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돌계의 동구밖 청보리밭의 엿장수
지금이야 달콤함과 단맛을 내는 과자와 사탕이 흐드러지게 많지만 그때 만해도 과자는 일 년에 한 두어 번 먹어 보는 아주 귀한 군것질거리였다. 누군가의 집에서 제사나 또는 시제를 지내고 나면 나오는 요강사탕(요강모양의 사탕이라 해서 이렇게 부름 정식명칭은 “옥춘”), 종합젤리등이 나올 때면 어린 마음에 “왜 우리 집은 제사가 없지?”라는 생각에 아쉬워했다. 당연히 우리 집은 아버지가 둘째시다 보니 제사가 없는 상황인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가끔 그 귀한 흑설탕을 다 써갈 때 쯤되면 엄마에게 졸라서 그 엄마의 낡은 찬장 안의 흑설탕 봉지를 얻어 봉지 안에 묻어있는 설탕부스러기를 우물물 한 바가지를 넣어서 열심히 흔들어 달콤한 설탕물을 마시곤 했으며, 밭일을 나가신 어머님과 아버님이 여름 더위에 힘드실 때쯤 되면 노란 양은 주전자에 시원한 우물물을 한 바가지 넣고 “당원(하얀색의 알약 같은 당류)”을 한알 넣어 밭으로 내어 가곤 했다.
그만큼 그 시절 노동 강도에 비해 열량을 충분히 취하지 못했기에 아마도 더욱더 단것이 그립고 당겼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러한 단것에 대한 갈망은 우리 아이들에게는 풀 수 없는 과제였고 가끔 아주 가끔 우리가 가장 좋아는 엿장수가 오는 날에는 입안에 엿을 넣지 않아도 행복하고 설레었다. 아마도 지금 아이들이 택배 기사를 기다리는 것보다 이백배는 더욱 설레었던 것 같다. 아마도 내 기억에 6월 초쯤이었던 그날도 저 동구밖에서부터 엿장수의 가위소리가 병연이네 집 마당에서 딱히 할 것 없이 모여 있던 우리들의 귓가에 들여오기 시작했고 우리 서로의 머릿속에서는 집에 엿과 바꿔 먹을 것이 뭐가 없을까?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대도 잠시 비료포대와 양은냄비, 그리고 고무신, 쇠붙이등을 받아가는 엿장수에게 내어줄 만한 것이 녹녹지 않은 시골 살림에 우리들의 실망은 현실이 되어 입맛 다심으로만 돌아오고 있었다. 엿장수는 우리 눈앞에 가락엿, 판엿이 가득 담긴 엿 리어카를 세워두고 이리저리 고물을 찾기 시작했다. 병연이네 집 뒷모퉁이를 돌아 우리 집 쪽으로 올라가며 가위소리가 우리 집 바깥마당을 지나 꼭대기 집으로 향하는 듯한 거리가 느껴졌을 때 우리 마음속에는 엿을 내입에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져 갔고 우리는 누가 말할 사이도 없이 그 하얗고 길쭉한 가락엿을 한 움큼씩 손에 들고 병연이네 마당에서부터 꼬리네 집모퉁이를 향해 내달렸고 드디어 느티나무를 지나 유월의 햇살을 가르며 동구밖으로 내달렸다. 맨발에 신은 검정 고무신은 긴장과 더위에 땀으로 나의 발과 따로 놀고 있었으며, 동구밖 둑길 넘어 보리밭으로 기어들어갔다. 달리기와 엿서리로 나의 심장은 터질 듯이 쿵쾅거렸고 나의 손에서는 유월을 이른 더위에 그 희고 부드러웠던 엿가락은 오뉴월 더위에 늘어진 소부랄처럼 나의 손에서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 엿을 나의 입에 넣는 순간 나의 목덜미에 와닿는 우악스러운 손길과 “이놈의 새끼들”이라고 외치는 소리에 순간 심장은 멈춘 듯했고 우리 모두는 현행범으로 그 자리에서 엿장수의 손에 끌려 다시 병연이네 마당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그 순간이 얼마나 길고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으며, 얼마나 애원했던가. “아저씨 엿 여기 있슈..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잘못했어…” 우리 모두는 엿장수에게 애원하고 빌며 끌려갔다. 병연이네 마당에 모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엿장수의 선처만을 바라고 있었으나 엿장수는 절대 용서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이 소식을 들은 우리 아버지가 내려오셨고 아버지의 얼굴을 본 나는 “이제는 죽었구나”를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 우리 아버지의 의외의 반응이 나왔다 엿장수에게 우리 집으로 가서 술이나 한잔 하자며 달랬고 엿장수는 무슨 마음인지 한참을 거부하다 엿 리어카를 끌고 우리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바쁘게 없는 반찬으로 술상을 만들어 냈고 아버지와 엿장수는 대청마루에 앉아 술을 번갈아 들이키시며, 서로의 상황을 이야기하셨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버지가 엿장수에게 제안을 하셨다. 엿판을 걸고 엿치기를 하자는 제안을 하셨고 엿장수가 엿장수의 자존심으로 그 내기를 수락하였다. 드디어 우리 집 바깥마당에서 세기의 대결이 펼쳐졌다. 엿장수대 아버지의 엿치기 내기였다. 가락엿을 빠르게 양쪽으로 잘라 입김을 세게 불어 가락엿 절단 면에 구멍을 가장 크게 많이 내는 사람이 승리하는 경기였다.
우리들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과연 우리의 흑기사인 우리 아버지가 우리의 죄를 사면해 주실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내기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먼저 엿장수가 하얀 가락엿을 한가닥 잡아들었다. 그 거칠고 검붉은 엿장수의 손에 마주 잡힌 하얀 가락엿이 녹아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제발 제발 구멍이 없길 기도했다.
호기스럽게 엿장수는 그 거친 손으로 하얀 가락엿을 순간 부러뜨렸고 엿장수는 재빠르게 부러진 가락엿을 입으로 가져가 “훅훅”하고 바람을 불어 너었다. 호기스럽게 큰 웃음으로 엿장수는 자랑스럽게 구멍이 숭숭 난 가락엿을 보여주었다. 꽤 많은 구멍이 여리고 여린 가락엿의 절단면에 뚫려 있었다. 다음은 우리 아버지 차례였다.
하얀 밀가루가 가득 덮여 있는 엿 판 위에서 뒤적 이 시 던 우리 아버지가 하얀 가락엿 한놈을 골라 올리 셨고 그 투박한 손으로 가락엿을 마주 잡으셨다. 우리들은 장정구선수가 일본 선수를 맞이하여 권투경기를 할 때 응원하듯이 우리 아버지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아버지는 힘차게 가락엿을 “으랏차” 하시면서 부러뜨리셨고 가락엿에 남아있던 하얀 밀가루는 우리 집 바깥마당의 공중에 마치 축포를 쏘아 올리듯이 공중에 하얀 자국을 남기며 잘라졌고 잘라진 가락였을 째빠르게 좌우로 “훅훅”바람소리를 내시는 아버지 얼굴 주변에 날리었다. 마주 잡아 절단 면적을 보여 주시는 우리 아버지 가락엿의 절단면에는 누가 봐도 너무도 큼직한 검은 구멍들이 영롱하게 수없이 뚫려 있었다. 그걸 바라보던 엿장수도 “아이고야…대단하시네..”라는 감탄사로 우리 아버지의 승리를 인정하는 축하의 메시지를 우리들의 범죄를 용서해 주시는 감탄사를 쏟아 내셨다. 그 순간 우리 집 바깥 마당은 장정구 선수의 일본 선수와의 경기 승리의 현장인 장충체육관보다 더 뜨겁고 더 기쁜 우리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고 엿장수는 “아이고 내가 졌소”라는 말과 함께 저녁노을이 살짝 내리고 있는 그날 곱돌계 우리 집 바깥마당에 서있던 우리 아버지는 그날만큼은 우리들의 영웅이었고 우리들의 구세주였다.
그 이후로 엿장수와 아버지의 술자리는 계속되었고 저녁의 어둠이 뉘엿뉘엿 해 질 무렵 엿장수는 리어카에 있던 가락엿과 판엿을 모두 우리들에게 나눠 주시고 빈 엿 리어카를 끌고 껄껄껄 웃으시며 낮부터 이어진 술로 저녁 땅거미가 어둑어둑해지는 동구밖길로 비틀비틀 거리며 사라져 갔다. 나의 귓가에서 털거덕 거리는 빈 리어카의 소리가 멀어져 갈 때 그날 그리도 다듬이 소리처럼 쿵쾅 거렸던 나의 심장은 정상적인 속도로 돌아왔고 어느덧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우리 집 마당끝자락을 바라보며 오늘의 하루일을 그 마당 끝 어둠 속에 고수레를 던지듯이 던져 버리고 잊으려 애썼던 듯하다. 차갑게 식은 대청마루에는 늘어진 메리야스에 대충 걷어 올린 바지를 입고 누워 드르렁 코 고는 소리에 우리 아버지가 누워 계셨고 그날 그 아버지의 모습이 내게는 영웅이었고 슈퍼맨이 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