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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an shim May 25. 2024

유목제국 쇠락의 법칙을 본다

(제국은 인공계이다)


유목제국도 관성의 법칙을 받는다


태양계는 공전과 자전을 멈출 수는 없다. 수십억 년 동안 지탱되던 영속적 운동을 왜 멈추지 못할까. 태양계는 유한하다. 태양계는 생성과 소멸이 있기 때문에 절대 영구기관이 아니다. 휴식이 없는 기관은 언젠가는 반드시 소멸되는 것이 생각나니 불필요한 걱정도 든다. 자동차를 운전해도 도중에 한번 쉬는 과정은 구동 기관을 잘 보호하기 위한 필수적 조치이다.


자연계는 이처럼 진행하는 운동 방식을 절대 중단하지 않는다. 사람이 만든 인공계와 사뭇 다르다. 자연계는 그 진행을 멈추면 일시적 정지가 아니라 움직이던 동력이 완전히 소멸된다. 재 가동이 불가한 것이다. 태양이 그 운동을 멈추면 그 계는 영구 폐쇄된다고 한다. 수목의 예에도 성장은 영속되나 무한이 아니고 소멸시기가 있다.


유사한 패턴을 유목제국의 쇠락에 비유해 보고 싶다.


유목국가는 어쩌면 숙명과 같은 이상한 전통이 있는 것 같다. 세계 역사를 통틀어 유목제국처럼 강한 야성을 가진 제국은 없었다. 그들은 불처럼 타오른 제국이었다. 넘치는 야성의 분출은 끊임없이 정복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것을 멈추면 분열되고 거꾸로 정복을 당한다는 것이다. 세상 누구보다 가장 잘하는 본업을 포기하는 순간 그들에게 남은 것은 힘 빠진 어깨였다. 독한 술은 강하게 힘을 쓸 때 보약같이 진정 필요하지만 할 일도 없는 처지에서 마시는 술은 그들에게 청나라의 아편과 같았다. 잘 다듬은 황금 도끼는 나무를 찍을 때 효험이 있지 창고에 올려놓으면 녹이 나고 쓸모가 없어지는 법이다.


정복활동을 멈추고 찾아온 평화의 안주는 거꾸로 화를 불러왔다. 유라시아를 다 정복한 칭기즈칸 제국이 이제 그만하고 안주하려는 순간 제국은 분열되고 쇠망의 길로 들어섰다. 유목제국은 최고의 카리스마를 갖춘 강대한 지도자가 나와서 정복사업을 일으키면 어느 누구도 대적할 자가 없다. 당시의 유라시아 전체라면 세상을 의미했다.  몽골제국은 가장 경제적 정복사업을 일으켰다. 소수의 군사력으로 불과 25년에 걸쳐 거대 영토를 차지했다.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로 빠른 세계정복 업적이다. 오직 일차원적 기마 군사력만 갖춘 군단이었다.


그들이 세계 정복에 대한 지고의 목표와 효율적 관리체계만 있었다면 전 세계는 단일 국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진행은 오지 않았다. 유목제국의 내부상황은 그들과 대치하는 정착제국의 흥망성쇠와 깊은 연관이 있다. 막강한 세력을 보유한 유목제국은 그들 스스로 주변상황을 주도적으로 만들 수 있는 독립 변수였다. 이 조건은 외적 세력변화에 따라 상호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는 종속변수로 자리매김했다. 한쪽이 약해지면 반대로 상대방은 힘을 얻게 되는 것이 국가와 국가 사이에 패권이동 패턴이다. 국가의 흥망성쇠는 지도자와 여건에 따라 업다운이 반복되는 파동함수이다.





유목 정복자들은 말에서 내리는 순간 그들의 힘은 약해지고 만다. 머리털을 자른 삼손꼴이 되고 만다. 그들은 말에서 내리지 않는 장수라 불렸다. 말과 합쳐져야 강한 힘이 나오는데 말에서 내려 치국을 하려는 단계에서 곧장 분열과 혼란이 시작된다. 칭기즈칸이나 쿠빌라이와 같은 카리스마 지도자들의 통치기에는 그래도 일정기간 거대제국의 관리가 가능했다. 그 이후에 나타난 지도자는 정복형 타입이 아니기 때문에 제국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상이한 문화적 시각을 가진 외부자들은 쉽게 이해 못 할 아이러니이다.


그들은 리더를 선출하는 방식부터 다른 제국들과는 전혀 다르다. 전통적으로 오직 무를 숭상하는 그들이라 정복활동에 힘을 쓰지 않는 지도자는 더 이상 존경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계속해서 정복군주가 나오면 제국은 오래 영속되지만 현실적으로 동일한 목표를 가진 지도자의 계승이 계속될 수는 없었다. 유목제국과 정착제국에서는 국가 지도자가 되는 패권 쟁취 과정이 상호 다르다. 정착 제국에서는 지도자의 계승 룰이 부자상속 또는 장자상속 같이 어느 정도 보장되고 있다. 유목제국에서는 부자와 형제간에도 힘의 무게가 지도자 덕목으로 간주된다.


초기 유목제국 중 흉노에서는 묵돌 선우가 아버지 선우를 폐하고 스스로 황제가 된 경우도 있다. 비정한 부자관계처럼 보이지만 시대와 관습에 따라 직접 비교는 어렵다. 지도자 계승에 대한 유목세계와 정착세계의 지도자 계승 문화가 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유목제국은 본성이 다양한 여러 집단의 연방체 성격을 가진 국가체계이다. 최정상 권력의 핵이 힘을 잃으면 대기하고 있던 잠룡들이 들고일어남을 피할 수가 없다. 몽골제국에서는 카리스마를 가진 칸들이 죽은 다음에는 의례 형제나 사촌 간의 후계자 다툼이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실제로 강력한 지도자가 죽으면 수십 명의 차기 대칸 후보자들이 수행 중이던 해외 원정을 포기하고 지도자를 뽑는 쿠릴타이에 참석하러 돌아오는데 1-2년에 걸쳐 몽골로 귀대한다. 위기에 처했던 로마와 유럽 제국은 생각지도 않은 이런 황금 기회를 3차례나 맞이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후계자를 둘러싼 지속적 갈등은 제국의 세력을 쇠락시켰다. 제국은 반란과 2 분할되고 다시 4 분할되는 연쇄작용이 나타난다. 한번 힘을 잃으면 영구적 복원이 힘들게 된다.


미완의 아쉬움은 남는다. 칭기즈칸은 전쟁, 제국경영, 내치행정 등에서는 거의 완벽할 정도로 성공했지만 후계자를 키우는 그의 역할은 부족했다. 자식들이 모두 아버지를 무서워했지만 다음 제국을 이끌 체계적인 교육과 제왕학의 연수를 받지 못했다. 자식들이 싫어했다고 말해야 옳겠다. 그들은 즉흥적이고 생각대로 날뛰는 말이었고 항상 술에 빠졌으며, 사냥과 말타기, 도박과 여자를 더 좋아하였다.


역사에 IF가정법은 의미가 없으나 만일 그 아들들이 훌륭한 후계자 칸으로 남았으면 몽골제국이 훨씬 더 오래 존속했을 것이다. 세계 최대제국으로 수천 년 존속했을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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