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만능에 대한 경고)
나와 오래 사업관계를 맺은 분이 있다. 거의 동년배이고 약 20년 지기이다. 내 일을 같이 협력해 주는 분이다. 이 사장이란 분인데, 정확히 말하면 내가 항공 관련 발주를 받으면 이를 논산에 소재한 우리 공장에서 제작하고 현장에 가서 설치를 하는 분이다. 어제 이분과 함께 어떤 항공훈련 실습장에 무엇을 설비하려 갔다. 의례 하듯이 함께 차를 타고 가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많은 대화를 하다 보니 온갖 주제가 다 나온다. 가족 이야기, 트럼프 이야기, 윤석열 이야기, 중국제품 이야기 등 물이 흐르둣 주제는 계속 이어진다.
그러다 나온 말이 가끔 기부금을 낸다는 이야기도 했다. 나는 바로 말을 받았다. 어디에 기부금을 내느냐고? 그는 아이들을 돌보아 주는 국제기관이라고 했다. 많지 않은 금액이라 했다. 처음 듣는 그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가 갑자기 크게 보였다. “아, 잘하시네요. 진짜 잘하는 것입니다. 액수는 문제가 아니에요. 나도 때로 여러 기관에 기부금을 내요. 어제 아침에 엠네스트 인터내셔널이라는 인권단체 한 곳에 돈을 보냈지요”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살기 바빠서 이런 일을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나이가 들고 돈을 모으는 것도 필요하지만 또한 적당히 쓰는 일도 필요하다 여겨졌다. 적당히 쓰는 과정에 사회복지나 옳은 일을 하는 단체에 작은 성금을 내기 시작했다. 무슨 큰 여유가 있어서 하는 일은 아니다. 어찌 보면 늦게 철이 든 것이라 여겨진다.
어떤 블로그를 보다 우연히 알렉산더 대왕의 이야기를 접했다. 그가 남긴 유언 중 하나였다. “내가 죽으면 관의 외부로 손을 내놓는 모양의 관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줘라”라고 그가 말했다는 것이다. 관에 양쪽에 2개의 구멍이 난 형태이다. 전 세계를 그의 발 밑에 두었던 대왕의 유언이라 궁금한 점이 있었지만 아무도 이견을 내지 못했다. 그러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한 신하가 드디어 대왕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사람은 죽을 때 이 세상에 올 때와 같이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후세에 알리기 위함이다”라고 대왕이 말했단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다른 생각이 든다 알렉스같이 위대한 사람도 철은 늦게 드는가 보다라고. 그는 원래 젊어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세상을 경영하려면 어찌해야 하는 가를 배웠다. 오랜 기간에 걸쳐 최고의 스승으로부터 세상의 이치, 정치, 군사전략을 모두 그에게서 배운 사람이다. 그리고 결국 그는 온 세상을 그의 지배하에 두었다.
단 그의 운명은 그리 길지 않은 약관의 나이에 세상을 떴다. 죽기 전에 스승에게서 배운 철학의 의미를 되새기는 자세를 보여준 것이다. 만일 그의 생명이 그토록 짧게 끝난다는 사실을 진작 알았으면 분명 세상을 달리 보았을 덴데 라는 생각이다.
대왕의 이상한 유언은 물질적인 부귀영화가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깊은 교훈을 담고 있다. 이는 물질적인 성공과 소유를 중요하게 여기는 현대 사회에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2300년 전에 물질 만능주의에 대한 시사점을 주는 것이다. 물질을 최고로 숭상하는 현대인들에게 따끔하게 남긴 것이다. 다는 아니지만 현대 사회는 종종 소유물의 많고 적음으로 개인의 성공을 평가한다.
하지만 알렉산더 대왕의 유언은 아무리 많은 재산을 모아도 죽음 앞에서는 빈손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진정으로 가치를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물질적인 것들 초월하여 비물질적인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지금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돈, 더 좋은 집, 더 비싼 차를 갖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야기를 자주 접한다. 그러나 대왕의 유언은 이러한 추구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없음을 인식한 철학자의 메시지라 봐도 된다. 삶의 진정한 목적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살고, 개인적인 성장을 이루며, 주변 사람들과 더 깊은 관계를 맺는 데 있을 수 있다.
그가 남긴 유언은 삶과 죽음을 통찰하는 철학적 태도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최고 권력과 부를 누렸던 그가 빈손으로 돌아간다는 유언을 남긴 것은 깊은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는 생전 물질적 가치를 극대화하여 삶을 살았지만, 죽음 앞에서는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빈손으로 태어나 빈손으로 간다는 진리를 통해 후대에 물질의 덧없음을 가르치고 싶었던 것으로 본다.
세계를 정복한 정복자로서의 오만함을 버리고, 모든 인간이 결국 죽음 앞에서 평등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겸손을 보여준 것은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죽음이라는 자연의 법칙 앞에서 권력과 부가 아무런 힘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행위였다. 그의 유언은 후대 사람들에게 교훈을 남기려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삶의 진리를 알려주려 했다. 분명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의 결과일 것이다.
죽음은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찾아오는 필연적인 운명이다. 알렉산더는 이 사실을 거부하거나 절망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은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유언은 최고의 삶을 향유했던 한 인물이 죽음이라는 종착역 앞에서 보인 최고의 분별력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를 정말 잘 가르친 세기의 스승이다. 분별 있는 인식은 빠르면 빠를수록 더 좋은 법이다. 그래서 철은 조금 빨리 드는 것이 필요하다.
PS. 오늘 아침에 어떤 천주교 주교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 한다. 그 또한 알렉산더 대왕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