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연주자들 중엔 여러 장의 명반(객관적이든 주관적이든)을 낸 사람이 종종 있다. 예컨대 밀트 잭슨(Milt Jackson)이나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가 그렇고, 이 앨범을 낸 콜트레인도 그렇다. 그런 사람들의 앨범들을 다루려니 난감했다. 그 앨범들을 다 다루려면 몇 달 동안 계속 한 사람 이야기만 하고 있을 것 같았고, 드문드문 끼워 넣는다 하더라도 같은 사람이 너무 자주 등장할 것 같았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일단 한 바퀴 돌 때까진 하나씩만 다루자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니까 가진 엘피들 전체를 한 번 쭉 돌 때까진 한 연주자 당 한 앨범만 말하자는 건데, 그러면 대충 2,000 장 정도 듣는 동안 쓴 글에는연주자가 겹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곧 다른 문제가 등장했다. 놀라웁게도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명반을 여럿 보유한 연주자가 있었던 것이다. 예컨대 잭슨이 그렇고 데이비스는 물론이며 이 앨범을 낸 콜트레인도 그렇다. ‘블루 트레인(Blue Train)’, ‘자이언트 스텝스(Giant Steps)’, 발라드(Ballards)’, 그리고 이 ‘러브 슈프림’ 중 무엇이 단연 뛰어나니 먼저 다뤄야겠다 선택할 수가 없었다. 이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저 넷 중 무엇이 단연 뛰어다나고 단연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마일스 데이비스의 ‘카인드 오브 블루(Kind Of Blue)’와 ‘비치스 브류(Bitches Brew)’와 ‘마일스톤스(Milestones)’ 중 무엇이 단연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나는 여전히 어리석어 그럴싸하게 살 방법을 세우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으며, 이번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성과 논리를 비우고 선택했다. 아까 무심결에 들은 앨범 ‘어 러브 슈프림’이 첫 바퀴에 다룰 콜트레인 앨범이다. 이 앨범을 듣고 있으면 이성과 논리를 그것들 따위라고 말하게 되니 그것을 미루고 다루는 방법론 역시 일리가 있으리란 변명을 한다.
겨우 마흔 살에 죽었기에, 게다가 당대 뉴욕의 여러 재즈 연주자들과는 달리 본인 이름 걸고 내는 앨범의 수준에 대해 대단히 엄격했기에 콜트레인이 리드한 앨범은 몇 없다. 대충 서른 장 정도 될 것이다. 오래 살며 관대했던 오스카 피터슨(Oscar Peterson)이 평생 이백 장에 육박하는 앨범을 낸 것에 비견하면 소박한 양이다. 그런데 그 중 명작이 많다. 명반의 수만 따지면 다른 어느 재즈 연주자에 견줘도 빠지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참여작들 중에도 굉장한 앨범이 몇 있기에, 예컨대 ‘카인드 오브 블루’나 엘모 호프(Elmo Hope)의 ‘인포멀 재즈(Informal Jazz)’ 같은 게 있기에 결국 콜트레인이 남긴 앨범들의 수준은 굉장히 높아 거진 재즈 역사상 최고 수준이다.
그런 콜트레인의 앨범들 중 이 앨범이 내게 가장 큰 인상을 남겼다. 후기 콜트레인의 작품이다보니 아방가르드-프리 임프로바이제이션에 가까우며 진입장벽이 꽤 있는데, 마치 들어오지 말라며 쳐놓은 철망을 애써 넘어가는 것처럼 노력을 기울여야만 다가설 수 있다. 그렇게 힘들여 다가섰을 때 마치 호랑이 앞발 같은 인상이 날아와 날 크게 할퀴고 깊은 자국을 남겼다. 처음 들을 때는 대충 지 멋대로 연주하는 것 같은데 참고 듣고 있으면 그것들이 모이고 누적되며 조화하고, 앨범이 끝날 무렵에는 명확하고 크며 분명한 인상으로 거듭난다. 그리고 난 감탄한다. 재즈란 수단으로 이런 걸 할 수 있다니, 음악이란 과정으로 이런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니. 그 초월적 인상은 사소한 음악이론, 논리나 이성 같은 것으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바흐의 푸가처럼 착실히 반복되는 계단을 밟아 저 먼 하늘로 나아가는 느낌, 맥주 열 잔 마시며 여섯 시간 동안 들은 미니멀 테크노처럼 이성이 날아가는 느낌을 얻었다.
그 높은 수준을 위해, 콜트레인은 엄격하게 지휘하는 동시에 자유롭게 풀어둔다. 각자 알아서 하고 싶은 걸 하는 것처럼 보이는 연주자들은 어느새 모여 정확한 롤플레이를 하고 있다. 어찌 그럴 수 있나 생각해보니 서로 뛰어 놀던 사이에도 박자를 정확하게 맞추며 엄격한 제한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저 그 틀이 넓어서, 그리고 연주자들의 역량이 뛰어나서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자유로운 동시에 질서정연한, 그 양립 불가능할 것만 같은 상태 둘이 이 앨범 안에선 공존한다.
숭고한 가치를 말하는 앨범이건만 기묘하게도 술에 만취해 들을 때 가장 아름답다. 보통 회사원의 제정신으로는 앨범이 말하려고 하는 그 높은 수준에 다다를 수 없기에 그랬던 것 같다. 일이니 관계니 돈이니 뭐니 생각할 것이 많아 산만한 그 제정신 말이다. 생각을 좀 놓고 잊어도 될 것들을 좀 잊은 상태에서 들을 수 있을 때, 그러니까 술에 취했을 때 가장 좋았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때를 자주 겪는다. 술을 마시고 싶었던 것인지 어 러브 슈프림의 본의에 다가서고 싶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엘피 이야기
재즈사에 한 획을 그은 앨범이자 애호가가 많으며 자주 언급되고 종종 복기되는 앨범이다보니 제법 많은 에디션이 있고 주요 에디션의 프리미엄도 상당하다. 1965년 임펄스(Impulse!)의 퍼스트가 정통이긴 한데 들을만한 컨디션의 물건은 오늘날 프리미엄이 굉장하다보니(모노는 2,000달러 가까이 한다) 쉬이 추천할 순 없다.
음질만 쫓는다면 오스트리아의 소규모 제작사 슈퍼센스(Supersense)가 2021년에 제작한 아세테이트 바이닐 에디션이 적합하다. 음질의 차원이 다른데 차원이 다른 음악이 든 이 앨범과 잘 어울린다. 퍼스트니 헤비웨이트니 뭐니 하는 것들은 프레스 엘피인 이상 이 에디션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진짜 정신이 날라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문제는 이 역시 2,000달러에 육박하는 프리미엄이 붙어있다는 점.
2016년에 나온 ‘더 컴플리트 마스터스(A Love Supreme: The Complete Masters’ 에디션이 쓸만하다. 유니버셜뮤직은 종종 ‘컴플리트 마스터스’란 스펙의 에디션을 내곤 하는데 음반에는 알트테이크나 관련 미공개 음원 등을 덤으로 넣고 부속에 관련 해설서나 사진 등을 더해 앨범이 가진 정보가 충분하게끔 보강한 에디션이다. 이 에디션에는 다른 날 녹음한 알트테이크들이 들어 있으며 음질도 준수하다. 게다가 싸다. 상당히 많이 찍었는지 별 프리미엄은 안 붙었고 매장들을 돌다보면 아직도 가끔 신품 재고가 보인다.
2004년에 일본 ‘재즈 더 베스트(Jazz The Best)’ 시리즈로 나온 에디션도 괜찮다. 이 시리즈는 음질을 신경쓰며 만든 시리즈라 이 에디션 역시 제법 쏠쏠하다. 다만 음질이 엄청나게 뛰어난 것까진 아니며 더 컴플리트 마스터스 같은 덤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것과 이것 중 적당히 하나를 고르면 되겠다.
여담으로 이 앨범엔 환상종이 하나 있는데 2010년에 TP(테스트 프레스)로 나온 45rpm 에디션이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양산이 안 되어 TP만 있고 프리미엄을 논하기에 앞서 아예 매물이 안 나온다. 궁금하긴 하다.
같이 들어볼만한 앨범들
존 콜트레인의 1957년작 ‘블루 트레인(Blue Train)’: 이게 양지의 러브 슈프림이고, 러브 슈프림은 음지의 블루 트레인이다. 구성과 연주의 두 축을 두고 러브 슈프림이 연주 쪽으로 한 발자국 나아갔다면, 블루 트레인은 구성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물론 두 앨범 다 두 축을 모두 꽉 붙잡고 있기에 알찬 맛은 마찬가지다. 우열을 가릴 수 없다.
존 콜트레인의 1960년작 ‘자이언트 스텝스(Giant Steps)’: 이 앨범을 들으면 ‘기술적으로 가장 색소폰을 잘 부는’ 연주자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경이로운 테크닉의 연주가 이어진다.
존 콜트레인과 레드 갈란드 트리오(The Red Garland Trio)가 함께 한 1958년작 타이틀 없는 프레스티지 7123번 앨범: 난 이 둘의 조화를 좋아하는데 그 케이스가 몇 없어 아쉬울 뿐이다. 둘은 퍽 친하고 잘 맞았는지 각자의 평소 스타일을 교환해 연주하기도 하고 다른 편을 밀어주기도 하며 아름답게 조화하는 하드밥을 연주한다. 서로의 세계에서 제일 잘 한다며 자부하는 사람들이 친하기까지 하면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존 콜트레인의 2021년작 ‘어 러브 슈프림: 라이브 인 시에틀(A Love Supreme: Live In Seattle)’: 1965년의 라이브 녹음인데 마스터테이프가 잊혀졌다 발굴되어 2021년에야 첫 음반이 나왔다. 라이브인 만큼 스튜디오 녹음본보다 좀 더 나가는 연주를 들을 수 있고, 이 역시 술에 취해 들으면 좋다. 술은 그 시절 클럽처럼 온더락 위스키가 적당하겠다.
카를로스 산타나(Carlos Santana)의 1973년작 ‘웰컴(Welcome)’: 앨리스 콜트레인(Alice Contrane, 존 콜트레인의 부인)이 편곡한 곡으로 시작해 존 콜트레인이 작곡한 곡으로 끝나는 앨범이다. 듣고 나면 산타나가 생각하는 콜트레인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