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Blakey & The Jazz Messengers – A Night In Tunisia
2008년 뮤직매터스(Music Matters Ltd.) 45rpm 에디션 M/M 기준
A면
A Night In Tunisia
B면
Sincerely Diana
C면
So Tired
Yama
D면
Kozo's Waltz
앨범 이야기
우리집에는 ’도어스 오브 재즈 베스트‘란 게 있다. 작은 방으로 들어가는 나무 문인데 그간 내가 들어본 재즈 엘피들 중 가장 좋았던 것 열 장을 걸어뒀다. 쟁쟁한 앨범들이라 웬만해선 바뀌지 않는다. 이젠 일년에 한 장 바뀔까 말까 할 정도. 다만 철저히 주관적이라 유명한 앨범도 있고 아닌 앨범도 있다. 스탄 게츠(Stan Getz)의 저 유명한 ‘게츠/지우베르투(Getz/Gilberto)’ 앨범도 있지만 LA4나 폴 데스먼드(Paul Desmond)의 앨범도 있다. 놀러 오는 사람들에겐 특히 다이애나 팬튼(Diana Panton)의 앨범이 이색적일 터인데 그건 몇 장 안 나와 들어본 사람도 몇 없을 앨범이니까.
그리고 나 스스로도 ’도어스 오브 재즈 베스트‘에 건 걸 종종 어색해하는 앨범이 있다. ’튀니지의 밤‘ 앨범은 나 스스로 “이게 여기 있을 법 한가?” 싶어 종종 다시 꺼내 듣는다. 그리고 “그럴 만 하네. 비록 블래키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이건 인정.”이란 결론에 다다른다. 이렇든 저렇든 이 앨범은 대단하다. 첫 곡부터 귀가 확 열리고 뇌가 확 깨는 느낌인데, 말 그대로 천둥 같은 드럼 소리가 터져나온다.
난 블래키를 그다지 내켜하지 않는다. 여러 시기에 나온 그의 앨범들 20여 장을 사 들으며 그의 음악을 나름 이해했다고 생각하며 내린 결론이다. 너무 빤히 보여서, 영 모르겠더라. 블래키의 연주는 딱 둘이다. ”내가 이렇게 잘 합니다. 모두들 내 쩔어주는 연주를 들어보세요.“ 라며 아무도 못 하는 건지 아무도 안 하는 건지 모르겠을 경지로 달리는 연주, 그리고 ‘나 좀 쉬어야 하니까 캄보 니들이 시간 좀 때워봐.‘ 하는 연주. 앨범마다 둘이 반복되는데 그 전형성은 놀라울 정도다. 놀라울 정도로 패턴이 반복된다. 어느 앨범에서나 그 패턴을 발견할 수 있고 별 차이 없는 연주를 어느 앨범에서나 들을 수 있다보니 이 앨범이 그 앨범 같고 그 앨범은 저 앨범 같다. 결국 어느 시점 이후로는 블래키 엘피 사는 것을 그만뒀고 어느 시점 이후로는 듣는 것도 멈췄다. 이 앨범을 제외하곤 그렇다. 블래키 앨범들 중 종종이나마 생각나는 것은 이 앨범 뿐인데, 실상 이 앨범도 패턴은 마찬가지다. 이 앨범을 복기하는 건 그 기량 때문이다. 그 어떤 드러머도 따라갈 수 없는 경지, 심지어 블래키의 다른 앨범들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지경의 연주가 담겨 있다. 필리 조 존스(‘Philly’ Joe Jones)도, 엘빈 존스(Elvin Jones)도, 아트 테일러(Art Taylor)도, 심지어 다른 앨범의 블래키도 못 하는 걸(안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블래키는 이 앨범에서 한다.
블래키는 일생을 하드밥에 태운 사람이다. 본인을 바친 것은 물론 늘 재즈 메신저스란 팀을 데리고 다녔으니 남의 영혼까지 끌어모아 바쳤다 봐도 될 것 같다(멤버가 종종 바뀐 것으로 보아 구성원들이 취사선택할 수는 있었는가 보다). 보통 오래 활동한 재즈 뮤지션들이 시절에 따라 스타일을 조금씩 바꾸는 것에 반해 블래키는 50년대에도 하드밥, 60대에도, 70년대에도, 80년대에도 하드밥이다. 종로 노포 맛집 같은 사람이니 김치찌개 하나만 팠다. 돈까스 팔다 김치찌개 팔다 돈까스 넣은 김치찌개도 파는 김밥천국과는 다르다(심지어 ‘김밥’천국인데). 롱런한 뮤지션 중 다수가 김밥천국이 되었다 스시집으로 끝내며, 요즘 뮤지션들은 김밥천국을 지향하는 것에 반해 블래키는 단연 노포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도대체 하드밥의 무엇이 그리 좋아 블래키가 그랬는지 말이다.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열정적이었고 꾸준했다는 것이다. 아무도 못 다다를 경지까지 연주를 밀어붙일 열정이 있었으며 그것을 수십 년 동안 이어갔다. 다시 생각하니 꾸준함은 그 역시 열정이라 해석할 수 있겠다. 오래동안 지속할 만큼의 열정말이다. 결국 블래키는 열정의 화신이다. 이 앨범 같은 앨범들을 결과물로 내며 본인의 열정을 증명했고 그런 결과물들을 이어가며 본인의 열정이 식지 않았음을 역시 증명했다.
어느새 열정에는 나쁜 평가가 묻었다. 그것은 맹신적이거나 맹목적이라며 악용되거나 오용된다. 대충 ‘열정페이’ 때문인데 뭔가를 좋아하는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이용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사람들 때문에, 그리고 무언가를 열정으로 대하며 당장의 손해를 감내하는 사람들을 어리석다 힐난하는 풍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열정이 나쁜가? 도대체 뭐가 나쁜가? 내가 뭔가를 좋아하여 날 갈아 넣겠다는데 그게 네게 뭐가 나쁜가? 난 이걸 하며 즐겁다. 그리고 이것이 날 살게 만든다. 세상이 뭘 어떻다 하든 뭐 어떻게 돌아가든 난 그런 거 잘 모르겠고 그저 이걸 붙잡고 있을 때 행복하다. 그게 열정의 본질이다. 블래키가 그랬다. 그는 세상이 어찌 변하든 말든 프로듀서가 “요즘 이런 게 유행인데 이런 것 좀 해봐요.” 라고 하든 말든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세차게 드럼을 두들겼다. 힘들면 좀 쉬고(티가 날 만큼), 다시 드럼을 두들겼다. 그 결과 그는 오래동안 활동하며 늘 같은 무드의 앨범들을 남겼다. 그것들은 늘 같아 내 취향이 아니다. 그리고 그 앨범들엔 블래키의 열정이 담겨 있다. 두 가치의 평가는 다른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내 취향에 안 맞는다고 뭔가나 누군가를 평가절하할 순 없다. 안 맞는 건 다른 거지 틀린 게 아니다. 내게 맞든 안 맞든 그것은 나쁠 수 있고 좋을 수 있다. 내 취향에 맞는지와 그것이 객관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며, 오히려 나와의 인과관계가 없을 때 객관적 가치는 더욱 분명하게 다뤄져야 한다. 그래야 다른 상황일 때 다시 만날 가능성이 생기고, 그래야 완전히 절연할 수 있다. 블래키의 음악들은 대체적으로 나와 잘 안 맞는다. 이 앨범처럼 좋은 게 있긴 한데 대체적으로는 지루하고 대체적으로는 심심하다. 그렇다고 블래키가 잘못되었는가? 그는 일생을 하드밥에 바치며 곤조 있게 밀고 나갔다. 일생을 바흐의 재즈화에 바친 자크 루시에(Jacque Lussier)처럼, 내 취향에 잘 맞아 종종 꺼내 듣는 그 루시에처럼 그저 하고픈 것을 열심히 지구력 있게 이어간 것이다. 그 열정의 결과물을 나와 잘 안 맞는다고 평가절하 하는 건 지성인이 할 짓이 아니다. 나는 블래키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블래키는 훌륭하다. 그의 앨범들 중 하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 열 개 중 하나다. 열정에겐 죄가 없다. 나쁜 놈들이 종종 수단으로 써 오해가 묻었을 뿐이다. 그렇다. 해도 될 말은 이게 전부다.
’도어스 오브 재즈 베스트‘에 걸린 앨범들 중 이 앨범을 제외한 다른 앨범들은 음악가까지 좋아한다. 앨범으로 인해 좋아하게 된 경우도 있고 좋아하다보니 앨범을 발견한 것도 있긴 하다만 어찌 되었건 그 앨범들을 만든 음악가들까지 좋아한다. 그런데 이 앨범은 이 앨범만 좋아한다. 사람은 별론데 앨범은 좋다. 유독 튄다. 결론은, ”그럴 수도 있다.“ 이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엘피 이야기
대단한 캄보의 대단한 연주가 들어 있고 블루노트(Blue Note) 레이블 황금기를 이끈 앨범들 중 하나기에 유명세는 물론 인기도 많다. 퍼스트들엔 상당한 프리미엄이 붙어 있다. 비상식적이진 않지만 쉬이 들여놓긴 힘든 수준. 가치가 큰 앨범이니 열정이 있다면 시도해보는 것도 좋겠다. 필터 없이 루디 반 겔더(Rudy Van Gelder, 당대 블루노트의 레코딩 엔지니어)의 스타일과 탁월함을 느낄 수 있다는 면에서도 퍼스트는 시도해볼 법 하다.
이후 다양한 리이슈가 등장했는데 블루노트나 유니버셜뮤직이 인가한 에디션이라면 그 무엇이라도 좋다. 여린 소리가 이어지는 앨범은 아니기에 그 어느 에디션으로 들어도 아쉽지는 않을 것이다.
특기할만한 물건으로는 뮤직매터스의 에디션들이 있다. 195~60년대 블루노트의 앨범들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제조사인데 단순한 리이슈에 그치는 것이 아닌 좋은 음질을 이끌어낼 수 있는 시도들을 더했고 그 결과 초반과는 다른 음질적 가치가 있다. 45rpm 에디션이나 SRX 에디션의 경우 놀라운 음질을 담고 있으니 프리미엄을 감수하고서라도 시도할만 하다.
같이 들어볼만한 앨범들
아트 블래키와 재즈 메신저스의 ‘모닝’(Moanin’)’: 블래키를 대표하는 앨범. 지극히 블래키스러운 앨범이니 그의 다른 앨범들 다수와 마찬가지로 재즈 드럼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연주 기법을 한 앨범 안에 담아놨다. 이 앨범이 특별한 건 그 드럼에 좋은 멜로디를 얹은 곡 여럿이 들어있다는 점과 앨범이 자연스럽게 기승전결하기 때문. 듣기 쉬워 블래키 탐구를 시작할 때 어울릴 앨범이다.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의 1955년작 ‘볼륨 1(Volume 1)’과 1956년작 ‘볼륨 2’: 데이비스의 몇 없는 블루노트 앨범이자 블루노트 증흥기의 신호탄이다. 전기 데이비스의 스타일, 일반적인 하드밥인 듯 하면서도 인터플레이를 중요시하고 과도한 독주를 경계하는 그 예민함이 잘 담겨 있다. 드럼은 블래키와 케니 클락(Kenny Clarke)이 맡았는데 둘의 서로 다른 스타일이 보이는 동시에 적당히 억제하며 데이비스의 요구에 맞춰주는 모습도 보여 재미있다.
밀트 잭슨(Milt Jackson)의 1957년작 ‘풍성한, 풍성한 소울(Plenty, Plenty Soul)’: 제목 그대로 가는 앨범이다. 연주자마다 넘칠 정도로 화려한 연주를 선보인다. 블래키는 첫 번째 곡과 세 번째 곡의 드럼을 맡아 그 다운 연주를 들려준다. 흘러 넘치는 그 연주 말이다.
길 에반스(Gil Evans)와 그의 오케스트라, 그리고 캐논볼 애들리(Julian ‘Cannonball‘ Adderley)가 함께 한 1958년작 ‘새 병 옛 와인(New Bottle Old Wine)’: 이 역시 이름대로 가는 앨범인데, 당대 이미 유명한 연주자들을 모아 그들이 안 하던 음악을 연주하게끔 했다. 만들며 에반스와 블래키가 얼마나 기싸움을 했을지 그려진다. 놀라웁게도 에반스가 이겼는지 블래키는 에반스의 ’빡빡하게 조립된’ 음악에 어울릴 연주를 한다. 그 사이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욕심 없이 연주하는 애들리도 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