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손으로 서쪽 하늘 붉게 물들이시던 우리 할머니
술로 당신의 한 삶을 보내신 우리 아버지에게도 어머님이 계셨다. 나에게는 할머니. 우리 할머니는 오래전 중풍(뇌졸중)으로 인하여 한 손이 마비가 되셨고 한 손으로만 생활하시는 분이셨다. 나의 어린 기억 속에 할머니는 그저 조용한 분이셨다. 그 모진 세월을 움켜쥔 한 손에 다 감추시고 사시 다가 저 노을이 지는 저녁 하늘에 총총히 빛나는 별들 사이로 가신 듯 나의 기억 속에 남아 계신다.
지금 생각해도 우리 아버지는 참 못되셨다. 그 몸이 편치 못하신 당신의 어머님 앞에서도 그 한 손으로 말리시는 당신의 어머님 앞에서도 그리 모진 짓을 다 하시고 가족들을 힘들게 하신 것을 보면 우리 아버지는 참 대단하신 분이다.
어머님이 장에 가시고 집에는 나와 할머니 둘만이 있는 날에는 그 어린 나이에 양철 밥상에 할머님 드실 반찬과 밥을 챙겨 할머니와 함께 밥을 먹었다. 또 사랑방 솥단지에 끓여 노은 구수한 소죽을 양동이에 퍼 담아 손잡이에 지게 작대기를 끼워 할머님과 함께 외양간의 소구유에 쏟아 소죽도 주고 장에 나간 어머님이 돌아오시길 기다렸다. 대청마루에서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나중에 대통령이 되면 할머니 맛있는 거 많이 사드린다고 귀여움도 떨고 박하사탕도 많이 사드린다고 할머님께 약속도 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죽음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듯하다. 그런 할머님이 영원히 내 곁에 계실 줄만 알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할머님은 그 해 겨울이 시작될 무렵 태안에 계신 작은아버지 집으로 가셨고 찬바람이 잦아들던 봄이 오는 길목의 어느 날 밤 꿈속에서 아이들과 뒷동산에서 노는 꿈을 꾸고 있었다. 갑자기 커다란 뱀 한 마리가 나의 몸을 칭칭 감고 올라왔고 그 무서움에 새벽녘 잠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깨어난 지 얼마나 흘렀을까?
우리 동네에는 그 시절 전화기가 없었으며 건넛마을 불원리 약국에 전화기가 있었다. 그 새벽녘 그 불원리 약국의 아저씨께서 절뚝거리는 다리로 자전거를 타고 오셔서 어머님과 아버지를 깨우셨고 할머님이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전하 셨다. 나는 꿈에 나온 그 뱀이 얼굴도 못 뵈었던, 우리 아버지가 아주 어릴 적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가 나오셔서 할머님의 죽음을 알려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해 대률리 큰아버지 집이 있는 밤이라는 동네 뒷동산에 햇볕이 잘 드는 그곳에 우리 할머님은 수양버들의 새싹이 물을 머금고 올라오려는 계절에 편안하게 뭍이 셨고 당신의 가슴속에 응어리진 모진 세월의 슬픔을 움켜쥐셨던 그 손을 펴지도 못하신 채 그렇게 진달래가 피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나는 가끔씩 곱돌계 그 작은 집 툇마루에서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있으면 할머님의 그 거친 한 손으로 내 등을 긁어 주시던 그때가 떠오르곤 한다. 아마도 할머니는 흙두드리 산 너머로 넘어가는 해가 저녁 하늘을 빨갛게 물들이 듯이 나의 작고 여린 등을 붉게 물들이시며 당신의 황혼의 저녁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 할머니 우리 할머니 오늘도 흙두드리 저녁 산 노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신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