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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당구

(작전보다 다른 곳에 몰입)

by evan shim

당구를 다시 쳐본다


당구는 역시 재미가 있다. 아니 조금 심하게 말하면 빠지는 중독성까지 가지고 있다. 바둑에 빠진 사람은 천장이 바둑판으로 보인다 한다. 천정이 당구대로 보이는 것은 당구 역시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모든 가구나 벽면이 실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의자와 테이블의 사이에 3큐션을 어떻게 돌리면 될까 하기도 하고, 식당에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않아 있다면 그들 또한 당구공이 된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저러블에도 나폴레옹과 결전을 앞둔 웰링톤공이 당구에 빠졌다는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나온다. 전쟁의 승패가 장군의 당구 한큐에 달렸다는 오버는 운명의 아이러니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당구는 오랜 기원을 가졌다. 기원전 설도 있고 그리스에서 인기가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근대에는 구대륙에 널리 펴진 귀족 놀이였다. 조금 각을 달리해 본다. 요행으로 들어간 (fluke) 당구가 될지 묘기 당구가 될지 모르지만 당구 이야기를 창작해 만들어봤다. 당구에 중독이 된 블랙코미디 장군 이야기이다. 시간을 할애해 한번 봐주시기 바란다.


artem-balashevsky-obIwSWhDBWg-unsplash.jpg source, unsplash


장군 빌헬름 폰 스튜가르트는 적군이 국경을 넘었다는 긴급 전갈이 왔을 때도 당구대 앞에 서 있었다. “뭐. 놈들이 쳐들어 왔다고? 웃기는 놈들이네. 잠깐 기다려, 이 3큐션을 돌리고 보자고” 그리고 멋진 노란색 큐대를 휘둘렀다. 전쟁 회의실 내에는 오래전부터 이 장군의 특별한 당구대가 놓여 있었다.


부관 하인츠가 벌겋게 상기된 체 3큐션이 돌아가는 것을 본 다음 말을 했다. “장군님, 포병대가 지원을 요청합니다. 벌써 좌익 전선이 무너 질지도 모른다 합니다”.


그러나 장군은 “하인츠 부관, 흥분하지 말고 잠깐 기다려. 이제 곧 다 끝나가네” 하고는 계속 당구를 친다. 그는 부대에서 모든 부하들이 인정하는 당구 최고 고수였다. 특히 그의 마세와 끌어당기기는 그 부대에서 천하제일이라는 명성이 났었다. 부하들에게 장군은 말을 탄 장면보다 큐대를 든 장면이 더 빨리 연상되는 것이다.


마침내 적군의 기습으로 시작된 서부 전선은 붕괴되었다. 계속 하인츠는 실시간 보고에 보고를 했지만 장군은 이번에는 큐를 세우고 그의 일품 마세(masse)를 친다. 역시 멋지게 들어맞는다. 그러나 이제 누구도 박수를 치는 사람이 없었다. 가까운 데서 울리는 포성이 그만큼 심각하다고 느꼈다. 정오 무렵 장군의 본진이 포위되었다고 최종 보고가 왔다. 그래도 장군은 알았다 하며 계속 기다리라는 타령만 한다.


하인츠는 울먹이다 못해 마침내 폭발했다. 억센 팔의 힘을 가진 하인츠는 그 무거운 당구대를 흔들어 버렸다. 장군도 폭발했다. “야, 아 멍청이야! 내 당구를 다 망쳤잖아. 3큐션 하나면 다 이긴 판을 자네가 정말 망쳤다고!”


마침내 적군이 사령부 문을 부수고 쳐들어 왔을 때, 장군은 마지막 당구공을 노려보고 있었다. 쾅, 문이 부서지고 적군이 몰려들었다. 적장이 검을 들고 서서히 닦아 선다. “폰 스튜가르트, 항복하라!” 장군은 적장을 보고 말한다. “알았네, 잠시만 기다리게” 그리고 장군은 마지막 공을 쏘았다. 딸깍. 공은 장군이 원하는 방향으로 멋지게 돌아 목표물에 닿았다. 장군은 입가에 얇은 미소를 띠었다.


그 순간 적장의 검이 장군이 들고 있던 큐대를 두 동간 내 버렸다. 그리고 말했다. “장군, 당신은 당구는 이겼소, 하지만 전쟁은 내가 이긴 것 같소” 다음 날 처형대 앞에 선 장군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깝다. 공 하나를 잘못 쳤군. 그전에 왼쪽 쿠션부터 먼저 때려야 하는 데…”


장군의 상태는 병적인 집착이다. 전쟁의 승패는 지휘관의 집중력에 달렸다고 하는데 집중할 곳을 잘못 찾은 장군이다. 죽음의 순간에도 당구만을 생각하는 단계는 0 쿠션 폭발샷이다.




지난 일요일 점심때 몇 사람과 만남이 있었고 의기가 투합되었다. 그리고 어디로 향했다. 바로 당구장이다. 때가 식사 때여서 밥을 먹고 당구를 치자 하였다. 그런데 한 사람이 아마 당구 치면서 짜장면이 어떠냐고 제안을 하니 그곳으로 정해졌다. 동네 당구장 주인이신 분이 중국집에서 음식을 시켜준다고 했다. 그가 열심히 전화를 했는데 일요일이라 문을 여는 중국집이 없다고 했다. 대신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시원한 콩국수를 시켜주겠다고 했다. 다들 “좋아요” 하고 계속 당구는 돌아갔다.


당구를 이리 오랜만에 치는 이유가 있다. 성당에서 당구대회가 다음 주 토요일에 열린다. 나는 처음에 하도 오랫동안 당구를 안쳐서 여기에 참석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공치는 것을 다 잊어먹은 듯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며칠 전 성당 사람들과 모여있는데 당구 시합이 있으니 함께 참여하자는 것이다. 갑자기 물이 끓어올랐다. 다 좋다고 하여 한 팀이 만들어졌다. 성당 내 다른 모임과 대항하는 단체전에 나가게 되었다. 자, 결정이 되었으니 이제 할 일은 다시 큐를 잡고 실전을 해 보아야 한다. 며칠간 연습을 해 보려 한다.


역시 몇 년 만에 당구를 치니 계속 헛손질을 했다. 제대로 맞지가 않고 핀트가 계속 틀려졌다. 하나는 남아있었다. 당구를 TV에서 가끔 시청하여 어떤 각도로 쳐야 한다는 것은 쉽게 결정이 되는 것이다. 당구는 기실 나의 오래된 친구관계를 유지했다.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친 기간은 다른 취미보다 오래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과 만나면 식사를 하고 근처 당구장에 가서 웃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상화되었었다. 근데 근래부터 이런 기회가 별로 안 생겼다. 그러더니 아예 당구를 잊고 살게 되었다. 유일한 참여는 TV에서 나오는 선수들이 보여주는 당구 기술을 보고 줄기는 것이 계속되는 것이다.


나의 오랜 당구 추억이다. 나도 장군처럼 마세를 제법 잘 친다. 당구수는 150인데 80부터 마세를 치다 보니 제법 전문가 수준에 이르렀다. 논산역 기차를 기다린다. 시간이 약 2시간 남아서, 근처 당구장에서 시간을 보내려 갔다. 당구장 주인과 당구를 쳤다. 당구 수는 그대로 150이다. 마세 기회가 와서 쳤는데 아주 잘 들어갔다. 주인이 나를 한참 보더니 그렇게 살지 마란다. 졸지에 당구 수를 속인 사람으로 치부해 버린다. 한참 걸렸다. 이 오해를 설명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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