 박스로 된 그 귀하디 귀한 제주 밀감(귤)을 한 박스 들고 너무도 곱고 예쁜 모습의 도시적인 여자분이 함께 오셨다. 바로 우리의 큰형수가 되실 분이었다.

나는 그분 무릎에 앉아 볼에 뽀뽀도 해 드리고 신이 나서 이렇게도 봤다가 저렇게도 봤다가 했던 것 같다. 집안이 오랜만에 가족들로 붐비기 시작했으며, 안방과 윗방뿐만 아니라 아무도 사용하지 않던 사랑방에 굼불이 때어지면서

어머님은 새 이불을 깔아노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골의 솜이불은 무거워도 너무 무거운 이불이었다. 하지만 그 한겨울 위풍이 거센 시골의 흙집벽으로 또 문풍지 사이를 뚫고 들어 오는 찬바람을 막아주는 보온 효과와 전설의 고향 속에서 나오는 귀신의 무서움을 막아주는 최고의 이불이었던 듯하다. 그렇게 풍성한 명절을 보내고 우리 형과 누나들은 또다시 불원리 길을 걸어 다시 각자의 삶의 터전인 객지로 향하고 다시 곱돌계의 5번지 집은 일상을 찾아갔다. 또 언제 우리 형과 누나들이 올까? 하는 기대감으로 또 몇 달을 보내야 하는 쓸쓸함이 감돌았고 곱돌계에서 불원리로 이어지는 그 둑길은 만남의 설렘과 기다림의 들뜬 마음, 그리고 이별의 아쉬움이 공존하는 내 마음속의 설렘 그록 아쉬움의 감정이 반복되던 길이었던 듯하다. 그 둑길 끝에 있었던 아주 작은 시골 예배당의 종탑은 지금도 은은한 종소리를 내고 있는지? 그 예배당 옆을 휘돌아 내려오던 시냇물에는 아직도 갈겨니며, 중태미며, 돌고기등이 헤엄치고 있는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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