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는 주름살이 없다.」 안가엘 위옹 (청미 출판사)
외할머니의 손에서 컸기 때문일까. 나는 노인들에게 꽤 깊은 애정을 느낀다. 노인들을 관찰하면 재미가 있다. 관찰하는 동안 "그들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기에 저렇게 행동할까."하는 호기심이 생긴다. 그렇기에 노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소설책은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어떤 노인들이 나를 또 웃고 울게 할지 궁금하다.
[ 행복은 주름살이 없다. ]
책 제목의 행복이라는 단어가 이 책의 분위기를 꽤나 긍정적으로 표현한 것 같이 느껴진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폴레트"라는 멋쟁이 할머니이다. 그녀는 주체적이고 유쾌하다. 그리고 단단함 속에 자상함이 묻어나오는 강인한 인물이다. 물론 그냥 겉으로만 그녀를 안다면, 그녀가 고약한 노인네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득 스쳐가는 그녀의 과거와 인생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그녀를 사랑할 수 밖에 없어진다.
(특히 나는 폴레트가 스스로 요양원을 가고싶어 치매환자인척 하는 장면에서 계속해서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스스로 요양원에 가고 싶어하는 노인이라니! 독특하고 귀여웠던 장면이었다.)
폴레트는 원치 않았지만, 어쨌든 함께 지내게 된 여인숙 투숙객들과 직원들이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민과 사건들이 폴레트와 만나면서 그 찰나의 순간에 그들의 추억과 슬픔, 아픔, 사랑, 애정들이 버무려지게 된다. 이 이야기들이 슬프면서도 재미나고, 아쉬우면서도 후련하고, 차가우면서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 주인공들이 저의 감정을 가지고 노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남자를 좋아하고 이야기를 좋아하는 60대 마르셀린 할머니, 모자라지만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이폴리트, 현명하고 굳건함 속에 따뜻함이 가득한 주방장 누르, 사랑을 누구보다 진실되게 전하는 조르주, 누구보다 순수하기에 겁이 많은 성실하고 매력적인 일꾼 쥘리에트, 험상궂게 생겼지만 누구보다 주변을 아끼고 챙기는 주인장 이봉, 이 모든 등장인물들의 마음 속 상처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쉼없이 펼쳐진다.
때로는 서로를 미워하고 밀어내지만, 어느 순간 그 무엇을 대신할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 여인숙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 어느 모험 이야기보다도 더 짜릿하다. 그들의 인생이야기가 어느새 그들의 것만이 아니게 되어버린 그 순간들이 묘한 따스함으로 다가온다.
잔잔한 일상 속에서 쉴새없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들이 그들을 더 단단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소설을 줄기차게 읽으며 "이런 것이 소소한 행복이지!" 하며 저절로 미소짓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유독 걱정이 많은 나에게 이 소설은 인생은 그래도 아름답다고 말해주며 그 삶을 좀 더 즐길 수 있도록 격려하기도 했다.
정말 오랜만에 따뜻하고 담백한 이야기를 만났다. 이 이야기들은 애정이 왜 이렇게나 넘쳐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작가의 말에서 알 수가 있다. 작가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여인숙에서 모티브를 얻은 안가엘 위옹(프랑스 작가). 등장하는 인물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 여인숙 일을 도우며 지냈던 그 시간들을 잊지 않고 글로 붙잡아 둔 것이다. 그녀가 바라본 모든 투숙객들에 대한 애정이 소설속에서 그대로 묻어나온다.
죽기전에도,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순간에도, 우리 모두는 행복할 자격이 있다. 그리고 그 행복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P. 231 "쥘리에트양은 사춘기 소녀가 아니에요! 인생은 써나가는 책 같은 것.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어요. 알아요?"
폴레트가 쥘리에트에게 하는 말. 그렇다. 인생은 내가 직접 써 나가야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책 같은 것이다. 앞으로 나는 어떤 이야기들로 그 책을 채울까.
P. 318 "자기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까지 한평생이 걸렸구나."
자신 스스로에게 말하는 폴레트. 그래도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았구나. 나도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겠지?
P. 355 " 비이성적으로 완성되고 미스터리를 먹고 크는 게 사랑이야."
맞다. 사랑은 정말 그런 것 같다.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사랑은 멀리 도망가 버린다. 비이성적으로 시작해서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룰을 잘 만들어가는 그 과정이야 말로 사랑이 아닌가.
P. 396 "여행의 약속이 이미 여행이지."
여행을 하자고 약속한 순간, 아니 어쩌면 우리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이미 여행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내 인생은 어떤 여행이 되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