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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an shim Jun 11. 2024

장거리 지방 다니는 소회

(빨리 자율차량 시대가 오기를)

일하면서 지방 다니기, 즐거움이다


지난주 지방을 가야 했다. 항공용 물품을 학교 항공실습실에 설치하는 것이다. 혼자 간다면 내 마음대로 해도 되지만 동행인이 있다. 그와 일정을 협의해야만 했다. 그는 기술자이고 또한 사장이다. 내가 필요로 하는 항공 쪽 설비를 제작하는 기술자인데 나와 인연을 맺은 지 약 15년 정도 함께 일을 해왔다. 그가 요즈음 다른 공사로 바빠 일요일에 작업을 하기로 했다. 일요일 아침에 논산을 가는데 의외로 도로 혼잡이 없었다. 항상 다른 주중에 갔었는데 일요일은 처음이었다. 내가 성당에서 독서 봉독도 하고 또 정례 자전거 라이딩이 그날 있기 때문에 일요일은 주로 바쁜 요일이었다.


첫날은 논산에 있는 우리 창고에 가서 준비작업을 했다. 준비에 일요일이 소요되었고 월요일에 그 물건들을 운반하고 장착을 해 주어야 했다. 월요일 아침에 중간 거리인 전주에 납품을 하러 갈 예정이었다. 전주에 있는 어떤 특성화 여자고등학교이다. 특성화 학과가 있는데 관광과인데 행사용품으로 롤 프레이용 항공의자 구조물을 제작 의뢰한 것이다. 2인석 항공의자 2세트를 바닥에 장착한 이동식 의자 세트였다. 화요일에 행사가 있기 때문에 이리 바쁘게 일정이 생겼다.


이사장은 벌써 이런 제작을 여러 번 해서 내가 구상한 의도대로 아주 쉽게 제작을 한다. 이 분은 거의 모든 제작품을 머릿속에서 계산을 한다. 거의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도면을 그리지 않는다. 한평생 해온 그의 관록이 보이는 경지이다. 그래서 그 분야의 천재 명장이라 내가 부르기도 한다. 내가 기본 아이디어를 주면 그분은 천재적인 발상으로 더 향상된 아이디어를 추가한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일 것이다. 또한 작업의 진행이 엄청 빠르다. 생각한 대로 재료의 치수를 재고 자르고 용접하고 붙이는 작업을 한다.


세상 기술자는 그가 다루는 재질이 정해졌다. 기술자에 따라 전기, 목제, 흙, 금속, 시멘트, 도자기, 화학제품인 페인트 등도 있고 또 다른 것도 많다. 그 각각의 전문가는 그의 분야에서 재질을 최고로 잘 다루지만 다른 물성에서는 생소한 편이다. 그래서 분업화한 현대는 각각의 재질 전문가가 필요한 이치이다.


아침 일찍 용달차로 물건을 전주에 운반하여 1차로 납품을 완료했다. 다음에는 긴 여정이 남아있다. 부산을 가야 했다. 목적지는 부산에 있는 어떤 보건대학교이다. 항공서비스학과가 있다.


도로가 혼잡할 시간대가 아니어서 그런지 교통은 막히지 않았다. 거기에서 부산까지 약 260km이다. 도중에 산 봉우리가 말의 귀를 닮은 기이한 마이산을 경유했다. 높은 지역에 있는 휴게소에서 간단한 조식을 했다. 차로 약 3시간 반을 달려서 부산에 도착했다. 학교에서 우리가 만들어간 물품을 장착하는데 약 2시간을 보냈다. 거의 다 완성이 되어 바닥이나 벽면에 부착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나는 사용하실 학과 교수와 장소나 편한 위치를 협의하고 작업을 한다. 작업은 완료되었다.





foldable 승무원석과  기내방송 핸드셋
기내 상황극용 롤프레이 좌석


이 학과 교수님은 나와 오래전 인연이 있는 분이다. 내가 모 항공사에 근무하며 국제선 항공기 사무장이었을 때 신입 여승무원을 했던 관계이다. 즉 같은 팀으로 국제선 비행을 함께 하며 보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는 임원급 팀장이었고 그 교수님은 신입 정도였으니 서열상 많은 차이가 있었을 듯하다. 그래서 나를 여전히 대표라 부르지 않고 사무장님이라 부르는 몇 안 되는 교수님이다. 전국의 대학에는 제법 많은 수의 항공사 승무원 출신 교수님들이 있다. 물론 기본으로 다들 박사학위는 보유하고 있다. 해외 대학에서 학위를 받으신 분들도 있다.


나를 보더니 대뜸 “옛날 하고 전혀 변함이 없어요” 하고 말씀했다. 그럴 리가 없다. 벌써 약 30년 전의 세월이 흘러갔는데 빨간 거짓인 줄 알면서도 즐겁다. 같은 학과에 계신 다른 교수님에게 나를 소개했다. 항공사에 있을 때는 어려워서 감히 말도 제대로 못 할 정도로 높으신 분이라고 하여 모두가 웃었다. 다행히 모든 사전 준비를 한 탓인지 학과에서 설치하는 작업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항공실습실에 있는 구형 승무원석을 신형으로 교체하는 작업이다. 바닥과 벽면에 고정하는 것이다. 여기에 항공기에 뜯어와 방송을 하는 핸드셋을 벽면에 부착했다. 


항공기 통신 시스템과 전원이 다르게 때문에 개조를 해야 된다. 이 개조 작업은 통신장비 개조를 하는 마이스터라 부르는 장인에 의해 개조작업을 거친 방송용 핸드셋이다. 다 완료가 된 다음에 방송 테스트를 해 보여야 한다. 나는 아직도 핸드셋을 테스트하는 멘트가 과거에 항공기에서 하던 그대로 습관화되었다. 핸드셋을 잡고 푸쉬투토크 (PTT) 버튼을 누른 체 “PA test 1,2,3, This is the captain speaking”이라고 해 본다. 잡음이나 이상 없이 방송이 진행되면 된 것이다.


한 번은 핸드셋을 개조하고 갔는데 항공실습실에 장착한 결과 방송이 제대로 안 나왔다. 이 때는 아주 난처하다. 다시 서울에 와서 다른 장비를 들고 가서 교체를 해 주어야 했다. 비용은 물론이고 먼 거리를 다시 달려가야 하는 불편이 있다. 대체안을 생각해 두었다. 반드시 여분 기기를 하나 더 가져가 하나가 불완전할 때 대체품으로 바꾸어야 했다. 일이란 이번처럼 스무스하게 진행되면 좋지만 상황이 꼬일 때는 아주 오래 걸리는 일도 있다. 시간이 밤 11시가 되어 작업이 완료된 경우도 있었다.


작업이 완료되었으니 다음은 서울로 먼 거리를 달려야 했다. KTX를 못 타는 이유는 물건과 공구박스등을 챙겨야 하니 어쩔 수 없다. 도중에 KTX에 차를 싣고서 가는 차량을 몇 량 붙이면 어떤지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스위스나 유럽에는 이런 기차가 있어 내가 과거에 차를 싣고 타 보았다. 서울까지의 거리는 약 420 km 정도이다. 장거리 운행 중에는 식사를 많이 먹으면 졸릴 수도 있다. 가까운 거리는 큰 문제가 안되지만 장거리는 조금 다르게 준비해야 한다. 나는 도중에 약간의 씹을 것(주로 어포, 육포)만 먹으며 서울까지 운전을 했다.


운전은 온전히 나 혼자서만 해야 했다. 함께 가는 이사장은 오토바이는 수십 년을 탄 전문가지만 자동차는 운전을 못한다. 할리 데이빗슨 모터사이클 협회 동호회 회장도 오래 한 분이다. 이번에 서울을 오는데 도로사정상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경부축은 거의 100% 일부구간 도로 정체를 겪는 것이 당연한데 도중 한 번도 길이 막히지 않았다. 우리 모두 “어, 이상하네” 하며 놀랬다. 그날 총도로를 주행한 거리를 따지면 아마 800 km를 상회할 거리였다. 근래에 차로 주행한 거리로는 가장 긴 거리였다. 젊어서는 아무 문제 없이 다녔지만 지금은 이런 장거리는 무리라 생각된다.


젊은 시절 뉴욕에서 나이아가라 폭포를 다녀왔다. 그때도 운전은 나 혼자서 했다. 95번 공로를 왕복하는데 총 24 시간을 운전하였다. 졸음이 가장 큰 문제였다. 당시는 지도를 보고 가는 환경인데 다행히 큰 혼란은 없었다. 조수석에는 지나갈 궤적을 하나하나 잘 안내하는 인간 내비게이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에는 간단한 내비게이션 기계가 그 역할을 대체한 것이다.


그리 도착한 서울은 저녁식사 시간대였다. 밤늦게 도착을 예상했는데 너무 빨리 도착을 했다. 짧은 기도를 안 드릴 수가 없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나는 아쉬움이 없어라” 하는 성경 시편의 기도문이다. 유일하게 내가 알고 때로 사용하는 기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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