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그 따가운 아침햇살 그리고 불게 물들어 가던 그 여름의 저녁 노을
Episode 1. 우리 아버지
7월의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대청마루, 따가운 여름 햇살 아래 오늘도 파리들은 대청마루에서 아래쪽 신발들 사이로 아침부터 바쁘게 날아다니고 있다. 세월의 흔적을 느끼는 대청마루는 아침부터 따가운 7월의 햇살에 달궈져 오늘도 무더운 여름 하루가 될 것을 준비하라는 듯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그 뜨겁게 달궈진 대청마루 끝자락에 모여 양은 상위에 깍두기, 배추김치, 가지나물 무침으로 소소하게 차려낸 아침 밥상 부엌과 대청마루를 번갈아 오가시며 우리 어머님은 땀냄새와 반찬냄새에 옷 앞지락은 바쁜 아침상을 차려내느라 다 젖어 땀을 뻘뻘 흘리시며 없는 반찬에 자식들을 먹여 학교 보내려 아침상을 준비하셨다. 학교를 가기 전 아침밥을 먹기 위해 모여든 우리는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며 한 숯가락을 뜨며 “오늘도 무사히”를 마음속에 기도해 본다. 그러나 그 기대도 그 기도도 잠시 무엇이 마음에 안 드셨는지 아버지의 높은 언성과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그 아침 밥상은 어느새 저 앞 안마당으로 날아가고 여기저기 흩어져 목적 없이 모이를 쪼아대던 우리 집 닭들은 갑작스러운 진수성찬에 몰려들어 내가 먹던 그 밥의 흩어진 잔해를 너무나도 맛있게 쪼아 먹고 우리는 또다시 울음으로 “아버지 아버지 하지 마유”를 무슨 주문처럼 외쳐 대고 있었다. 너무도 무서운 우리 아버지의 얼굴 아침부터 술냄새에 뽀드득뽀드득 이빨을 가시며 질러대는 욕설”오하마로 다~~~” 온 동네를 다 뒤집어 놓는 그 목소리는 공포 그 자체였다.
허둥거리시며 우리를 챙기시고 흩어진 밥상 잔해의 살림살이를 주우시며 어머님은 우리들에게 “얼른 가방 챙겨서 학교를 가라”는 말씀으로 상황을 수습하려 하셨고 우리는 울음이 멈추기도 전에 가방을 둘러메고 안마당을 지나 대문을 나서며 바깥마당으로 나가면서 무거운 마음과 엄마에 대한 걱정으로 자꾸자꾸 뒤를 돌아보며 아랫집 병연이네로 향했다. 아랫집 병연이네에 들러 온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너무도 다정하게 아침 식사를 하는 병연이네의 모습을 보며 나의 마음속에는 “왜 우리 집은 이러지 못할까?”라는 생각에 또 한 번 가슴으로 울고 있었다. 아침식사를 마친 병연이 와 함께 동구밖으로 나서며 길게 늘어진 둑길을 따라 보이던 귀곡리의 나의 학교 귀곡국민학교를 여름 아침 햇살에 살짝 낀 안개 사이로 뿌옇게 바라보며 내 눈에 고인 눈물로 귀곡국민학교는 어지러이 흔들리고 있었다. 30분을 걸어 학교에 들어서면 우리를 반기는 오래된 느티나무의 그늘을 지나 단층 건물교실로 향했다. 그곳 귀곡국민학교 나의 유년시절 너무도 커다랗고 아름다운 그곳 그곳이야 말로 잠시나마 집에서 해방되어 나의 꿈을 키우던 행복의 낙원이었다.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그리고 향나무로 담장을 둘러싸고 있던 귀곡국민학교는 콘크리트 건물로 지어진 1학년에서 3학년교실 그리고 1미터쯤 높이 지어진 검게 그을린 나무목조로 지어진 4학년에서 6학년 교실 그 안에서 나는 우리 아버지를 잊고 아니 잊고 싶었다. 수업 중 몽롱함에 잠시 졸던 나는 칠판에 판서를 하시던 선생님의 분필이 “뽀드득” 거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아버지를 또다시 생각하게 하였다. 점심시간이 지나 오후 수업으로 풍금소리에 맞춰 “개나리”노래를 병아리들처럼 부르고 있던 그때, 교실 문이 반쯤 열리고 소사 아저씨(아마도 지금의 학교 기능 실무사)의 방문으로 담임선생님이 잠시 복도로 나가셨고 잠시뒤 조용히 담임선생님은 나를 부르셨다. “형구야 얼른 가방 챙겨서 가봐야겠다. 지금 아버지가 불원리 다리쯤에 자전거랑 사료를 다 내 팽게 치시고 계신다네” 걱정스러운 눈빛의 담임선생님의 말씀, 그 순간 나의 심장은 10박자 더 빨리 뛰기 시작했고 걱정스러운 담임선생님의 눈빛보다 백배 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부랴부랴 가방을 챙겨 한달음에 집으로 내달렸다. 집에 도착한 나는 가방을 던져 놓고 우리 동네에서 바라다보이는 30분 거리의 불원리 다리로 달려갔다. 현장은 참혹했다. 아버지의 주 교통수단이었던 삼천리 신사용 자전거는 아무렇게나 넓러 져 있고 자전거 뒤에 실려 있던 돼지 사료는 옆구리가 터져서 노란 사료가 반쯤 땅바닥에 쏟아져 있었다. 나는 다시 한숨과 눈물로 그 돼지 사료를 쓸어 담으며 아버지는 어디 가셨을까?라는 생각에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빈 비료 포대에 돼지사료를 쓸어 담고 자전거에 실어 집으로 돌아왔고 어머님은 아버지의 행방을 찾아 보라며 나를 다시 불원리로 내보 내셨다. 우리 아버지가 가실 곳은 딱 두 군대였다. 불원리에서 선술집으로 영업을 했던 모경이네 아니면 영진이네였다. 역시 우리 아버지는 모경이네 집 방 안에서 한 곡조 뽑으시며 술을 거나하게 드시는 중이었다. 나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아버지, 아버지.”를 불렀다. 방 안에서 노랫소리가 멈추고 미닫이 문이 반쯤 열리더니, 진한 화장끼의 모경이 엄마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 뒤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고 왜 왔냐며 호통소리에 나는 “엄마가 아버지 모시고 오래요..”라는 말을 던졌다. 그 뒤 이어지는 아버지의 호통 알아서 갈 테니 얼른 가라는 아버지를 뒤로 하고 나는 또다시 불원리에서 자그마한 미루나무가 양쪽에서 잎사귀를 팔랑이는 그 길고도 무서운 둑길을 걸어서 여름 해가 저물어 가는 어둑어둑해진 곱돌계 앞 개울가의 흔들리는 외나무다리에 도착했다. 외나무다리에 앉아 저녁노을이 빨갛게 지는 서쪽 산을 바라보다 개울물 흐르는 소리에 바라다본 곱돌계 포막의 개울은 너무도 아름답게 붉게 타들어 가듯이 내 눈에 담지 못한 여름 저녁의 하늘을 가득 품고 있었고, 그 붉게 물든 개울물에는 여름 피라미들이 무엇이 그리 좋은지 팔짝 거리며 어지럽게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어린 나이에도 한참 동안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그 개울가에 앉아 나의 힘들었던 그날을 하염없이 흘러가는 곱돌계 개울물에 흘려보내려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날 곱돌계 외나무다리에 앉아 나의 눈에 담아내던 그 여름 저녁의 산과 들, 그리고 붉게 타들어 가던 저녁 하늘은 마치 나를 바라보며 “오늘 고생 많았어 괜찮아, 괜찮아, 좋아질 거야..”라고 무언의 읊조림으로 나의 힘들었던 하루를 위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