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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오만도 때로는 필요해요

(오만과 편견에서 떠오르는 발상)

by evan shim


‘오만해 지자, 높이 오만해지자’ 고 속으로 되뇐다. 집의 계단을 나올 때 심호흡을 하며 속삭이는 나의 만트라이다. 처음부터 오해를 하실까 봐 미리 “오해하지 마시기 바란다”라고 말을 해 놓는다. 그리고 설명을 드리는 바이다. 오만이라 하면 의례 부정적인 함의가 먼저 떠 오른다. 조금 긍정적인 측면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아니, 좋은 오만도 있을 듯하다. 좋은 오만의 개념 정립을 생각해 보자. 자부심, 자기 확신, 자기 존재의 발로로 볼 수 있다면 일단 성공이라 해야 한다. 이 용어들은 어디 내놔도 네거티브 이미지는 안 보이니까.


서부영화 제목을 차용해 보면, 당연히 오만에는 좋은(good) 오만, 나쁜(bad) 오만 그리고 지저분한(ugly) 오만이 있을 듯하다. 오만은 대개 말이나 글로 표현하고 또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해 뜨는 방향과 해 지는 방향처럼 완전히 다르게 평가된다. 통상 오만은 어떤 분야에서 그 만이 기진 권위와 혼동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칼 세이건 같은 우주학의 귄위자나 뉴턴 같은 세기적 물리이론을 설명하는 권위자의 오만은 그리 싫지가 않고 오히려 그의 입지를 강화시켜 준다


책을 읽다 보면 마치 해저에서 잠수함이 떠오르는 것처럼 급 부상하는 소제가 몇 개로 압축이 된다. 두꺼운 ‘오만과 편견’ 이 주는 교훈은 책 읽기에 투자한 시간에 보은 하려고 베풀어준 시혜 같다.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면 계속 연소가 가능한 불쏘시개 주범들이 도처에 나타난다.


소싯적에 읽어보았지만 지금 보니 완전히 다른 책을 본 듯했다. 글쓰기 여정에서 가장 멋진 순간은 바로 이런 것이라 본다. "어, 이거네!" 하는 순간을 발견하고, 그것이 다른 개념과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 보기 시작할 때라 본다. 다른 표현으로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이라 말한 작가도 있다.


‘오만과 편견’에서 발견한 표준적인 사회현상이 있다. 어쩜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행동 문화는 일란성쌍둥이 같다. 200년 전에 영국과 현재의 우리 문화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무슨 말이냐 하면 딸을 5명 가지고 있는 시골 부모들이 사위를 고르는 기준은 물어볼 것도 없이 그가 가지고 있는 돈의 크기이다. 분명히 집고 가자면 이집트 파라오시절에도 그랬고 태조 왕건시절에도 동일했을 추정은 안 물어봐도 된다.


또 생각해 볼 주제가 있었다. 책 제목이 오만이라고 되어 있는데 영어로 말하면 프라이드(pride)이다. 프라이드는 바로 직역하면 자신감 내지 자만감이라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주인공 다아시는 거대한 유산을 가지고 있는 귀족이다. 따라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오만의 무게는 일반 사람들과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리고 당연히 프라이드를 가질 수밖에 없다. 프라이드라는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한마디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다른 각도에서 프라이드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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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이 길었지만 나는 이 오만을 노년 시기에도 적절히 대입해 보려 한다.

그 프라이드라는 것은 나의 어깨를 곧추 세우고 자세가 당찬 그 외적인 자세를 연상한다. 오늘 아침에 공원을 가로지를 때 나는 남자 주인공 다아시가 가졌던 그 오만을 몸으로 표현한다. 다아시의 자세는 당시 영국 상류층의 계급적 특권과 교육받은 몸가짐의 외적 표상이며 말을 하지 않아도 풍기는 그의 오만적 지위를 잘 보여준다.


내가 보여주는 자세는 어깨를 꼿꼿이 펴고 두 팔을 씩씩하게 앞뒤로 저으며 시선은 정면을 바라보면서 걷는 것이다. 나의 오만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말린 자세를 꼿꼿이 펴는 것이다. 3천 고지 키르기스스탄에 서 본 키 크고 올곧은 가문비나무를 연상해 본다. 노인의 굽은 몸이 아니고 젊은이처럼 바른 자세를 ‘오만과 편견’에서 보여주는 텍스트를 통해 노년의 품격과 상호 연관시켜 보고 싶었다.


어떤 책에서 본 내용이다. 백화점에 가족이 갔을 때 당신이 몸을 펴고 정면을 바라보고 딱 벌어진 자세를 취하면 백화점 점원은 그 사람이 돈을 지불하는 주체인지를 바로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최고의 예의를 표한다. 최종적으로 돈을 지불할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 정도의 권위에 따른 오만한 자세는 때때로 필요하지 않을까.


노년과 연관시킨 오만의 '곧은 자세'도 이와 유사한 다층적 의미를 가진다. 당당한 노년의 자세는 한 인생을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획득된 자산'이다. 물론 오만은 계속 가다가 높은 산을 만나면 여기서는 길을 양보한다. ‘오만과 편견’에서 흥미로운 점은 다아시가 엘리자베스를 사랑하면서 '오만'을 버려야 했던 순간이 있다는 사실이다. 급반전이다. 진정한 성장은 오만의 기둥을 구부려 유연해지는 데 있다.


칭기즈칸의 카리스마는 때로 고개를 숙이면 더 높게 작용한다. 노년의 자세에서 보여주는 오만도 마찬가지이다. 노년의 좋은 오만은 필요하다. 오랜 인생의 경험으로 다져진 원칙을 유연하게 유지하는 힘은 자식들이 보기에 큰 존경을 보여준다. 현대는 나이 든 것이 더 이상 자랑이 아닌 세상이다. 충고가 불필요해진 세상에서 유연한 원칙을 유지한 노년은 큰 바위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다.


자, 이제 목적지 상공에 근접했다. 비행기 어프로칭(approaching) 사인이 들어오니 고도를 낮추며 착륙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 왔다.


젊음의 곧음 → 사회적 위치를 지탱하는 등짐으로 보고

노년의 곧음 → 인생 경험의 능동적 결정체로 보면 어떨까


이 차이가 "좋은 오만"의 핵심이다. 노년에 허리가 굽는 것은 단순한 생물학적 퇴화가 아니라, 때로는 삶의 무게에 대한 양보, 타협, 체념의 신체화라 할 수 있다. 반면 "꼿꼿함"은 그 무게를 견디며 자신의 중심을 지키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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