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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윤수 Feb 08. 2023

저 너머로 지는 오후

퇴근했으니 재즈 엘피 009

찰리 헤이든과 팻 메스니의 ‘미주리 하늘 저편(단편들)‘

Charlie Haden and Pat Metheny - Beyond the Missouri Sky (Short Stories)

2018년 프랑스 리이슈 M/M 기준


A면

Waltz For Ruth

Our Spanish Love Song

Message To A Friend


B면

Two For The Road

First Song (For Ruth)

The Moon Is A Harsh Mistress

The Precious Jewel (In Memory Of My Father Carl E. Haden)


C면

He's Gone Away (In Memory Of My Mother Virginia Day Haden)

The Moon Song

Tears Of Rain


D면

Cinema Paradiso (Love Theme)

Cinema Paradiso (Main Theme)

Spiritual (Dedicated To My Son Josh)


앨범 이야기

비 안 오는 날 오후 4시 무렵에 듣는 것을 좋아한다. 어느 계절이고 그 무렵이면 해가 넘어가는데 그 풍경과 앨범이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지는 해는 거실 창을 넘어와 벽에 얼룩진다. 가본 적 없는 옥수수밭을 상상하며 소박한 연주를 듣는다. 또 하루가 지나간다. 어느새 커피가 식었다. 나는 가본 적 없는 그 오래된 집 창가 풍경이 이럴 것이라 생각한다.


헤이든과 메스니 모두 미주리 출신이라고 한다. 동향 출신이기도 하고 ECM 동기이기도 하고 당대 왕성히 활동하던 연주자들이기도 하여 둘은 퍽 친했나보다. 함께 한 앨범이 몇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 앨범이다. 앨범에선 둘만 나와 소박하게 합주한다. 헤이든은 베이스를 치고 메스니는 기타를 중심으로 이것저것 다루고. 이것저것 다루긴 하는데 동시에 나오는 악기는 몇 없고 그만큼 소리 역시 수수하다. 화려한 편성 따위는 당연히 없는데 연주마저 담백하다.


그런데 그게 좋다. 여백이 많은 연주인데 듣는 사람이 앨범의 무드를 따라가며 그 사이사이 여백에 그림을 그리게끔 이끈다. 아주 조금의 구름이 번진 하늘이 떠오르고 그 너머로 지평선까지 아무도 없는 풀밭이 가라앉는다. 그 무인지경에 두 사람의 연주가 지나간다. 심지어 연주자도 없는 풍경이다. 그 고요하고 그 온화한 풍경 너머로 그저 음악이 구름처럼 지나간다. 해가 진다. 오후가 영원했으면 좋겠다.


컨템포러리나 아방가르드나 미니멀리즘도 얼마든지 쉽고 얼마든지 편안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앨범이니 그 누가 그 언제 들어도 미주리 풍경을 상상하며 자연히 따라갈 것이다. 헤이든과 메스니가 공감각적으로 추억하는 그 풍경, 가본 적 없고 심지어 찾아본 적도 없거늘 웬지 그럴 것만 같고 웬지 그래야 할 것 같은 그 풍경 말이다. 오후에 이 앨범을 들으면 그 경험한 적 없는 추억 속으로 돌아갈 수 있다.


엘피 이야기

비록 디지탈 레코딩 시대에 디지탈 레코딩으로 만들어진 앨범이지만 엘피만의 가치는 있다. 엘피로 거듭나며 엘피 제작자의 해석과 아날로그가 묻었기 때문이다. 엘피란 게 제작자의 감과 판단을 바탕으로 분명하게(0과 1로) 조절할 수 없는 기계를 통해 만들어지다보니 결과물에 그 과정이 묻는다. 이 앨범의 엘피 역시 그렇다. 스트리밍으로 들으면 소리가 사뭇 다른데 어느 것이 더 좋은지를 따지기에 앞서 그 이질감이 거슬린다(불행히도 난 이 앨범을 엘피로 처음 접했다). 엘피 쪽에 묻은 양념이 맛있기도 하고 이런 음악, 이런 소리라면 엘피로 듣는 편이 어울리기도 하니 엘피를 하나 갖춰두는 것을 권할만 하다.


씨디 시대에 나온 앨범이다보니 한동안 씨디로만 나왔다. 첫 엘피 버전은 앨범이 출시된지 5년이나 지나 등장했다. 게다가,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엘피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나왔다. 2012년 유니버셜뮤직(Universal Music) 코리아가 출시한 엘피가(제조는 독일에서 했다) 퍼스트다. 게다가 우리나라 내수 수요가 제법 있었는지 우리나라에서만 두 번의 리이슈가 이어졌고(2016년 에디션까지) 이후 2018년에 프랑스판이 나오며 한정성이 깨졌다. 놀라웁게도 아직도 미국판이 나온 적 없다. 미주리주 찬가인데 정작 미주리주 사람들은 ‘어지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이상’ 이 앨범을 엘피로 들을 수 없다.


결국 전세계에서 우리나라에 가장 재고가 많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싸다. 여전히 정가로 팔리고 있으며 파는 곳도 많으니 쉽게 구할 수 있다. 다 팔리면 또 리이슈가 등장할 것이다. 이렇게 잘 팔리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던 클래식이 흔치는 않으니까.


같이 들어볼만한 앨범들

팻 매스니 그룹(Pat Matheney Group)의 1982년작 ‘나가는 길(Offramp)’: 매스니의 앨범들 중 가장 잘 된 앨범이 아마 이 것일 터이다. 유명하기도 하고 잘 팔렸기도 하고 좋은 음악이 들어있기도 하고. 매스니만 할 수 있는 연주가 들어 있는데 화려하면서도 쓸쓸한, 마치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사 같은 연주가 들어 있다. ECM 앨범인 것을 감안하면 대단히 쉬운 음악이기도 하여 편히 즐길 수 있다.


팻 매스니 그룹의 1983년작 ‘여행(Travels)’: 1982년 미국 투어 중 녹음한 곡들을 모은 라이브 앨범이다. 공연에선 매스니도 얼마든지 화려하고 즐겁게 연주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왜 매스니 공연이 그토록 인기가 좋은지도 알 수 있다. 역시 쉽고 역시 즐겁다.


로렌스 홉굿(Laurence Hobgood), 찰리 헤이든, 커트 엘링(Kurt Elling)이 함께 한 2008년작 “마음이 흔들릴 때(When The Heart Dances)’: 그가 그 어디에서 그 누구와 함께 그 무엇을 해도 제 할 몫을 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게 이 앨범에서도 드러난다. 헤이든이 자주 하는 ‘우아하고 예쁜’ 발라드 곡들이 이어지는데, 헤이든의 제안이 좋았는지 다른 사람들도 원래 그런 거 하던 사람들이었는지 합이 잘 맞고 연주가 유려하다. 다른 묘미도 있는 앨범이니 제조사가 영국의 오디오 제조사인 ‘네임(Naim)’이다. 오디오 제조사들 중에는 앨범을 내는 곳이 종종 있는데 그것들 중 다수는 그저 오디오 기기의 성능을 드러내고 브랜드를 과시하는 것을 목적한다. 그런 와중 네임이나 린(Linn) 등 몇 없는 회사만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며 음악성까지 갖춘 앨범을 내는데 이 앨범 역시 네임의 그런 노력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들을만한데 음질이 좋다. 음질이 좋은데 들을만하다.


라드카 토네프(Radka Toneff)와 스티브 도브로고스(Steve Dobrogosz)의 1982년작 ‘동화(Fairytales)’: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에 가사를 붙여 부른 버전이 들어 있다. 그리고 그 곡은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보컬 곡이다. 아름답다못해 신비롭다. 원곡과의 관계나 이면의 사연 같은 걸 생각치 않아도 굉장하고, 그것들까지 버무리면 감동적일 정도다. 그 단 한 곡을 위해서라도 이 앨범은 살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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