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사람 _ 아리요시 사와코 (청미)
벌써 5년이나 되었다. 친할머니께서 치매를 앓으신지. 할머니의 치매가 심해진 것은 바로 3년 전. 그때부터 나는 치매에 대한 서적은 소설이던, 비문학분야던 가리지 않고 읽기 시작했다. 결국 할머니는 일상생활을 전혀 못하시게 되었고 우리 가족은 그녀를 집과 가까운 요양원에 모시기로 했다. 그래서일까. 친할머니를 바라보면 더 애틋해지고 그녀가 안쓰럽다.
이 책은 부산에서 열린 북페어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노인과 치매에 대한 이야기라는 말을 듣자마자 할머니가 생각났다. 나는 그 책 없이 그 자리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마치 요양원에 있는 할머니를 보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 책을 1초의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 그렇게나마 할머니에 대한 죄책감을 위로했다.
이 책의 내용은 이렇다. 중장년층인 며느리 아키코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날 시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시아버지의 병에 대해 알게 된다. 망령이란다. 그리하여 직장에 다니고 있었던 워킹맘인 아키코는 치매를 바라보는, 그리고 노인을 대하는 사회의 시선과, 노인복지에 대한 현실, 그리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생각들로부터 둘러싸이게 된다.
노인성 치매, 사람의 수명이 느는 것과 동시에 치매환자수까지 높아지기 시작했다. 3 가구 중 1 가구는 치매환자가 있다. 이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나도 설마 우리 집에 치매 환자가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치매에 대해 무지했다. 할머니의 오르내리는 기분은 그저 나이가 들어 예민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계속 깜빡거리는 일들은 그저 자연스러운 노화현상이라 생각했지 치매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모든 병이 그렇듯이 치매 또한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왔다.
소설의 주인공인 아키코는 죽음과 늙음, 병에 대해 별생각 없이 살아간다. 내가 그랬듯, 우리가 그랬듯이. 그녀는 아직은 젊었고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었기에 그런 것들을 가까이 두기에는 너무나도 바쁜 현실이었다. 하지만 건강하셨지만 갑작스럽게 운명을 달리하신 시어머니의 장례를 겪으며 죽음은 언제나 자신의 곁에 있었음을 깨닫는다. 시아버지는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점점 이상해지셨다. 그런 시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자신도 저렇게 되진 않을지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시아버지는 상상하지 못할 일들로 아키코의 일상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아키코는 그런 상황에 화가 나기도 하고 질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 시아버지에 대한 묘한 안쓰러움이 계속해서 그녀의 심정을 건드린다. 그녀의 다른 가족구성원들은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의 일이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지 않기도 하고, 그런 모습이 자신의 미래라 생각되어서 시아버지를 오히려 외면하고 회피하여 그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기도 한다.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는 몸소 느꼈기에 소설 속 이야기들이 전혀 남일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친할머니의 치매 덕분이었다.
치매에 걸린 당사자들이야말로 본인들이 망령이 날 줄이야 알았겠는가. 기억들이 엉키고 꼬이고 또 사라져 가는 이런 삶에 과연 그들은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생각에 그런 마음에 아키코는 시아버지를 차마 버릴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왜 책의 제목이 황홀한 사람일까?"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책을 덮고 내가 알던 황홀하다의 뜻과 다른 뜻이 있는지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황홀하다 :
1. 어떤 사물에 마음이나 시선이 혹하여 달포한 상태
2. 미묘하여 헤아려 알기 어려운 상태.
치매환자들과 지내다 보면 그들은 우리가 발 붙이고 있는 이 현실보다는 꿈과 가까운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우리는 그 세계를 헤아리기 어렵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만의 세계 속에서도 또 무언가에 꽂힌 채 행동한다. 그것을 해소하지 않으면 당장 죽어버릴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그런 상태까지도 황홀하다고 표현할 수가 있었다니. 정말 치매 환자에게 딱 맞는 형용사이다.
이 소설은 1970년대에 쓰인 소설이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의 가부장적인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소설 속 이야기들이 그저 옛날이야기처럼 들리지가 않는다. 어쩌면 한국이 겪고 있는 노인문제를 대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책은 일본의 노인복지제도의 근간을 바꾸게 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바뀐 그들의 노인복지제도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알고 싶지 않았고 보고 싶지 않았던 현실을 계속해서 눈길이 가도록 만든 이 작품. 잔잔하지만 일상 속에서 톡톡 쏘이는 죄책감, 양심, 그리고 그들에 대한 애정들. 아키코의 챙김 덕분인지, 이야기가 차갑지만 또 한편으로는 포근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노인을 대할 때, 치매를 바라볼 때,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우리의 미래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P.71 "앞으로 살아갈 인생 저편에 서 있는 또 다른 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늙음의 끝은 결국 이런 것인가, 라는 생각에 착잡해졌다. 죽음보다 어둡고 깊은 절망이었다."
나도 할머니를 바라보며 든 생각이다. 저렇게 늙기는 싫다라는 생각이 강했지만, 이는 금방 어리석은 소원인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그리고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 사실이다.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노인을 대하고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