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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an shim May 23. 2024

빠지는 관계, 연인과 독서

(이런 빠짐은 필요하다)


책과 첫선을 보다 – 


새 옷을 산다. 카드를 꺼내서 사인하기 전에 나한테 맞는 색상과 스타일의 옷을 골랐다. 물론 피팅룸에서 한번 입어보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최종결정을 했다. 나는 아주 신속하게 이 과정이 진행된다. 드문 일이지만 가끔 나도 이 쇼핑의 즐거움에 빠져본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한 과정이 남았다. 쇼핑백에 담아 집에 가지고 온 새 옷을 꺼내서 다시 한번 입어 본다. 제대로 된 첫선을 보는 과정이다. 여기서는 제법 여유가 있다. 냉정하게 과연 이 옷은 옳은 선택을 했는지를 법정의 판관처럼 냉정히 판단한다. 가끔은 잘했어요 하지만 어떨 때는 후회가 된다. 그러나 지나간 열차이다. 잘해도 내 것, 못해도 내 것이다. 


비슷한 다른 것도 있다. 바로 책이다. 어제 도서관에서 몇 권의 책을 빌려왔다. 나는 이것을 포장백에 담아 온다. 한두 권이면 손에 그냥 들고 오는데 세권 이상이라 의례 담는 백이 필요하다. 집에 도착해서 새 옷을 입어보듯이 책 앞과 뒷면에 적힌 홍보성 내용을 가장 먼저 본다. 그리고 제목과 서문, 후기를 보면 일차적 평가가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선택한 책이 내가 보고자 했던 올바른 책인지 아닌지를 평가할 수 있다. 또는 흥미를 유발하는 첫 관문이 된다. 


예를 들어서 빌려온 몇 권의 책 중에서도 가장 먼저 나의 눈길을 끄는 놈이 있으면 당연히 나의 첫 번째 선택은 그 책이 된다. 그 선택은 후면에 적힌 홍보 기사, 제목, 서문과 후기 등을 통해 결정이 된다. 조금씩 알아가는 첫 과정이다. 모르는 남녀가 첫 대면을 하게 되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서로 상대를 탐색해 가는 과정과 유사하다 하겠다.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는 과정도 이와 유사하다. 그래서 어떤 친구들은 아예 서점의 의자에 오래 앉아 꼼꼼히 책을 보기도 한다. 연애할 파트너를 알아보는 과정처럼.


일전에 실크로드 관련된 책을 가져왔다. 초기 글로벌 무역과 연관된 자료를 구하는 의도인데 책의 내용은 전혀 달랐다. 실크로드 본류를 찾으려는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고대 신라시대 경주에서 실크로드의 지류가 일부 연관되었다는 내용이 그 중심이었다. 조금 보다가 그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세계 학계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한 소위 아류 이론을 개인주장 하듯 기록되어 있었다. 무슨 연구를 위한 독서가 아닐 바에는 힘든 고통의 과정을 인내할 필요는 없는 법이다.


책의 선택에서 읽기를 마감하는 과정을 보면 벅찬 감동도 있고 또 지겹게 페이지가 안 나갈 순간도 있다. 아름다운 감명과 지적 호기심을 유발하는 책을 만나면 마치 서부 개척시대 사금을 채취하는 그물망에 큰 황금 덩어리가 걸려든 횡재를 연상하게 된다. 조기에 큰 덩어리 사금이 발견되면 횡재를 만나듯 계속 신이 나서 그 책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독파하게 된다. 


아마도 역사적으로 인정받는 세기적 대가들의 작품을 본다면 그 확률이 높을 수도 있다. 이 또한 not always이다. 그가 아무리 유명세를 타도 나와의 궁합이 맞지 않으면 실망이 크다. 아무리 뉴욕타임스에 수년째 베스트셀러 라고 해서 책을 구입했는데 나에게 맞지 않으면 또 내가 바라던 소재가 아니면 말짱 헛일이다. 제 발에 맞는 신발이어야 가장 편한 법이다. 





반대의 경우도 가끔은 있다. 작가의 평판도 거의 없거나 신예작가의 작품을 심심풀이로 보다가 의외의 대어를 찾기도 한다. 이내 거기에 빠져든다. 이런 책들은 소위 계속 뒷장을 보고 싶은 page turner 작가군에 올라선다. 에이모 토울스의 ‘모스크바의 신사’가 그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이 책은 금세 군계일학처럼 뜨게 되었다. 이런 타입의 작가는 이내 베스트셀러로 인정받기도 한다. 책을 읽는 데는 어느 정도의 인내가 필요하다. 일단 아무 재미가 없어도 한번 시작했으면 적어도 50이나 100페이지 정도는 참아야 한다. 


사금 덩어리가 대번에 쉽게 걸려들지 않는 것과 같다. 의외로 뜸을 들여야 본격 재미가 붙는 책들도 많다. 일단 나와의 마리아주가 맞으면 다시 찾는 와인처럼 연인관계가 된다. 실제로 어떤 작가의 책을 보다가 마리아주를 발견하면 그가 쓴 모든 책을 다 뒤져서 본 기억도 있다. 그리고 그가 즐겨 쓰는 표현기법과 언어의 마술도 일정 부분 내가 차용하기도 한다. 원래 모방은 사랑의 한 표현방식이다. 싫어하는 인물이 주로 사용하는 언어 패턴을 우리가 따라서하는 일은 없지 않은가.  


책은 한번 봤다고 다시 쳐다보지 않으면 안 된다. 내용의 수용은 성장하는 시절에 따라 또는 우리의 생활환경 변화에 따라 호불호가 달라진다. 한때는 보기 싫던 여성도 계속 보니 “어랍쇼 색다른 매력이 있네” 한 경우도 있지 않는가. 과거에 학생시절에 본 책도 한참 세월이 흐르면 느끼는 관념이 달라질 수 있다. 아니 내 경우는 분명 달라졌었다. 20살에 본 책을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보니 전혀 다른 내용으로 받아들여졌다. 


‘골드문트와 나르치스’도 그러했다. 삼국지도 거의 10년 주기를 두고 한 번씩 독파한다. 그런데 볼 때마다 아주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색다른 교훈을 얻는다. 소아시절 이솝우화를 봤는데 이제 할아버지가 되어 다시 한번 보고 싶다. 분명 코끝이 아른한 감흥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근래에 독서 장르를 다양화해보는 노력을 해 보았다. 해 보려는 적극적인 시도가 우선되어야 한다. 이 또한 다른 나라의 음식을 취하듯이 색다른 즐거움이 되었다. 몽골에 다녀온 후 가끔 허르헉 입맛이 다져진다. 이질적 분야의 소설, 역사, 과학, 예술, 의학, 철학 등 발가는 대로 흐르게 해 보면 어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제자가 될 수도 있다.


끝으로 하나 더 내 생각을 덧붙인다면 책을 그냥 스쳐 보내는 것도 좋으나 간단한 독서노트를 해보면 어떨까. 나도 최근에 이 짓을 해 보았다. 그리고 많은 도움이 된 것을 알게 되었다. 거창하게 부담 느낄 필요는 없다

나는 스마드폰이 나의 독서노트가 된다. 생각나는 대로 끌 적이면 된다. 그리고 연결된 생각이 떠오르면 거기에다가 계속 누적해 두면 된다.  생각을 기록하는 문학 아카이브가 된다. 적당한 제목만 붙여 놓으면 된다. 


수년째 해 두었더니 수백 개의 아이디어와 관념이 쌓여 있었다. 가끔 한 번씩 뒤척거리며 보면 “아, 그런 발상을 내가 했나” 할 정도로 놀라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은행에 가면 개인용 deposit 박스가 있다. 주로 돈이나 유가증권 같은 귀중한 물건을 두는 곳이지만 나는 아직 그런 경험은 없다. 대신 스마트폰에 모아둔 토마토막 모아진 땔감이 나의 정신적 재산이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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