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의미의 명절
내가 어릴 때에는 할아버지댁으로 가는 순간부터 추석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다행히 (엄마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할아버지댁과 우리 집은 멀지가 않아서 차로 20분이면 도착했다. 할아버지댁이 큰 집이라 모두들 할아버지댁으로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한다. 서울에서 삼촌네도 내려오고 사촌들도 내려오면 어느새 집은 북적인다.
여자 어른들은 할머니와 엄마가 장을 봐온 식재료들을 손질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용돈을 받아 밖으로 나가 놀았다. (집에 있어도 도움이 안 된다고 하셨다.) 남자어른들은 어디를 갔는지 다들 차를 타고 나가셨다. 우리는 그런 것이 일상이었기에 당연한 줄로만 알고 컸다.
상도 푸짐했다. 추석 때 상에 올릴 음식들뿐만 아니라 할머니가 이것저것 식사할 음식들도 맛 좋고 좋은 것들로 준비해 주셨다. 손주와 아들, 딸네가 온다고 가장 좋아하는 아나고회를 준비해 주시곤 하셨다. 나는 어렸을 때에는 추석이 좋았다. 못 보던 친척들도 만나고 맛있는 음식들도 배불리 먹고, 덤으로 용돈까지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환상적인가. 하지만 점점 커갈수록 내가 받아들이는 명절의 의미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수험생이라 많은 배려를 받았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고 나니, 엄마의 일은 곧 나의 일이 되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큰집이었다.) 어느샌가 할머니와 엄마를 도와 나도 주방일을 돕고 있었다. 거기서부터 나는 뭔가 불편한 마음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물론 나는 우리 할아버지의 부모님을 모시는 제사라 생각하고 군말 없이 하긴 했지만, 어른들의 말씀과 남자 사촌들의 행동에서 나는 뭔가 불합리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여자는 이런 것 다 할 줄 알아야지."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나는 그런 줄로만 알았다. 나도 시집을 가게 되면 이런 일들을 엄마처럼 도맡아서 해야 하는 걸까. 나는 내 조상을 모시는 일도 피곤하고 불편한데, 엄마는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여태 이 일을 쉬지 않고 했던 걸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나는 지지 않고 말대꾸를 하기도 했다.
"오빠는요? 왜 안 해요?"
그러면 나는 할머니한테 혼이 났다. 오빠는 남자니까 이런 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밥 먹고 상치우는 것도 다 여자들이 하고, 남자들은 도대체 앉아서 밥만 넙죽넙죽 받아먹는 게 말이 되는가 싶었다.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왜 이런 건 다 여자들만 해?"
엄마는 그냥 초월한 듯 대답하셨다.
"아빠는 돈 벌어다 주잖아."
엄마는 가정주부였고, 아빠는 바깥일을 하는 것이니 당연하다는 게 엄마의 대답이었다.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듣고 결심했다.
[나는 죽기 전까지 일을 하는 여자가 되어야겠다.]
그리고 얼마 후 할아버지가 아프시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아프시니 온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찾아오던 작은 할아버지네도 오지 않고 삼촌들도 바쁘다고 전화만 하셨다. 우리 집이야 할아버지댁과 가까웠기에 할아버지가 아프시고 더 자주 찾아뵙곤 했다. (임종하시기 직전까지는 우리 집에서 모셨다.)
그렇게 가족끼리 왕래가 뜸해지더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는 내가 겪었던 명절의 모습은 사라졌다. 할머니께서는 제사를 치르지 말자고 말하면서도 전화로는 엄마에게 그래도 준비할 건 해야 하지 않겠냐며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셨다. 엄마는 그 속내를 아시고는 모든 음식을 우리 집에서 간단히 준비했다. 간단히라고 해도 손이 많이 갔다. 그래서 우리 자매는 명절 전날 모여 엄마를 도왔다.
모든 요리는 집에서 준비했기에 명절 당일만 할머니댁에서 아침상을 차리러 가기만 하면 되었다. 이전보다 더 편하긴 했다. 왔다 갔다 할 필요도 없었다. 남은 연휴는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도 되었다. 친구들 중에서 절반 이상은 명절에 가족끼리만 모인다고 했다. 차례는 없어진 지 오래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그런 집들이 내심 부러웠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할머니가 많이 편찮아지셨다. 그리고 우리 먼 친척들은 얼굴 볼 일이 사라졌다. 아빠도 더 이상 차례를 지내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 말에는 모순이 있었다. 어찌 보면 아빠의 조상님인데, 할머니 눈치 보느라 엄마를 저리도 고생시킨단 말인가. 아빠도 어쩌면 어쩔 수 없이 그냥 그 관례를 있어간 것뿐이었나 보다. 엄마는 우리 때는 이런 일들이 다 없어질 거라 말했다. 없어졌으면 하는 게 엄마의 바람인 것 같다. 엄마는 그게 도리인줄로 알고 지내왔지만, 너네 때는 다르다며 말했다. 도리란 과연 무엇일까. 과연 달라졌을까.
추석이라 함은 중추절 또는 중추가절이라고 하며, 가을의 한가운데, 곧 가을 중의 가을인 명절이다. 추석은 농부들이 농사를 다 짓고 나서 한 해의 농사가 마무리된 때라 일이 덜 힘들고, 일을 해도 신선처럼 지낼 수 있다는 말이니 그만큼 추석이 좋은 날이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다들 좋자고 시작한 명절을 요즘은 왜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저 힘든 날, 괴로운 날이 되어가고 있을까. 너무 속상한 일이다.
나는 한국 전통의 어떤 문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데, 요즘에 보면 본질을 벗어난 경우가 많다고 생각된다. 신나게 놀고먹고 신선처럼 지내자는 풍족한 날 한가윗날...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던 것일까. 추석은 한마디로 예전의 일꾼들(그때의 농사꾼들이 대부분의 일꾼들이었을 테다)을 위한 날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지금의 일꾼, 바로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모두를 위한 날로 바뀌고 서로 더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행복하고 기분 좋은 날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즐겁고 풍요로운... 그런 명절이 되길 보름달에게 소원을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