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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an shim Feb 17. 2024

두 여인 이야기

(가족 이야기)


제목을 쓰다 보니 나에게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가 오버랩된다.

두 여인은 서로 잘 알고 있다. 하나는 나에게 외손녀이고 다른 여인은 우리 장모님이다. 이들과 나는 좀 부끄럽게도 그리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터놓고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있었나 할 정도이다.


그러나 숙명적인 관계이다. 관계를 버릴 수도 없고 관계를 연인처럼 자주 보는 관계로 변화시킬 수도 없다. 그러나 함께 가야 하는 필연적 상관 함수이다. 등거리 함수라 할 수도 있다. 원거리도 근거리도 아닌 그런 거리가 항상 존재한다. 우연히 이들에 대해 생각이 떠 올라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모든 관계의 시작은 나부터 이다. 나로부터 발생하여 만들어진 인위적 거리이고 온전히 내가 만든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거리는 관계에서 상호적으로 제정된 거리이다. 원인 제공을 누가 조금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지만 일차적 관리자는 나이다. 나의 마음은 이상하다. 오래 살아오며 일상적 대화에서 나는 중급자 수준에 있는 것이다.


곁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물 흐르듯 말을 잘 흘러가게 하는 마술사들이다. 나는 물 흘리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이라 억지로 물을 흘리니 자연스럽지 않다. 대화는 벽이 아니라 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은 한다. 그러나 나는 주로 벽 가까운 곳에 있지 문 가까운 곳에 있지 못하다. 소통에 약한 사람이다.


최근 장모님은 병원 요양시설에서 약 5개월을 생활하고 계신다. 고령에 낙상을 당한 결과이다. 요양병원에 가서 보니 온 도와 통로에 낙상주의라는 말이 도배될 정도로 많이 붙어 있었다. 나는 낙상에 대해 어렴풋이 알 정도라 그리 많이 부착된 문구를 보며 낙상의 우려가 정말 심대한 거라고 인식하였다. 나 또한 이제 나이가 드니 평소의 생활과 운동에서도 조심하고 한 템포를 늦추어야지 하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장모님의 주된 보호자 역할은 집사람이 전적으로 맡아서 한다. 나는 기껏 병원으로 모시고 검사할 때 조력을 주는 정도이다. 그래서 자주 뵙지는 못했다.


코로나 이후에 환자를 문병 가려면 기본적인 자가진단을 하여 방문자의 확신 상태를 보장받은 후에야 출입이 된다. 이런 연유로 나는 운송을 해 드린 후에 병원 밖에서 기다리는 몫을 해왔다. 집사람이 병원을 출입하는 전담자가 된 상태이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혹은 더 멀게 장모님을 본다. 그리고 보자마자 나는 손을 흔들고 인사를 한다. 그리고 가끔 손을 잡는다. “힘드시지요” 하는 정도의 인사말이 내가 하는 대화의 절반이 되어 버린다. 마음이 절대 냉혹해서라기보다는 대화의 물고를 자연스럽게 흘리는 노하우의 부족이라 해야 했다. 장모님 또한 육체의 불편으로 점점 대화가 많이 줄어들었다.


어제 그 긴 병원생활을 마쳤다. 그리고 집으로 모셨다. 골절수술 후 몸 상태가 제법 호전되어 집에서 가료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독립적으로 이동이 불가하니 돌보아 줄 도움인이 있어야 했다. 한 분이 장모님 간병을 전담하여 집에서 함께 상주하게 되었다. 오전에 집으로 다시 모시고 온후 식사를 할 때까지는 그런대로 집에 돌아왔다는 행복의 순간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갑자기 다시 조금 어두워지게 되었다.


장모님은 집에 돌아오니 마음이 너무 앞서 나간 듯했다. 갑자기 일어나서 이방에서 저 방으로 움직이고 계셔서 다들 깜짝 놀랄 이동을 하셨다 한다. 그런데 스스로 움직이는 몸 상태는 온전치 못하여 바로 바닥으로 넘어지셨다. 그래서 오른쪽 팔꿈치를 바닥에 부딪히고 말았다. 다들 깜짝 놀라서 상태를 보고 또 골절이냐고 안절부절못하게 되었다. 팔을 움직이는 작동은 가능하여 골절은 아닌가 보다 짐작을 했다. 그런 상태로 추어탕을 먹으러 갔고 식사를 잘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이 소동은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되어 그런 상태로 저녁이 되었다.


 우리 부부는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밤늦게 10시가 되어 간병하시는 분이 전화가 왔다. 상처부위가 점점 더 부풀어 오른다는 것이다. 나와 집사람은 다시 장모님 집으로 확인을 가야 했다. 가느다란 팔꿈치에 부어오른 정도가 너무 커진 상태라 우리는 인근병원 응급실로 모시고 갔다. 거기서 새벽 2시까지 기다린 후에 응급조치를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영상검사를 했지만 부러진 상태는 아닌 것 같다고 하여 귀환된 것이다. 조금 안심이 되었다. 이제 옛날처럼 건강한 상태로의 복원은 어렵지만 호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나의 희망이다.





관심이 많아 다 망가뜨리고


다음은 또 다른 여인의 이야기인 손녀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객관적으로 손녀를 지켜보는 관계이다. 물론 자주 말을 하지만 서로 툭 터놓고 이야기를 오래 하는 관계는 아직 아니다. 등거리 외교처럼 등거리 함수 관계로 존재한다. 항상 보면 즐겁고 귀여운 손녀로 다가선다. 아이는 이제 7살이 되어 다음 달에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는 연령이다. 그녀는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인다. 집에서도 천천히 걷는 것을 보기 힘들고 오히려 뛰는 것이 일상이 된 아이다. 즉 굉장히 활력적이라 가끔 어디에 몸을 부딪칠 염려가 앞서는 수준이다.


그 마른 몸매로 온갖 활동적 액티비티를 즐기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수영도 잘하고 자전거 타기, 배드민턴 등 몸을 움직이는 모든 일에 적극적이다. 체격은 음식을 아주 소식하여 먹으니 유치원에서 하위 수준의 마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유치원에서 제공하는 점심도 마지못해 조금 먹는 수준이다.


며칠후면 그동안 다니던 유치원을 이제 졸업한다. 손녀는 아침에 유치원을 갈 때 다른 아이들과 조금 차이가 있다. 유치원 차량을 타고 가기 전에 한차례 그만의 해프닝을 해야 했다. 즉 반드시 눈물을 흘리고 간다. 거의 이 행위를 빠트리는 일이 거의 없다. 빠짐없는 이 절차는 거의 한 일 년이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유치원에 가서는 아이들과 잘 논다고 한다. 유치원 선생님에게 할 말도 잘하는 아이라 한다. 마치고 나올 때는 아이들과 잘 웃고 돌아오니 아무 문제가 없다. 애초에는 유치원 선생님도 우는 원인을 제거하려 많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유치원에 와서 생활하며 어떤 일이라도 있으면 항상 나에게 말을 하라고 했다고 한다.


손녀도 유치원 가기 전에 항상 느끼는 이 불안에 대해 나름대로 대처를 하는 것이 있다. 집에서 유치원에 가기 전에 엄마 아빠에게 용기를 전해 받는 세리머니를 항상 받아야 했다. 심지어 아빠가 일찍 집을 나가서 못 보면 그 전날 밤에 용기를 전수받는 안수의 세리머니를 미리 받아 두어야 했다. 어떨 때는 우리 집사람에게 영상통화로 “할머니, 용기를 주세요” 하고 말한다. 그럼 내가 옆에서 그럼 “나의 용기도 좀 받아가라”라고 말하기도 한다. 손녀 집에 가 보면 용기를 주는 말을 프린트해서 벽면에 많이 붙어있다. 평상시에 생활하는데 이 용기는 전혀 필요 없다.


용기를 주는 개(보미)


오직 한 군데 아침에 유치원에 갈 때만 필요한 물질이다. 아마 손녀에게는 눈물의 저수량이 많이 있어서 자연스레 이를 분출하는 생리현상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모는 이를 대처하려고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친할아버지 집에 있는 큰 개를 때때로 데리고 와서 유치원 갈 때 응원부대로 활용하고 있다. 제법 큰 개인데 손녀가 죽고 못 사는 아주 친근한 관계의 개다. 이 개는 필요할 때 손녀에게 용기를 주는 개인데 유치원 아이들도 모두 이 개를 잘 알 정도라 했다. 유치원 정문에서 이 개와 큰 포옹하고 작별을 한 후에 입장을 한다.


오늘 오후에 손녀가 부모와 함께 김포 항공박물관에 비행기 구경을 간다고 한다. 매사에 관심이 많고 적극적인 행동을 하는 손녀가 거기에서 항공기를 보고 항공기에서 분사되는 엄청난 추진력의 새로운 용기를 얻어 왔으면 좋겠다. 공항은 언제나 바람이 넘치는 곳인데 손녀에게 줄 용기의 바람도 더 세게 불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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