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터널 속의 트럼펫 소리

(연습이 만드는 완벽에 한걸음 다가가기)

by evan shim

불완전함을 연주하는 용감한 아마추어들


자전거를 타고 다리 아래를 통과한다. 그곳에는 제법 사람들이 앉아서 휴식하는 장소로 잘 이용되고 있다. 그런 풍경 속에서 때로는 낯선 소리가 들려온다. 터널 안에서 울려 퍼지는 트럼펫과 색소폰의 울림이다. 혹은 장구나 꽹과리 등의 전통악기를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윗 천장이 막힌 터널은 아마추어 음악인들을 위한 자연적인 콘서트 홀처럼 소리를 감싸고 또 확장시켜 준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소리의 공명효과 때문이다. 사람의 음성이나 악기 소리를 모두에게 전달하는 최상의 경로 구조로서 터널이나 다리 아랫부분이 딱 들어맞는다.


그들의 연주를 들으며 한 두 가지 흥미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이 연주자들은 분명 초보는 아니었다.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인 중급자처럼 느껴졌다. 완전한 초보라면 아마 이렇게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공간에서 연주하기에는 부끄러움을 느꼈을 테니까.


자전거의 페달과 같이 나의 사유는 계속 회전되었다. 사람들은 그들 자체로 준비되지 않은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무엇이던 최소한 기본 연습이 된 다음에 밖으로 나온다.


유사 사례를 찾으려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어린 우리 손녀가 보여주는 철봉 묘기도 그중 하나이다. 문틀에 설치해 두고 몇 개월 지나자 이제는 우리가 갔을 때 철봉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묘기를 제법 보여주고 있다.

많은 구경꾼을 불러들이는 수준 높은 연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예까지 걸리는 시간은 의외로 그리 짧지 않을 것이다.


소위 터널의 음악인들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그들이 아무리 잘 준비했다고 해도 완벽할 수는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진짜 프로는 돈 버는데서 연주를 하지 이런 데서는 절대 연주를 안 할 것이다. 그러니 아마추어 실력에 도달하여 그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외부로 나오는 용기야 말로 진정한 성장의 첫걸음이 아닐까 한다.


_SAM1200.JPG


KakaoTalk_20220223_125112745.jpg


우리 사회는 완성된 모습만을 요구하는 것 같지만, 사실 모든 것은 부단한 연습과 준비의 과정을 거친다. TV를 보면 거기서 나오는 출연자들이 보여주는 기예나 실력은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사회성을 기르는 것처럼, 이 음악인들도 수많은 시간을 연습실에서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외부에서 연주할 용기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어디 다리 밑에서 하는 악기 연주에만 연습이 필요할까. 여타의 곳에서도 많이 보인다. 어느 날 지하철 칸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 여성을 잊을 수 없다. 그녀는 손에 작은 스크립트를 쥔 채 조용히 중얼거리며 발표 연습을 하고 있었다. 약간의 흥미가 동하여 슬쩍슬쩍 눈치채지 못하게 그녀를 보게 되었다. 아마 그 내용을 어디선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역할을 하는지 또는 인터뷰 연습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약간 불안해 보였지만, 점점 목소리가 단단해지고 표정이 확신으로 보였다. 몇 정거장 후, 그녀는 바나나 형질에서 굳쎈 금속의 형질로 변화되어 미소 지으며 내렸다. 나는 속으로 good luck을 말하고 있었다.


이제 나의 글 쓰는 이야기도 해 보련다. 블로그를 한지 거의 7년 정도 되는 듯하다. 처음 해보자는 마음을 결정하고 블로그 글을 썼다. 글의 내용이야 따지지 말고 완성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생각해 본다. 분명 여러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글이 써지는 시간이 마치 두레박으로 깊은 샘에서 물을 긷는 수준이었다. 지금 수준을 샘에서 물 긷는 비유로 말하면 인력으로 하던 일을 전동 모터를 돌려 힘 안 들이고 빨리 물을 퍼 올리는 알레그로급으로 진행이 된 듯하다.


이제는 급히 쓰면 한 시간도 안 걸린다. 무엇보다도 글을 쓰는데 두려움이 없어진 상태에 와 있다. 이것이 가장 큰 발전일 것 같다. 이런 연습은 사업을 하면서 매매 계약서를 쓰고 또 성당에서 보편지향 기도문을 작성하는 데에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한 주일 전 어떤 업체와 무슨 계약서를 썼는데 기존의 내용이 우리 상황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변경된 내용으로 문안을 수정하여 제안을 했다. 당연히 거기에 맞는 논리적 이유를 덧 붙였다. 결과는 그대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수정이 되었다.


글을 보시는 분들의 오해를 풀기 위하여 개인적 사족을 붙이면 아직 글의 내용은 그리 장족의 발전은 못 이루어졌다. 스스로 좋아서 하는 아마추어 놀이 수준에 있는 듯하다.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아가 보자. 무엇이던 생짜에서 중급 정도까지 오는 이 과정에서 보이지 않았던 실수의 이야기도 말을 해야 할 것이다. 실수에서 피어나는 성장의 이야기이다. 달리 말하면 성장의 과실은 실수라는 음식을 먹고 나이테가 든 거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생소하지만 홍콩에서 머물며 아침 공원을 돌며 눈여겨본 광경이다. 공원에서 매일 아침 태극권을 연습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있다. 눈을 감고 하시는 그분들의 몸놀림이 예사스럽지 않았다. 마치 장강에 작은 돛단배가 물길에 의지하여 유유히 흐르듯 중심이 잡힌 모습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예와 기가 결합한 모습 같다.


그 나이에 처음 하면서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동작의 날갯짓을 보낸 연후에 이제 우아한 몸놀림이 되었을까 생각한다. 수많은 실수를 겪은 연후에 하나씩 보완, 발전된 모습이 지금 보는 그 부드러운 유영의 몸짓이라 여겨진다.


PS. 브로드웨이에서 어떤 친구가 마침 지나가는 경찰에게 카네기홀에 가는 길을 물었다. 경찰은 악기를 들고 있는 그를 잠시 보며 말했다. “음, 그건 말이야, 연습, 연습, 연습 이라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장군의 당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